썼다…지웠다…모니터 속 글씨가 ‘감정연기’ 하네

[컬처]by 한겨레

형식미 빛나는 두편의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원테이크 원컷…‘영화 속 영화’ 설정

37분짜리 1부 발연기로 밑밥 깔고

카메라 안팎 다 보면 배가되는 폭소


‘서치’

배우, 컴퓨터화면에만 등장하고

온라인플랫폼으로 이야기 전개

현대사회 통찰, 동시에 담아


내용의 참신함보다 형식의 새로움이 높은 평가를 받는 영화가 있다. 이런 작품은 그 자체로 새로운 영화적 문법과 스타일을 창조했다는 극찬을 받곤 한다. 페이크 다큐의 형식을 도입해 실제적 공포를 체험하도록 만든 <블레어 위치>(1999), 기억력이 단 10분에 불과한 남자가 문신과 메모 등을 통해 살인범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은 <메멘토>(2001) 등이 그랬다. 올여름, 이들 못지않게 ‘형식미’가 ‘내용미’를 압도하는 영화 두 편이 관객을 찾는다. 파격적인 형식과 재기 넘치는 연출로 관객을 사로잡을, 서로 다른 매력의 영화를 소개한다.

‘원 테이크 원 컷’+ ‘영화 속 영화’

썼다…지웠다…모니터 속 글씨가 ‘감정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한 장면. ㈜디오시네마 제공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3일 개봉)는 음산한 정수장에서 진행 중인 좀비 영화 촬영 장면으로 시작한다. 연기가 맘에 들지 않자 감독은 격하게 화를 내고 현장을 떠난다. 그 순간, 진짜 좀비가 나타나 배우와 스태프를 공격한다. 스태프들이 하나둘 좀비로 변해가자 남녀 주인공과 분장사는 좀비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려 애쓴다.


그런데 해도 너무한다. 아무리 ‘비급 병맛’이라 해도 VFX(시각적특수효과) 기술로 지옥까지 구현해 내는 시대에 이걸 분장이라고 했나 싶은 장면은 기본이고, 남녀배우는 시종일관 발연기다. 애초 시나리오나 있었을까 싶을 만큼 전개도 엉망이다. 가령 주인공이 “마침 도끼가 있네. 운이 좋았어”라는 허접한 대사를 읊더니 눈앞에 놓인 도끼를 들고 좀비와 맞서는 식이다. 카메라는 발로 찍어도 이보단 낫겠다 싶다. 여주인공과 좀비의 추격전을 찍던 감독이 카메라를 떨어뜨린 건지 한동안 땅만 비추고, 렌즈에 튄 핏물 따윈 대충 닦고 그냥 촬영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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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한 장면. ㈜디오시네마 제공

어처구니없어 하는 사이 37분이 흐르고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간다. 벌써 끝인가 싶어 시계를 볼 즈음 2부가 시작된다. 영화는 이때부터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며 방향타를 코미디로 돌린다. 1부를 참아낼 인내심 있는 관객만이 2부의 배꼽 빠지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원 테이크’로 진행되는 37분짜리 1부가 카메라 프레임 안을 보여준다면, 2부는 프레임 밖을 보여준다. <카메라를…>는 좀비 채널 개국 기념으로 ‘원 테이크 원 컷 라이브 영화’를 기획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원 테이크 원 컷’과 ‘영화 속 영화’라는 두 겹의 설정은 놀라운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생방송인 만큼 온갖 돌발사건에 스태프들은 ‘멘붕’에 빠진다. 알코올 중독의 중년 배우, 허리 디스크 걸린 촬영감독, 민감성 대장증후군을 앓는 배우가 잇달아 사고를 친다.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작품을 완성하려는 스태프들의 놀라운 임기응변이 바로 이 영화의 진짜 줄거리.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대상 수상작이며, 일본에선 입소문만으로 10만명 넘게 동원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PC 화면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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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치'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제공

<서치>(29일 개봉)는 부재중 전화 3통을 남기고 사라진 딸을 찾는 아빠의 이야기다. 미국의 평범한 한국계 가정인 데이비드(존 조)와 부인 파멜라(사라 손), 외동딸 마고(미셸 라). 어느날 파멜라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엄마의 부재에도 사춘기를 무사히 넘기는 듯 보였던 딸 마고가 사라진다. 데이비드는 딸을 찾기 위해 딸이 남긴 노트북 속 단서를 헤집기 시작한다.


20대 젊은 감독 아니쉬 차간티의 상상력이 빚어낸 <서치>는 피시(PC) 화면을 켜는 것으로 시작해 끄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영화다. 러닝타임 내내 모니터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페이스북, 구글, 스카이프, 페이스타임, 시시티브이, 유튜브 스트리밍 등 익숙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사건과 이야기가 전개된다. 모든 등장인물은 러닝타임 내내 한 번도 컴퓨터 화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경찰신고도, 친구들에게 딸의 행방을 묻는 것도 모두 온라인을 통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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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치'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제공

단조롭고 답답할 수도 있지만, 의외의 영화적 쾌감을 자아낸다. 잊어버린 온라인 계정의 비밀번호를 찾는 과정, 페이스북을 팔로우한 친구를 파도타기 하는 과정이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것은 꽤 익숙하며 공감을 끌어내는 설정이다. 배우의 감정선이 대사보다는 비디오 파일을 컴퓨터에서 돌려보거나 휴지통에 버리고, 메신저에 메시지를 썼다 고쳤다 지웠다 하는 방식으로 드러나는 점도 새롭다. 온라인상의 작은 단서 하나하나를 끈질기게 추적해 나가는 과정 역시 화려한 액션신이나 격투신보다 더 쫀쫀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 기대는 현시대에 대한 통찰도 엿보인다. 아빠 데이비드를 용의자로 몰아가는 마녀사냥식 댓글, 남의 얼굴을 촬영해 온라인상에 무단 유포하는 행위,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수집되고 도용되는 현실 등은 시사점을 던진다.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2018.08.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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