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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청년농부의 ‘수박통 누드’
이렇게 선정적일 일인지!

by한겨레

인제·정선 지역의 20~30대 청년농부들

닭, 배추, 곤드레 등 ‘농축산물과 누드’ 사진전

“선정적이라 선정하지 않을 수 없어” SNS 호응

 

지(Head) 덕(Heart) 노(Hands) 체(Health)

4H 연합회 통해 정보 나누며 문제 해결

농업로봇 개발·치유농업 등 관심분야 다양

청년농부의 ‘수박통 누드’ 이렇게 선

왼쪽부터 윤정민, 윤증근, 하병욱, 전환석, 여정구 청년농부. 누드 출품작은 강원도청년농업인 4에이치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다. 사진 정선군 청년농업인4에이치회 제공

도시민들은 농촌을 주로 ‘문제’로 접하게 된다. 인구 고령화와 저출생으로 인한 소멸 위기 등, 당장 해결이 어려운 문제 앞에서 농민의 삶은 문제를 더 크게 드러내거나, 모범답안으로 수용될 때만 농촌 바깥으로 전달된다. 대도시 생활에 길들여져 있는 처지로는 농촌에서 일 외에 무슨 재미로 사는지 알 도리가 없기도 했다. 지금의 청년 농업인은 어떻게 일상을 가꾸고 미래를 모색할까?

 

청년농부의 ‘수박통 누드’ 이렇게 선

실마리가 된 것은 ‘강원도 청년농업인 4에이치(4-H) 연합회(회장 안경주)’가 주최한 ‘건강한 청년 농업인 선발대회’(8월2일 종료)였다. 각 시·군 대표로 나온 청년 농부들이 11장의 사진을 출품하고 페이스북 댓글 투표를 벌였다. 사진들은 진지하고 또 유쾌했다. 소 먹이를 베다가 무심한 듯 치명적 눈빛을 던지는 청년 농부가 허리춤에 옥수숫대를 꽂아 멋을 부렸고, 닭과 달걀을 든 농부는 모델처럼 탄탄한 상체 근육을 드러냈다. 영화 <킹스맨>처럼 깔끔하게 슈트를 빼입은 이도 있었다. 배경이 인삼밭이라 ‘팜스맨’이란다. 가장 파격적인 출품작은 정선군 청년 농부들이 홀랑 벗은 채로 농산물만 들고 포즈를 취한 흑백사진이었다. ‘커피를 마시다 뿜었다’거나 ‘너무 선정적이라 선정을 안 할 수 없었다’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반응도 뜨거웠다. 재미난 이벤트를 한껏 즐기자고 이리저리 궁리했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지난 8월14일, 사진의 주인공들을 만나기 위해 강원도 농업기술원의 권혁미 농촌지도사를 찾아갔다. 인제와 정선의 청년 농부들과 만남을 주선하고 길을 안내하는 권 지도사를 통해 청년농업인 4에이치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4에이치는 ‘지(Head), 덕(Heart), 노(Hands), 체(Health)’를 기본이념으로 긍정적 변화·성장의 촉매제로 농촌진흥기관에서 육성하는 농업인 학습단체다. 미국, 일본, 대만 등에서 활성화되어 있고, 우리나라는 농업을 중심으로 4에이치가 도입·확산되었으며 올해로 71년을 맞았다. 농업기술 발전과 후계인력 양성, 회원들간의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는 4에이치는 시·군 단위부터 도·중앙 단위 연합회로 조직·운영되고 있다. 농촌에는 가업을 이어받은 승계농과 기반없이 시작한 창업농,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귀촌한 경우 등 이력이 다양한 청년들이 있다. 이들이 무리 없이 어울릴 수 있었던 것도 단체의 역할이 크다.

청년농부의 ‘수박통 누드’ 이렇게 선

홍천군 김병근 청년농부. 사진 강원도 청년농업인 4에이치연합회 제공

1차 생산물 중심에서 가공과 서비스업까지 결합한 형태로 나아가는 지금의 농업은 다양한 특기를 가진 젊은이들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디자인을 전공한 회원이 있는가 하면 전자상거래나 외식업을 하던 사람도 있고,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돌아오기도 해요. 이들이 농촌에서 자기 역할을 찾도록 재능과 필요를 파악하고 서로 상생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등 자생적 성장 기회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강원도 청년 농업인을 대표하는 여성 회장도 선출되기를 기대한다는 권 지도사는 여성 농업인들에게도 보조 역할에 머물지 말 것을 조언한다. 청년 여성 농업인이 출산과 육아로 겪을 수 있는 경력 단절도 권 지도사가 고민하는 주제라고 했다.

 

춘천에서 두 시간 가량 차를 타고 인제군 인제읍 합강리에 도착했다. 사진전을 기획한 청년 농업인 오창언(23)씨를 만나기로 한 곳이다. 오씨는 유튜브 채널 ‘버라이어티 파머’를 운영하는 국내 1호 ‘농방(농사방송)’ 유튜버다. ‘인디언 감자’처럼 색다른 작물을 소개하는가 하면, 트럭 화물칸에 방수포를 깔고 물을 채워 이동식 풀장을 만들어 놀고, 계곡에서 곰취 쌈밥을 즐기는 ‘먹방’도 보여준다.

청년농부의 ‘수박통 누드’ 이렇게 선

인제군 오창언 청년농부.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처음엔 주변에서 농사 짓는 놈이 일 안하고 딴짓한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아예 그쪽으로 가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아직까지 받고 있기도 하구요.”

 

농업은 고생한 만큼 보상을 얻기 어려운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다. 오씨는 농업인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농부의 다양한 일상을 방송에 담는다. “영상 소비 형태를 보면 10대, 20대가 유튜브를 많이 이용해요. 앞으로 성장해서 나라의 주축이 될 그들의 시선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청년 농업인들을 외부로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진전을 기획한 오씨는 여러 시·도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고 다들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특히 충격적이었던(웃음) 정선 분들은 사진작가까지 모셔 와서 찍었다고 해요.”

 

오씨는 농업으로 성공해서 유명한 농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저는 돈을 잘 버는 농부들이 그걸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농부가 부를 만질 수도 있고 농업을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면모를 보여줘야 신규 농업인도 생기는 거겠죠.”

 

언론에서 억대 매출을 올리는 젊은 농업인을 ‘청년농부 대박’등의 제목으로 소개해도 실감을 하지 못하던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노동의 결과로 부를 누리는 구체적인 모습은 드러나지 않고, 근면성실함만 대견하고 기특하게 바라보는 시선의 틀에 가둬두기 때문이었다. 오씨의 희망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청년농부의 ‘수박통 누드’ 이렇게 선

정선의 청년농부들이 윤씨의 집 마당에 모였다. 왼쪽부터 윤증근, 하병욱, 김길용, 여정구 청년농부. 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다시 차를 달려 마지막 목적지인 정선군 임계면에 닿았다. 정선군 청년4에이치 회장 윤증근(34)씨와 하병욱(27)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당에서 윤씨가 기른 방울토마토를 집어먹으며 잠시 산바람을 즐기고 있으려니 다른 회원들이 차례로 도착했다. 수줍어서 사진은 못 찍었다는 김길용(33)씨에 이어 옥수수를 들고 온 여정구(37)·이진희(36)씨 부부까지 모였다. 왁자한 가운데 사진을 함께 찍었던 닭의 안부(살아 있다)를 살피며 농담이 오갔다. “원래 에이 컷은 통나무 타고 찍은 사진인데요. 회원들이 개성 있는 걸 좋아해서 벗은 쪽으로 냈죠.” 누드 촬영을 주도한 윤씨의 말이다.

 

윤씨와 김씨는 각각 5년차, 3년차 승계농이다. 하씨는 경남 사천에 딸기 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계시지만 따로 독립해 정선에서 곤드레 농사를 짓는다. 여씨는 서울에서 귀농한 지 1년 남짓 된 초보 농부다. “작년 4월에 와서 올해까지 계속 정착할 땅 구하느라 돌아다니는 중이지요. 우선 임차를 해서 옥수수 농사를 지었는데 오늘 가보니까 이것만 남기고 멧돼지가 다 먹어버렸더라고요.” 여씨의 말이 끝나자 청년들의 폭소가 터졌다. 농부가 아니면 감히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재해보험을 들어놔서 손실은 피할 수 있었단다.

청년농부의 ‘수박통 누드’ 이렇게 선

춘천시 이범준 청년농부. 사진 강원도 청년농업인 4에이치연합회 제공

젊은 농업인들이 모이다보니 자연히 부모 세대와 갈등을 겪은 경험이 오가기도 했다. 이들이 추구하는 농업은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유기농으로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한다는 중심 철학은 아버지와 생각이 맞으니까 그런 부분을 더 발전시키자는 생각이 있죠. 너는 어때?” 윤증근씨가 김길용씨에게 물었다. “농사라는 게 투자가 만만치 않아요. 저는 판로를 개척해서 농산물을 제가격에 팔자. 그런 각오가 있어요.” 하병욱씨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농사를 열심히 짓되, 좀 편하게 하자 주의거든요. 인력도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로봇을 하나 만들고 있어요.” 농장자동화를 계획하는 하씨는 농업용 로봇의 두번째 시제품을 제작하는 중이었다. 여정구씨는 나무 사이에서 산채를 키우는 임간재배와, 식물을 통해 정서적 치유를 얻는 원예치료 및 치유농업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청년농부의 ‘수박통 누드’ 이렇게 선

인제군 박병선 청년농부. 사진 강원도 청년농업인 4에이치연합회 제공

도시민이 귀농을 고려할 때 걱정하는 것 중 하나는 고립이다. 한데, 막상 정선에 와서 강원도와 경남도 사투리, 서울말을 쓰는 이들이 한자리에 어우러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정선의 청년농부들은 요즘 한창 데이트로 바쁘다는 회원의 근황을 화제에 올렸다. 정선이 고향인 배우 원빈과 이나영이 결혼식을 올린 장소가 이곳에서 멀지 않단다. 멧돼지가 남기고 간 찰옥수수 맛도 무척 쫀득하고 고소했다.

농어촌체험마을

도시민들이 농·어촌의 일상적 삶과 문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하며 쉴 수 있도록 조성한 마을. 주로 정부 각 부처의 지원을 받아 체험시설·숙소 등을 마련하고, 주민들이 마을의 장점을 살린 체험·먹을거리를 발굴해 운영한다. 도시민들은 농어촌의 일상을 체험하며 쉬고, 마을 주민들은 프로그램 운영과 생산물 판매로 수익을 얻는다. 2000년대 들어 선보이기 시작해, 지금은 국내 여행의 인기 테마로 자리잡았다.

인제 정선/글·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