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잘 안되는 애인, 미안하단 말로 부족한 당신에게

[라이프]by 한겨레

Q 나에게 딱 맞다고 생각한 여자친구

친구들과의 여행·술자리 뒤 생긴 의심

연인이라면 걱정끼치지 않는 게 맞지 않나요?


A 문제의 핵심은 더는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

감정을 남탓으로 돌려선 사랑은 불가능

연인에게 비난없이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세요

연락 잘 안되는 애인, 미안하단 말로

클립아트코리아.

Q : 우리 커플은 동갑으로 27살입니다. 여자친구는 일하다 만났어요. 교제 기간은 1년 6개월 정도 되었어요. 저는 연애를 열 번 정도 해봤지만 교제 기간이 4개월을 넘은 적이 없어요. 그만큼 저는 지금 여자친구를 정말 좋아했고, 여행도 함께 정말 많이 다니면서 결혼까지 생각할 만큼, 나에게 딱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이가 좋지 않아요. 사건의 발단은 함께 여행을 다녀온 후입니다. 여행 뒤 여자친구는 자신의 친구들과 계곡으로 놀러 갔습니다. 그런데 자정쯤 제게 휴대전화를 충전하고 연락을 준다 했기에 기다렸어요. 결론은 아침에서야 연락이 왔어요. 그냥 잠이 들었다더군요. 그런데 통화 중 남자 목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이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서운한 것은 연락을 준다 해놓고 잠이 들었다는 부분입니다. 제가 당연히 기다리잖아요. 그 부분이 너무 서운했어요. 여자친구는 “내가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서 놀다가 그런 게, 그렇게 기분이 나쁘냐”고 되묻더군요. 그렇게 티격태격하다가 제가 먼저 사과했습니다. 제가 이해해주지 못한 부분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지요.


그런데 싸운 다음 날 여자친구의 에스엔에스(SNS) 프로필이 다 지워져 있었어요. 같이 찍은 사진부터 다 말이죠. 왜 지운 거냐고 했더니 여행 가서 찍은 사진으로 바꾸려고 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그 뒤로도 똑같았어요. 다시 물었더니 사실은 어머니가 친언니랑 찍은 사진으로만 해놨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이해해야 하는 부분인지 잘 모르겠어요. 어머니 말씀이라니 토를 달수도 없고. 저랑 상의도 없이 일단 지우고 말해준 부분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더라고요.


며칠 지나지 않아 또 싸웠습니다. 저도 함께 아는 친구랑 논다고 해서 정말 편하게 놀게 해줬습니다. 새벽 4시가 되도 연락이 안 와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근데 여자친구가 뭔가 이상한 거예요. 전화도 나와서 받고, 그 친구에 대해 몇 번이나 물어봐도 계속 보여주지도 않고 숨기더라고요. 저는 이상한 감이 와서 그 친구를 보여 달라고 계속했더니 다른 말을 하더군요. 멀리 나와서 전화를 한다는 겁니다. “그래도 보여줘, 너 왜 계속 숨기고 안절부절못하느냐” 하니까 “보여줄게” 하더니 어디로 멀리 계속 걸어가더군요. 결론은 그 친구가 화장실을 찾다가 아는 남자애들을 만나서 술집에서 얘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도 또 이해해주고 넘어가 줘야 하나요?


요즘 들어 지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는 이 사람이 좋은데, 별로 구속하고 싶지도 않은데, 저와 여자친구는 생각이 많이 달라요. 제가 원했던 건 “네가 그렇게 생각하게 해서 미안해, 조심하도록 할 게.” 이 한마디면 되는데. 여자친구는 그게 그렇게 기분이 나쁘냐고 묻습니다.


집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요즘 정말 많이 힘듭니다. 서로 정말 좋았는데 며칠 사이 서먹서먹하게 바뀐 것도 힘이 들고. 그렇다고 여자친구가 사과해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요. 자기는 아무 일도 없고 정말 아닌데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너무 힘이 든다고 합니다. 대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요. “믿어라! 믿어라!” 하면서도 행동은 그렇지 않은 거잖아요. 연인 사이라면 걱정 안 하게 해주는 게 맞지 않나요? 제가 너무 지나치게 이 아이에게 집착하는 건가요?

여자친구가 의심스러운 남자

A : 특별히 큰 문제가 없던 두 사람의 사이가 별안간 좋지 않은 흐름으로 흘러가는 것은 우리가 연애할 때 종종 마주하는 상황이지요. 큰 싸움도 없고, 취향도 잘 맞고, 데이트도 제법 즐거운 채로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면 ‘이 사람과 계속 이렇게 잘 지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셔야 할 것이 있어요. 연애 초반의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고 ‘커플'이 되었다고 해도, 다들 크고 작은 위기를 맞고 결국 그 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헤어진다는 것이죠. 초반의 떨림과 데이트의 즐거움이 관계를 지배할 때에는 이런저런 문제나 서로의 차이점이 있어도 서로 눈을 감아주고 지나가지만, 그 떨림과 즐거움이 서서히 지나가고 나면 두 사람은 느끼게 되는 거죠. 눈을 감았던 문제가 사실은 눈을 감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가 어떻게 지나가느냐에 따라 커플의 운명은 결정됩니다. 1년 반에서 3년 사이에, 그래서 많은 커플이 헤어지고요.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느냐고 의문을 가지셨는데요, 네 사실 정말 많은 커플이 결혼까지 생각해보지만 결국 헤어집니다.


이제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 볼까요. 일단 당신은 여자친구가 지금 당장 눈앞에 있지 않을 때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그야말로 ‘팩트 체크'를 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여요. 조금이라도 정보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때,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느낌이 들 때 그걸 하나하나 체크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죠. 당신은 어떤 이유였든, 지금 여자친구를 믿지 못하고 있어요. 사사건건 증거를 잡으려는 사람처럼 체크하고 있죠. 집착이라고까지 말하진 않겠습니다만, 상대방을 믿고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죠. 매일 밤 귀가를 체크하는 것이 연인의 권리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사실 그게 또 무조건 부여되는 ‘권리'는 아니지 않나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게 해서 미안해, 다음부터 조심할게'라고 말하면 충분하다고 말하는데요. 정말 그걸로 충분한 것은 맞나요? 당신에게 중요한 건 언제부터인가 시작된 그녀에 대한 의심 그 자체가 아닌가요?


그녀가 당신의 ‘팩트 체크'에 순순히 응했거나, 이렇다 할 이상 징후가 감지되지 않았을 때는 별문제가 없었을 테죠. 하지만 어느 시점엔가 그녀는 뭔가 숨기는듯했고, 당신은 그것에 대해 불쾌함을 느끼기 시작했을 거예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당신 눈앞에 그녀가 없을 때마다 그녀는 불편해하고, 당신은 불쾌해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문제의 핵심은 그녀의 사과가 아닙니다. 당신이 그녀를 더는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당신 입장에서는 의심할 만한 행동을 계속하면서 ‘아무 일도 없다'고만 말하고 있다는 거죠. 그녀와 당신 사이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깨진 신뢰를 되돌리는 일이지, 의심에 가득 차서 하는 영상 통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에는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을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자신의 감정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관계에서 더 이상의 사랑은 가능하지 않으며, 이미 나를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주고 싶어도 질리게 되는 것이 사람이지요. ‘믿음을 주게 행동을 해야 믿어주지!'라고 말하고 싶으신 것,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건 그냥 당신 욕심일 수도 있어요. 상대방이 나만 만나면 그건 다행이고 행복한 일이지만, 마음이 변하고 바람이 나 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당신이 계속 집착하고 걱정한다고 해서 상황이 좋은 쪽으로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여자친구에게 당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고백하세요.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힘든 부분을 고백하는 것은 자신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는 대화법입니다. 그리고 물론 쉽지 않겠지만, 매일 밤 그녀의 위치와 상황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당장 그만두세요. 그건 당신 자신을 상처 주는 행위이고, 그녀가 점점 더 구속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에요. 이미 바람을 피우고 있다면 어차피 이 관계는 곧 끝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상태였다면 여자친구도 점점 당신에게 편안함을 느끼고 더 믿음을 주려고 하지 않겠어요? 다가오는 태풍을 통제할 수 없듯,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없어요. 당신이 이 부질없는 팩트 체크와 의심을 먼저 내려놓을 때, 그녀의 진심과 진실도 더 확실히 그리고 더 빨리 알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곽정은(작가)

2018.09.0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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