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식당’ 청년몰, 리얼리티 화면 그 너머에 진짜 현실

[비즈]by 한겨레
‘골목식당’ 청년몰, 리얼리티 화면

'백종원의 골목식당'. 에스비에스 제공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스비에스·이하 <골목식당>)은 요식업계의 대부 백종원이 위기의 식당에 경영 컨설턴트를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이런 설정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최고봉이다. 장사가 되거나 안 되는 것은 실제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백종원의 컨설턴트는 2017년 방송한 <백종원의 푸드트럭>(에스비에스·이하 <푸드트럭>)을 통해 검증된 바 있다. 메뉴 개발, 조리법 전수, 손님 응대 교육 등으로 죽었던 상권이 살아났다. 물론 장사의 노하우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는 홍보에 있었다. 호기심에, 혹은 응원의 의미로, 방송에 소개된 가게 앞에는 긴 줄이 이어졌다.


<푸드트럭>의 성공을 <골목식당>으로 이어가고자 했을 때, 논란이 없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골목상권을 잠식한 백종원이 골목상권 살리기에 나서는 것이 옳으냐는 쓴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자 논란의 방향이 바뀌었다. 아집으로 솔루션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불성실한 태도를 보인 참가자들이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그런데 ‘인천 신포시장’ 편 이후 논란의 수준이 달라졌다. 인천시 중구청이 2억 원의 홍보예산을 제작진에 협찬한 것이 도마에 오르더니, 이제는 기본적인 위생이나 조리법도 지키지 않은 참가자들로 인해 <뒷목식당>이라는 조소가 나오고 있다.


사실 식당 위생은 민감한 이슈다. <먹거리 엑스파일> 유의 고발프로그램을 보며 몇몇 악덕업주들이 이윤을 위해 비위생적인 음식을 판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악의도 없어 보이는 업주들이 일상적으로 저런 음식을 만들어왔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외식업체 전반의 위생수준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위생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맛이 없어서 시식을 하다 뱉는 지경이다. 상권 분석이나 메뉴에 대한 고민도 없다. 전통시장 귀퉁이에 식당가가 있다는 사실을 시장상인들도 모르는 실정이다.

‘골목식당’ 청년몰, 리얼리티 화면

'백종원의 골목식당'. 에스비에스 제공

지난 ‘인천 신포시장’ 편과 방송중인 ‘대전 중앙시장’ 편은 ‘청년몰’ 사업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청년몰’은 전통시장의 빈 점포를 활용해 청년실업을 해소하고, 전통시장에 젊은 고객을 불러들인다는 취지의 사업이다. 2016년부터 시작되어 작년 말까지 창업자 522명에게 269억원을 들여 인테리어, 보증금과 임대료, 컨설팅 등을 지원했다. 하지만 3명 중 한명이 폐업했다. 그런데도 올해 국비 예산만 229억원이 잡혀있다. 혹자는 ‘청년몰’ 사업비가 국비 50%, 지방비 40%, 자부담 10%의 구성으로, 자기자본 투입액이 적다보니, 의지와 책임감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한다. <골목식당>을 통해 본 창업자들의 모습은 그런 비판이 딱히 틀린 말도 아님을 알려준다. 하지만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와 지자체에 있다. 창업 점포 수를 늘리기 위해 유동인구 적은 곳에 일단 만들어놓고, 메뉴 개발, 홍보, 기존 상인들과의 관계개선 등 사후관리가 전혀 없었다. 요컨대 중소벤처기업부나 지자체가 했어야 할 일을 백종원과 제작진이 뒤늦게 하는 셈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음식에 대한 열정도 없는 이들이 왜 청년몰 사업을 하게 되었는가 이다.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무급가족종사자를 포함해 687만 명에 이른다. 전체 취업자의 25%로, 미국의 4배, 독일과 일본의 2.5배이다. 이 중 1/5이 한달에 100만원도 벌지 못한다. 연중 폐업자 수도 개업자 수의 90%에 달한다. 그런데도 창업은 계속 늘고 있다. 올해 창업 건수가 10만건을 넘을 전망인데, 이 중 4분의 3이 자본금 5000만원 이하의 영세 업체들로, 온라인 쇼핑몰, 편의점, 음식점 등에 몰려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자영업이 매력적이어서 창업이 느는 것이 아니라, ‘고용쇼크’의 결과가 자영업 양산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즉 퇴직 후 갈 데 없는 베이비붐 세대, 고용에서 밀려난 40대, 취업시장 문턱에서 좌절한 청년들이 전 재산을 털고 대출을 받아 창업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어떤 회로를 거치든 결국은 닭을 튀기게 된다는 한국인 생애 알고리즘이 우스개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 자영업자가 정치권의 최대 화두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서구의 임금주도 성장론에 자영업자들의 사업소득증가를 포함한 개념이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제에 반발해 시위를 하는 등 정권 지지율 하락의 진앙지가 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영세해도 자산을 지닌데다 고용주의 입장에 놓이기 때문에, 자신을 자본가와 동일시하기 쉽다. 또한 경기부양책이나 지역개발 공약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우파의 지지기반이 되곤 한다. 최근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자영업 사업장에 최저임금제와 근로시간 단축의 예외를 적용해야 한다고 연설한 것은 이러한 생리를 파고들어 자영업자들과 노동자들을 반목시키려는 노림수다. 하지만 정작 자영업자들이 망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과밀 경쟁, 프랜차이즈 가맹비, 임대료 등을 통해 대기업과 건물주에게 수탈을 당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잘되면 비슷한 업종이 난립하고 이익은 건물주가 가져간다. 90% 확률로 망하면 창업자금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다. <골목식당>의 텅 빈 ‘청년몰’에서 의욕도 없이 하루하루 버티는 자영업자들의 모습은 백종원의 가르침과 방송 홍보로도 해결할 수 없는 개미지옥의 진실을 희미하게 누설한다. 진짜로 봐야 할 리얼리티는 화면 너머에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황진미

2018.09.1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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