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린치” “일방적 테러” 인천퀴어축제에서 무슨 일이?

[이슈]by 한겨레

8일 열린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

기독교단체 등 1000명 몰려와 반대집회

행사 진행 파행…부스 운영·공연 무산

참가자들 “깃발 등 물품 훼손…폭행·성희롱도”

조직위 “경찰 소극적 태도로 혐오세력 폭력 방조”

“집단적 린치” “일방적 테러” 인천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차량을 반대집회 참가자들이 둘러싸고 있다. 사진 홍가라씨 제공

“한국 성소수자 운동 역사상, 린치를 당하다시피 한 이런 폭력 범죄 현장은 거의 처음이다.” (심기용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8일 인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열린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반대집회 관계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불법촬영, 폭언, 성희롱을 당했다는 참가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의 인권과 성적 다양성을 알리는 행사로 2000년 서울에서 처음 개최된 뒤 대구, 전주에서 열렸고 인천 다음으로 제주, 부산, 광주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집단적 린치’, ‘일방적 테러’라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축제조직위원회는 16개 연대단체,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과 10일 오후 2시30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혐오범죄를 방조했다”고 주장했다.

“집단적 린치” “일방적 테러” 인천

제1회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에 내걸린 반대집회 플래카드. 사진 축제 참가자 제공

드러눕고, 깃발 뺏고, 차량 훼손도…축제 ‘파행’

축제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조직위는 10일 기자회견에서 “기독교 단체 등 반대집회 참가자들이 7일 밤부터 광장 안에 여러 대의 차량을 세워 점유하고 밤샘 기도회를 열었고, 8일 새벽 6시에 조직위가 광장에 도착했을 때 여전히 200여 명이 광장을 무단 점거하고 무대 설치를 방해했다”고 밝혔다.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속속 집결하면서 그 숫자는 1000명(경찰 추산)으로 늘어났다.


축제는 8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조직위는 오전 11시46분 트위터를 통해 “다수의 혐오세력 방해로 인해 축제 진행이 지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반대집회 참가자들은 축제장에 난입해 바닥에 드러누워 행사 진행을 막았다.


반대집회 참가자들이 광장을 둘러싸면서 축제 참가자들은 사실상 고립됐다. 당시 광장에 있었던 성소수자부모모임은 9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8일)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없는 환경에 놓여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축제 참가자가 경찰 추산 300명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축제에 참여하고 싶어도 광장에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집단적 린치” “일방적 테러” 인천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의 깃대가 꺾여있다. 출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 누리집

정오가 넘어서자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축제에 참가한 성소수자인권재단 비온뒤무지개재단은 낮 12시36분 트위터에 글을 올려 “혐오세력이 경찰의 저지선을 밀고 들어와 부스를 제대로 열지 못하게 하고 참가자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비온뒤무지개재단도 깃발이 부러지고 물품이 훼손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현장 상황을 알렸다. 대전성소수자인권모임 ‘솔롱고스’도 오후 4시께 트위터에 글을 올려 “깃대가 끌어내려 지고 예비 깃대 2개가 부러졌다”고 전했다.


축제 차량도 부서졌다. 조직위는 10일 기자회견에서 “오후 4시께 공연자들을 태운 퍼레이드 차량이 진입하자 혐오세력이 달려들어 차축 밑에 다리를 넣고 누웠으며 다시 바퀴를 펑크내고 차량과 장비를 훼손하고 공연자들을 위협했다. 심지어 휠체어 바퀴 밑에 발을 넣고 ‘왜 발을 밟냐’며 윽박지르기도 했다”고 밝혔다.


축제는 부스 운영, 공연 등 준비한 행사를 대부분 소화하지 못했고 저녁 무렵 퍼레이드만 가까스로 진행할 수 있었다. 조직위는 밤 10시32분 트위터에 글을 올려 “험난한 고군분투 끝에 행진을 마치고 최종 해산했다. 20분으로 계획한 행진이 무려 5시간이나 걸렸지만 우리의 존재는, 우리의 사랑은 영겁이 지나도 부정될 수 없다”며 내년에도 축제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폭행당한 사람 한둘 아냐”…불법촬영 피해 고발도

축제 참가자들은 반대집회 참가자들로부터 떠밀리는 등 물리적 폭력을 당했고 성희롱까지 당했다고 나섰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폭행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글이 올라왔다.


축제 공연팀의 일원이자 성소수자인 홍가라(22)씨는 8일 오후 트위터에 글을 올려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혐오세력이 트럭에 올라가려 하고 ‘죽인다’고 했으며 결국 트럭 바퀴에 구멍을 냈다.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찌른 사람들도 있었다. 혐오세력들이 끝까지 따라와서는 집에 가나 안 가나 감시했고 나는 손을 떨면서 콜택시를 불렀다. 심지어 지하철로 간다는 분들을 끝까지 따라가자며 선동하던 젊은 남자들도 있었다. 우리들의 깃발대는 이미 부러졌고 다들 옷이 만신창이다. 나는 면사포를 썼는데 몇번이고 면사포를 잡아당겨 얼굴 보려는 사람들 , 내 귀에 대고 집에 가라 소리 지른 사람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홍씨는 10일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나 역시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이지만 솔직히 당혹스러울 정도로 폭력적인 현장이었다”며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고 말했다. 홍씨는 “광장 인근 거리에서 내 바로 앞을 걷던 축제 참가자의 얼굴을 한 할아버지가 ‘동성애 반대’ 피켓으로 내리눌렀다. 그러고도 주먹을 휘두르려고 해 내가 그 주먹을 잡고 막았다”며 위급했던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또 다른 참가자 역시 ‘동성애는 죄악’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와 자신의 팔에 난 상처를 찍은 사진 등을 트위터에 올리고 “(반대집회 참가자한테) ‘벌레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를 꼬집고 할퀴기도 했다”고 썼다.

“집단적 린치” “일방적 테러” 인천

제1회인천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다가 팔에 상처를 입었다며 한 축제 참가자가 트위터에 올린 사진.

심기용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성소수자를 향해 성관계 시 포지션을 직접 언급하면서 더럽다고 말하거나, 포주한테 잡혀갈 것이라는 성희롱 발언도 있었다”며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차별적 발언, 원색적 비난, 성희롱도 축제 참가자들에게 큰 심리적 위협이 됐다”고 말했다.


아우팅(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 정체성이 밝혀지는 경우)이 우려되는 불법촬영이 이뤄졌다는 말도 나왔다.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큐브)는 9일 성명을 내고 “(반대집회에 참가한) 마스크를 쓴 남성들은 카메라를 내세워 폭력에 맞선 사람들의 초상권을 침해했다. ‘떳떳하다면 얼굴을 가리지 말라’라는 헛소리와 성희롱이 난무했다”고 비판했다. 큐브는 “인천퀴어문화축제는 혐오와 폭력이 난무했던 아수라장이었다”며 “동등한 두 세력이 맞붙는 집회가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세력의 일방적인 테러가 자행됐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인천퀴어문화축제 진행을 방해한 혐의로 모두 8명을 입건했지만 축제 참가자 개인에 대한 폭행 혐의는 없다. 혐의별로 보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5명, 공무집행방해 2명, 교통 방해 1명 등이다.

기독교 내부에서부터 비판 나와

축제 참가자들의 증언이 이어지자 기독교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성소수자 기독인들의 모임 ‘물꼬기’는 9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려 “여러 참가자분들이 전해주시는 끝없는 폭력사태 증언에 울분을 금할 길이 없다”며 반대집회에 참석한 기독교단체를 향해 “고함을 지르고 몸싸움을 하는 것이 믿음인 양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사태는 분명히 잘못되었다. 사랑을 행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폭력을 행하는 게 부끄럽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집단적 린치” “일방적 테러” 인천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성 소수자 단체 회원과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시민이 플래카드를 들고 맞서고 있다. 연합뉴스

트랜스젠더 인권 향상 모임인 ‘트랜스해방전선’은 9일 ‘혐오는 예수의 언어가 아니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그들은 ‘사랑해서 반대한다’를 위시한 여러 피켓을 들고 성소수자들이 가는 곳곳을 막고 부쉈다. (중략) 예수는 이런 모습을 원치 않았을 게 분명하다. (중략) 당신들의 사랑은 너무나 날카롭게 간 칼날이다”며 비판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도 9일 입장문을 내 “혐오가 종교라는 이름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그저 소수자에 대한 폭력일 뿐임을 한국사회는 직시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서라도 이런 폭력사태를 묵과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10일 아침 <와이티엔>(YTN) 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반대자에 의해 폭력적으로 무력화되는 일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제는 중단돼야 한다”며 “다름을 존중할 줄 아는 사회로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직위 “동구청과 인천경찰이 혐오범죄 방조·조장”

조직위는 경찰에 합법적으로 집회신고가 된 축제가 반대집회 참가자들의 폭력으로 물들게 된 데는 경찰의 방조가 큰 역할을 했다며 인천지방경찰청을 규탄하고 나섰다.


조직위는 10일 기자회견에서 축제 당일 경찰 대응을 강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조직위는 축제 준비 차량 진입을 막는 반대 집회 참가자들을 한 차례 해산시킬 뿐 강제집행을 하지 않은 점, 퍼레이드 차량을 흔들고 바위에 펑크를 낼 때도 아무런 조처가 없었던 점, 폭력행위로 연행된 반대집회 참가자들이 대부분 서너 시간 만에 풀려나 광장으로 돌아온 점 등을 사례로 들었다. 가까스로 성사된 퍼레이드가 반대집회 참가자들로 인해 막힐 때도 경찰이 축제 조직위에 해산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심기용 집행위원은 “경찰은 장애인 축제 참가자가 반대집회 참가자들에게 밀쳐지고 욕설을 듣는 상황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폴리스라인이 너무 허술했다”고 비판했다.


조직위는 경찰뿐 아니라 이례적인 조건을 달아 광장 사용을 불허한 인천 동구청도 사태를 악화시켰다며 책임을 묻고 나섰다. 인천 동구청은 지난달 조직위가 제출한 광장 사용 신청서를 반려하며 안전요원 300명, 주차장 100면을 확보해 재신청하라고 요구했다. 지금껏 인천 동구청이 동구에서 열린 다른 행사에서 주차장을 미리 확보해야만 장소 사용을 허가한다는 조건을 내세운 적은 없었다. 또 해당 광장에서는 구청 주최로 12만명이 참여하는 축제가 열린 적도 있다. 조직위가 시민들의 탄원서를 모아 ‘광장 사용 신청 반려 취소’ 민원을 제기했지만 인천 동구청은 교통 혼잡을 이유로 끝까지 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이에 대해 심 집행위원은 “광장 사용 불허가 (빌미가 돼) 반대 세력의 폭력 집회가 더 강성해졌다”고 지적했다.


조직위는 인천 동구청장의 공식 사과, 인천경찰청장 사퇴 등 이번 폭력 사태의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는 입장이다. 또 공식 피해제보 계정(icqcf.report@gmail.com)을 통해 축제 당일 일어난 폭력, 협박, 성희롱, 상해 등 피해 사례도 받고 있다. 향후 소송 처리 등을 위해서다.


비온뒤무지개재단도 이메일(rainbowfoundation.co.kr@gmail.com)로 피해 제보를 받고 있다. 재단은 10일 공식 누리집을 통해 “피해를 입었는데 집에 알릴 수 없는 상황의 참가자에게 긴급 의료비를 지원하거나, 심리적 트라우마로 인해 긴급 상담이 필요한 사람의 상담비를 지원한다든지, 혐오세력에 대항하는 활동에 대해 지원을 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2018.09.1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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