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 제주공항 주변 여행법

[여행]by 한겨레

[제주&]제주국제공항 주변 명소


옹기종기 어선들이 모여 있는 도두항

신혼여행 대표 경승지 용두암

용담해안도로에서의 멋진 드라이브


낙조가 아름다운 도두봉

볼거리 먹거리 풍부한 향토 오일장

등잔 밑이 어둡다… 제주공항 주변 여

도두항

어린 시절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육지로 가는 꿈을 꾸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날의 내가 귀여울 따름이지만, 당시 육지에 대한 꿈이 너무 간절하고 절실해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가끔 어머니는 제주를 비행기로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하셨다. 물론 나도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살고 있지만, 어머니의 그 말은 휴양이나 업무 때문에 제주를 찾는 사람들을 이르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저 유배지로만 여겨졌던 제주에 하루에 많게는 수만 명의 사람이 오가는 모습을 먼 옛날의 제주 사람이 본다면 얼마나 신기할까?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제주에 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배였다. 옛날에 바다를 건너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큰 도전이었다. 옛날 지방관들에게 제주행은 좌천 중에서도 지독한 좌천이었고, 유배객에게는 돌아올 기약이 없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제주에 도착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 일도 허다했다. 광해군은 유배를 와서야 유배지가 제주인 것을 알고 오열했다고 한다. 과거 누군가는 절망에 빠져 제주에 왔을 테지만, 요즘 사람들은 흥분과 기대를 가슴에 안고 제주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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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암

매일 수많은 설렘과 아쉬움이 밀물과 썰물처럼 교차하는 제주국제공항이지만 이상하게도 공항 주변을 여행하는 관광객은 드물다. 관광객이 있다고 해도 출발·도착 전후로 잠시 제주를 느낄 요량으로 찾을 뿐, 오래 머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지 않나. 관광객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항 주변에는 제주다운 명소들이 많다. 검은 현무암과 쪽빛 바다, 어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름다운 항구, 봉긋 솟아오른 오름 등이 공항 주변에서 숨 쉬고 있다.


공항 주변 명소를 뽑으라면 단연 용두암이 첫 번째다. 공항에서 3.59km 떨어져 있는 용두암은 제주를 대표하는 경승지로 한때 신혼여행, 수학여행, 졸업여행의 필수 코스였다.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기 전 제주를 찾았던 여행자라면 사진첩 어딘가에 용두암 앞에서 찍은 빛바랜 기념사진 하나쯤 있을 것이다. 용두암은 화산 폭발로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와 만나 만들어진 높이 10m의 바위로 하늘로 솟아오르는 용 모양이다. 누가 뭐래도 용두암 여행 포인트는 해안가에 앉아 해녀들이 갓 잡은 해산물에 소주 한 잔 하는 게 아닐까?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용두암과 바다를 보면,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서 희망과 절망을 보았을 옛 제주인이 떠올라 마음 한쪽이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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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해안도로

용두암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이어진 해안도로는 제주도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해안도로다. 거친 파도와 검은 돌이 부딪쳐 내는 자연의 화음을 배경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무척 아름답다. 공항과 가까워 제주에 도착해 가장 먼저 푸른 바다를 보며 드라이브하기 좋다. 밤바다를 볼 수 있는 조명도 설치해 밤낮으로 발길이 이어진다. 해안도로를 따라 카페촌이 형성돼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제주 연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곳을 거쳐간다. 요즘 제주 연인들에게 사랑받는 곳은 ‘닐모리동동’이다. 제주도 식재료로 만든 퓨전 음식 식당 겸 카페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려 인기가 좋다.


제주도에는 ‘제주의 머리’에 해당하는 오름이 두 개 있다. 용두암을 중심으로 서쪽에 있는 도두봉과 동쪽에 있는 사라봉이다. 사라봉은 제주 북부지역에서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도두봉은 사라봉에 가려 ‘제주의 머리’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오랜 시간 소외된 조금은 초라한 오름이다. 그러나 제주민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오름이다. 푸른 바다와 제주시, 공항, 그리고 멀리 한라산까지 한눈에 품을 수 있는, 제주시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방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펼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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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두봉

용두암을 뒤로 하고 해안도로를 굽이굽이 달리다 보면 도로 끝자락에 도두봉이 보인다. 도두봉에는 능선이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오름이 있다. 현지인들은 ‘도들오름’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확히 해안도로가 끝나는 곳에 오름 시작점이 있다. 소나무와 억새가 무성하지만 오르는 길은 나무데크 계단으로 돼 있어 쉽게 오를 수 있다. 10분이면 오름 정상을 탐할 수 있다. 유유자적 흘러가는 뭉게구름이 보이는 푸른 하늘 아래 작은 풀밭과 나무 벤치가 있다. 정상 한구석에는 ‘도원봉수터’라고 적힌 검은 표석도 있다. 도두봉은 제주시 서문의 관문이다. 조선시대에 설치된 도원봉수는 급한 일이 생기면 동쪽의 사라봉 봉수와 교신했다. 정상에서 보는 제주시의 풍경은 아름답다. 동쪽의 사라봉을 시작으로 끝없이 이어진 해안도로가 해안을 따라 예쁘게 그려져 있고, 남쪽으로는 한라산의 북사면과 크고 작은 오름들, 제주도에서 가장 큰 도시 제주 원도심과 신시가지,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다. 비행기가 손에 닿을 듯 가깝게 하늘에서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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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두봉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오름 서쪽에는 도두항이 있다. 도두항은 제주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이자 제주 항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도두봉과 이어져 있는데, 항구로 내려가면 어린아이들처럼 가지런히 줄선 고깃배와 요트가 평화롭게 떠 있다. 햇살이 파도에 반사돼 반짝이면 이국적인 아름다움까지 더해 세계적 미항이라는 시드니나 나폴리가 부럽지 않다. 항구에 있으면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등대와 마치 심청이처럼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는 석양, 해무가 자욱한 망망대해와 새벽 바다를 밝혀주는 한치잡이 배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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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테우 해수욕장 주변 방파제와 등대

도두항에서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갯바위 해안과 올레 17코스, 바닷가 캠핑장, 빨강과 하양 색채가 강렬한 한 쌍의 말 형상의 등대, 그리고 이호테우해수욕장이 나온다. 부드러운 곡선의 눈썹 같은 해안 풍경이 더없이 아름답다. 마치 하늘에서 초승달을 따놓은 것 같다. 해수욕장 주변으로 멋스러운 카페와 맛집이 꽤 생겼다.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 ‘조아찌’는 지붕이 낮은 오래된 제주 가옥을 멋스럽게 개조했다. 벽면 한쪽이 모두 창문이라 아름다운 경치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여유롭게 해변을 바라보며 진한 커피 향을 느끼다 보면 시간이 자연스레 흘러간다. 해수욕장 동쪽 끝에 ‘원담’이라 불리는 제주 돌담도 보인다. 과거 제주인들은 밀물에 몰려든 고기떼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원담을 쌓아 물고기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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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향토오일장

제주공항 주변 명소 중 정수는 제주시 향토 오일장이 아닐까? 제주시 향토 오일장은 서귀포장, 모슬포장과 더불어 제주 3대 오일장 중 하나로 제주를 대표하는 향토시장이다. 2일과 7일에 장이 선다. 제주공항 입구에서 외도동 방면으로 조금만 가면 된다. 1905년에 개장했으니 그 역사가 100년을 훌쩍 넘겼다. 무려 3만여 평의 땅에 1천 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야채와 과일, 신선한 해산물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빙떡, 순대국밥, 떡볶이 등 다양한 음식들 맛볼 수 있는 식당도 즐비해 눈과 입이 즐겁다.


비행기가 제주도와 가까워지며 보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푸른 양탄자처럼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지나면 듬직하게 앉아 있는 한라산과 오름, 그리고 옹기종기 모인 마을이 보인다. 옥빛 파도가 검은 현무암과 만나 하얀 거품을 내며 부서지는 해안선은 예술가가 그린 한 폭의 그림 같다. 이 아름다운 풍경 끝에 제주국제공항이 있다. 비행기는 그렇게 제주에 닻을 내린다.

  1. 용두암 : 한라산 신령의 옥구슬을 용이 몰래 훔쳐 하늘로 승천하려다 신령이 쏜 화살에 맞아 돌로 굳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제주 제주시 용담2동
  2. 용담해안도로 : 용두암에서 서쪽 도두봉까지 이어진 해안도로로 레포츠 공원, 카페 거리, 횟집 등이 있다. 제주 제주시 용담3동
  3. 도두봉 : ‘제주시 숨은 비경 31’ 중 하나로 정상에서 제주공항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제주 제주시 도두동 산1
  4. 도두항 : 근교의 전형적인 어촌인 도두동에 있다. 추자도행 낚싯배들이 출항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제주 제주시 도공로 2
  5. 이호테우해수욕장 : 제주 제주시 도리로 20
  6. 제주시 향토 오일장 : 제주 제주시 오일장서길 26
  7. 닐모리동동 : 제주 제주시 서해안로 452, 영업 시간: 4~10월 10:00∼23:00, 11∼3월 10:00∼22:00(식사 주문 21:30분까지)
  8. 조아찌 : 제주 제주시 테우해안로 160, 영업 시간: 09:00~24:00

글·사진 문신기 여행작가

2018.09.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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