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우스 첫사랑은 북한 여성…TV속 달라진 남북관계

[컬처]by 한겨레

한반도 훈풍에 TV속 남북관계도 훈훈

 

‘내 뒤에 테리우스’, 화해무드 반영 대사

‘프로메테우스’는 아예 대본 수정

‘수다로…’는 북한 소소한 일상 소개

테리우스 첫사랑은 북한 여성…TV속

'내 뒤에 테리우스'의 한 장면.

“남북관계가 평화모드인데 첩보라니”


하지원이 내년 방영하는 드라마 '프로메테우스'에서 하차한다는 기사가 뜨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사실 알고보면 '프로메테우스'는 한반도 평화를 방해하려는 세력에 남북한 첩보원이 함께 맞선다는 내용이지만, 누리꾼들은 ‘국가정보원’이라는 말에 자동으로 ‘평화분위기’를 언급한다. 북한을 적대적 관계로 보지 않는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지난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 이래 북한은 더는 ‘멀다고 하면 안되는’ 나라가 됐다. 덩달아 대중문화 속 남북관계도 달라지고 있다. 그간 드라마나 영화에서 북한을 경계 대상으로 그렸던 것에서 공조하는 관계로 다루고, 통일을 전제로 이후를 대비하는 예능도 등장하는 등 안방극장에서 자연스레 스며들고 있다.

남북관계 변화에 대본도 수정

내년 방영을 앞둔 '프로메테우스'는 남북화해무드에 아예 설정 자체를 바꾸기도 했다. 2년 전 기획 단계상의 줄거리는 북한 핵처리 방법을 둘러싼 작전이 뼈대였다. 그러나 대본이 많이 진척된 상황에서 남북화해무드가 급진전되자 대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프로메테우스'의 한 제작진은 “원래 내용을 자세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남북화해 분위기에 드러나는 세계 정세를 반영해 설정을 바꾸고 대본을 다시 썼다”고 말했다. 결국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자신들의 이익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다국적 비밀조직이 비핵화 협상을 방해하려고 테러작전을 시행하고, 남북 첩보원들이 평화와 희망을 지키려고 이에 맞서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방영중인 '내 뒤에 테리우스'(문화방송)는 전직 국가정보원 요원 김본(소지섭)과 앞집 여자의 좌충우돌 첩보 작전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드라마는 1, 2회부터 국가안보실장이 제 3세력에 의해 살해당하는 등 언뜻 과거와 다를바 없는 무거운 내용처럼 느껴지지만, 북한을 대하는 소소한 장치들이 다르다. 극중 비밀 조직이 재고 전투기를 말도 안 되는 값에 사들이라고 협박하자, 국가안보실장 대사가 이렇다. “남북평화분위기가 무르익는데, 무슨 그런”. 남북관계가 좋아지니 전투기를 사봤자 쓸 일이 없다는 얘기다. 김본은 연인인 북한 핵물리학자를 망명시키려다 실패한 뒤 잠적해서 비밀 요원으로 살아간다. 그가 “서울에 가면 남산타워에서 모히또 한잔 사주시라요”라는 첫사랑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간다는 설정은 북한 여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내 뒤에 테리우스' 제작진은 “국가정보원 요원이 베이비시터가 된 코믹함에 방점을 두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라고 하지만, “남북평화분위기가 무르익는다” 등의 대사는 상황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테리우스 첫사랑은 북한 여성…TV속

‘수다로 통일-공동공부구역 제이에스에이(JSA)’ 포스터. 이채널 제공

북한의 일상을 톺아보는 예능도 등장

9월11일 '이(E)채널'에서 시작한 '수다로 통일-공동공부구역 제이에스에이(JSA)'는 통일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동안 종합편성채널에서 새터민들이 나와 북한을 기괴한 곳처럼 ‘증언’하던 것에 견주면 놀라운 변화다. 새터민으로 구성된 북한 대표와, 한국 대표가 출연해 매회 안건을 다룬다. ‘통일 표준어 어떻게 만들까’, ‘통일 뒤 대표음식은 뭐가 될까’ ‘열차 타고 유럽까지’ 등이다. 소소해보이는 소재로 현재 북한의 생활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표준어 이야기를 하면서 “함경북도는 경상도, 평양은 서울, 황해도는 충청도와 말투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나 “2003년 '가을동화'부터 남한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는 등 북한 주민의 생활을 깊게 들여다보게 한다.


북한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묘사했던 종편 프로그램과 달리 1980년대는 북한 보육여건이 남한보다 좋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2012년 이래 매년 11월16일을 ‘어머니날’로 정해 전국에서 자녀 4명 이상 낳은 다둥이 엄마들을 뽑아 행사를 진행한다거나, 모유가 잘 나오도록 산모들이 발족(족발)을 많이 먹는다는 등 자잘한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요즘은 북한도 혼전 동거를 한다는 얘기에 나이·세대에 따라 새터민들이 보이는 반응이 다 다른 것 또한 남한과 별 차이가 없다. 김승훈 피디는 “남북 관계가 좋아진 분위기를 반영해 7월에 기획했다. 통일을 밝고 긍정적으로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 일상 속으로 스며든 북한 콘텐츠에 진행자인 김구라, 김성주도 “어디까지 말해야 하느냐”고 제작진에 문의할 정도라고 한다.

테리우스 첫사랑은 북한 여성…TV속

조심스러워야 할 북한의 가벼움 우려도

‘먹방’이 점령하고 있는 한국 예능프로그램에서 이제 북한이 새로운 콘텐츠 영역으로 떠오를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북한의 음식·연예 같은 생활문화 소재는 친근하면서도 우리가 모르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 예능 피디는 “‘카더라’처럼 여겨지며 비(B)급 콘텐츠였던 북한이 메인 콘텐츠가 되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가 시청자들에겐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특히 예능의 경우 신중해야 할 통일을 너무 가볍게 다루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수다로 통일…'의 경우 목숨 걸고 압록강을 건너왔다는 이들을 향해 ‘죽을 고비를 넘기더니 대담해졌네’라는 식으로 가벼운 발언을 던지는 것은 불편하기도 하다. 김승훈 피디는 “북한 콘텐츠를 예능 포맷으로 편하게 다루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시행착오가 있다”며 “정치적인 색깔이 묻어나는 내용은 편집하거나, 올바른 정보를 주기 위해 편집 과정에서 전문가들에게 팩트 체크도 하며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2018.10.1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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