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갤러리가 된 군사용 지하 벙커…옛 대통령 제주 별장 거닐어 볼까

[여행]by 한겨레

박물관 기행, 다시 태어난 옛 건축물


군사통신시설이 프로젝션 맵핑 갤러리로

커피박물관이 된 병사들의 숙소

대통령 지방공관 개조한 어린이꿈바당도서관

빛의 갤러리가 된 군사용 지하 벙커…

지난 4월 프랑스 ‘컬처스페이스’사가 파리 11구 지역에 위치한 낡은 주조공장을 개조한 곳에서 선보인 아미엑스 ‘빛의 아틀리에’ 전경.

지난 6월28일 성산일출봉에서 성읍민속마을로 가는 1190번 국도를 따라가다 샛길로 접어드니 곶자왈 숲속에 숨어 있는 근사한 건물이 마치 비밀의 화원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커피박물관 ‘바움’이다. 야자수가 서 있는 이국적인 박물관 건물의 뒤쪽 정원으로 올레길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지하 벙커의 육중한 철문이 눈에 띈다. 케이티(KT)가 국가 기간통신망을 운영하기 위해 1990년에 설치한 시설로 한국과 일본, 한반도와 제주 사이에 설치된 해저 광케이블을 관리하던 곳이다. 당시 군사시설로 분류돼 병력도 주둔했지만, 지금은 기술 발달로 용도를 다해 폐쇄돼 2012년 민간에 매각됐다.


그 벙커가 올 가을이면 화려한 프로젝션 맵핑(대상물 표면에 영상을 투사하는 기술) 갤러리로 거듭난다. 모바일 결제 솔루션 전문기업에서 문화기술기업으로 변신 중인 한국의 (주)티모넷이 프랑스 예술전시 통합서비스 회사인 컬처스페이스와 협력해 10년 동안 벙커를 임대해 아미엑스 상설전시를 시작한다.


‘아미엑스’(AMIEX:Art&Music Immersive Experience, 예술&음악 몰입형 체험)란 광산, 공장, 발전소 등 산업 발전으로 도태된 장소에 프로젝션 맵핑 기술과 음향을 활용해 전시 영상을 투사하는 미디어아트의 한 종류다. 100여 개의 비디오 프로젝터가 이미지를 만들고, 수십 개의 스피커가 웅장한 음악을 선사해 관람자에게 몰입감과 감동을 준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특히 아미엑스는 단시일 내에 저비용으로 폐공장, 폐교 등 기능을 상실한 건물을 예술 공간으로 되살리는 도시재생사업 도구로 활용한다. 컬처스페이스는 지난 2012년부터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폐채석장과 파리의 옛 주물공장에서 아미엑스를 펼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제주 ‘빛의 벙커’는 세 번째 프로젝트다.

빛의 갤러리가 된 군사용 지하 벙커…

공사에 들어가기 전 빛의 벙커 내부. (주)티모넷 제공

입구가 좁아 밖에서는 몰랐는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벙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이 2975㎥(900평)에 높이 5.5m의 규모가 의외로 웅장했다. 이곳에 아미엑스가 펼쳐지면 그야말로 장관이 될 듯했다.


컬처 스페이스와 (주)티모넷은 첫 전시작으로 20세기 황금 색채의 거장으로 불리는 구스타프 클림트 서거 10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빛의 벙커’는 앞으로 클림트, 고흐, 모네 등 서양 화가들의 명화로 구성된 상설전시와 국내 근현대 및 전통 미술로 구성된 기획전시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특히 이중섭, 김창열, 김영갑 등 제주 출신이거나 제주에 연고가 있는 유명 작가들을 비롯해 신진 및 중견 작가들의 우수 작품도 발굴해 미디어아트로 제작할 예정이다.

빛의 갤러리가 된 군사용 지하 벙커…

커피박물관 외경

벙커 옆 커피박물관은 군사시설로 사용한 통신기지 사무실과 그곳을 지키던 병사들의 숙소였던 부속 건물이다. 매물로 나온 이 통신기지 건물과 터를 현재 이수찬 대표가 인수해 커피박물관으로 꾸몄다. 야자수가 우거진 잘 가꿔진 정원도 아름답지만, 한국박물관협회에 소속된 1종 박물관으로서 140년 된 상업용 그라인더를 비롯해 커피 추출 도구와 세계 각국의 커피잔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비 오는 날이나 햇빛 쏟아지는 날 커피 향에 취해 한없이 머무르고 싶어지는 그런 공간이다.

빛의 갤러리가 된 군사용 지하 벙커…

커피박물관에 전시된 옛 커피글라인더.

제주에는 이처럼 옛 건물을 다듬어 박물관 등 문화 공간으로 만드는 곳이 하나둘 늘고 있다.


제주도청에서 연북로를 따라 아라동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짬뽕집과 향토 음식점 ‘메밀꽃차롱’이 보이는 오솔길로 들어가면 무궁화 문양을 한 큰 철문과 검은 돌담이 나온다. 그 안에 경호원을 대동한 대통령이 편한 차림으로 거닐었을 법한 넓은 잔디밭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건물이 있다. 제주꿈바당어린이도서관이다. 제주꿈바당어린이도서관은 옛 대통령 별장을 개조해 도서관 겸 작은 박물관으로 만든 곳이다. 5공화국이었던 1984년 대통령 지방공관으로 신축됐다. 공사 중 인부들은 엄격한 신원 조회를 받았고, 설계를 맡은 건축사마저 출입이 제한될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고 한다. 특히 침실 및 거실의 창문은 방탄유리로 만들어졌다. 1996년 경호 유관 시설에서 해제된 뒤 ‘탐라 게스트하우스’라는 전시 공간 및 도지사 관사 등으로 활용하다 2014년 제주도가 개조 작업을 시작해 2017년 10월 어린이도서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빛의 갤러리가 된 군사용 지하 벙커…

1984년 대통령 지방공관으로 지어졌던 제주꿈바당어린이도서관

그래도 화려한 샹들리에나 내부 인테리어는 예전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1층 연회장은 어린이 열람실로 바뀌었지만, 2층의 침실과 거실은 보존해 ‘대통령 행정박물 전시실’이라는 작은 박물관이 되었다. 당시 대통령이 사용한 가구나 식기 등이 전시돼 있고, 건물과 정원이 아름다워 한 번쯤 가볼 만하다.

주소

  1. 커피박물관 바움/빛의 벙커: 서귀포시 성산읍 서성일로1168번길 89-17/064-784-2255
  2. 제주꿈바당어린이도서관:제주시 연오로 140/064-745-7101

제주/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2018.10.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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