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한 ‘가족예능’ 틀깬 ‘살림하는 남자들2’

[컬처]by 한겨레
식상한 ‘가족예능’ 틀깬 ‘살림하는

김성수(왼쪽부터), 김승현, 최민환. 한국방송 제공

지난 연말 <한국방송(KBS) 연예대상>에서 이영자의 대상 수상과 함께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의 선전이었다.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는 김승현에게 ‘우수상’을 안긴데 이어, 김승현 부모에게 ‘베스트 커플상’을, 내래이션을 맡은 최양락·팽현숙 부부에게 ‘베스트 엔터테이너상’을 안겼다. 여기에 올해의 ‘작가상’까지 수상하여 4관왕에 올랐다. 4관왕에 오른 다른 프로그램들이 <해피선데이-1박2일 시즌3>와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인 것을 감안하면,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가 얼마나 선전한 것인지 알 수 있다.


2016년 11월에 평일 심야 예능으로 출발한 <살림하는 남자들>은 남자들의 살림 솜씨를 보여주어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지만, 시청률은 저조하였다. 그래서 2017년 2월의 대대적인 개편을 통해 시즌2로 거듭났다. 시즌1이 순수한 관찰예능 프로그램이었다면, 시즌2는 내레이션을 입히고 제작진의 연출을 강화하여 드라마틱한 재미를 가미하였다. 지금의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는 관찰예능과 시트콤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인위적인 연출이 가미된 관찰예능이자 연예인 가족이 떼로 등장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시청자들의 반감을 살만하다. 가령 <백년손님-자기야>(에스비에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문화방송) 등에서 무리한 상황설정과 실제 인물들의 어색한 연기에 피로감이 쌓여왔고, <아빠를 부탁해>(에스비에스·2015)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연예인 가족들의 유명세와 특혜 논란이 지겨울 법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는 반감보다 호의적인 여론이 강하다. 그만큼 긍정적인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미덕은 ‘살림하는 남자’의 개념을 확장·정초시켰다는 점에 있다. 시즌1이 시작할 때만해도,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이 얼마나 요리를 잘하고, 빨래를 잘 개는지 보여주었다. 개중에는 아주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는 이도 있었지만, 그걸 보고 환호하기에는 석연치 않았다. 무릇 살림은, 분절된 가사노동을 얼마나 잘하는가 보다 연속된 과정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능력이 중요하다. 즉 요리를 한 번 멋지게 해 보이는 솜씨보다, 부엌의 물품과 위생을 관리하는 일상적인 노동이 살림의 본질에 가깝다. 그러니 특정 가사노동 솜씨를 뽐내는 것은 여전히 살림을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하는 개념의 산물이다. 하지만 봉태규는 살림의 최고봉이라 할 만한 육아를 자기 주도적으로 해보이며, “살림은 돕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란 말을 남김으로써, ‘살림하는 남자’의 개념을 새롭게 정초하였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극적인 구성을 가미한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에서는 돌봄 노동을 아예 혼자서 감당하는 ‘싱글 파더’를 등장시켰다.


김승현은 1990년대 하이틴 스타로 데뷔해 잘나가는 모델 겸 배우였지만, 20대 초반에 3살 된 딸이 있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내리막길을 걸었다. 딸은 김승현의 부모가 키우고 있었지만, ‘미혼부’라는 사실이 경력의 오점인양 작용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미혼부’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서, 영화 <과속스캔들>의 대사처럼 오히려 “책임지는 남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더구나 잘나가다가 쇠락한 연예인의 분투기는 이상민의 예에서 보듯이 넓은 세대의 응원을 불러일으키고, <미운 우리 새끼>(에스비에스)의 예에서 보듯이 부모의 시선에서 그러한 분투를 보는 것은 더한 공감을 불러온다.


예능 프로그램에 ‘싱글 파더’의 화두를 들여온 것은 굉장히 뜻 깊지만, 사실 김승현은 ‘살림하는 남자’가 아니다. 그 집안의 살림은 거의 김승현의 엄마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싱글 파더’이자 살림하는 남자인 김성수는 진화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의 취지에 가장 잘 맞는 인물이다. 김성수는 6년 전 참혹한 사고로 엄마를 잃은 초등학생 딸을 홀로 키운다. 아침밥을 차려주고 실내화를 챙겨주며,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나누는 살가운 포옹과 티격태격의 일상은 애틋한 정으로 가득하다.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의 또 다른 재미는 가부장제에 대한 희화화에 있다. 김승현의 아버지는 “광산 김씨”로 표상되는 가부장제의 허세를 보여주지만, 적당히 거리를 둔 카메라의 시선과 자가당착적인 플롯은 가부장제를 시대착오적인 패러디로 느끼게 해준다. 요컨대 실존 인물이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가부장제 소동극이 되는 셈이다.

 

1인 가구 시대의 예능이라 할 만한 <미운우리새끼>와 <나 혼자 산다>(문화방송)가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한동안 명맥이 끊겼던 가족 시트콤이 이런 방식으로 부활한 것에 대해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정상 가족의 일상을 담은 시트콤 <초인가족>(에스비에스·2017)이 아무런 공감을 얻지 못하고 끝난 반면, 정상성을 탈피한 가족의 일상을 리얼리티 쇼의 형태로 보여주는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가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이제 정상가족의 규범성이 허구적으로도 약발이 다했음을 의미한다. ‘미혼부’ ‘싱글 파더’ 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티브이에 나와야 한다. 또한 이들의 결손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 간의 감정과 소통을 중시하는 프로그램들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가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다양해지는 것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2019.01.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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