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 보인다” 81번…김경수 재판부 범죄사실 판단 대부분 심증

[이슈]by 한겨레

1심 판결문으로 본 항소심 쟁점 3가지

“~로 보인다” 81번…김경수 재판부

허익범 특별검사는 역대 13번의 특검 가운데 처음으로 수사 기간 연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드루킹 의혹이 이미 불거진 이후에 치러진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당선돼 이후 수사 동력이 떨어진 탓이 컸고, 이런 이유로 1심 재판 과정 역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역대 특검 가운데 처음으로 피의자 모두에 대해 1심 100% 유죄를 받아냈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분위기와 지사직 업무 수행 등이 겹쳐 김 지사 쪽이 1심에 비교적 느슨하게 대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지사 역시 전열을 정비해 항소심에 ‘올인’할 것을 예고했다.


법조계에서는 김 지사의 항소심이 마치 1심 재판처럼 밑바닥 사실관계부터 하나하나 다시 다투는 ‘역주행’ 재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선, 정권 재창출 등 1심 판결문에 거듭 등장하는 ‘정치적 해석’의 영역에 변론을 집중하면 특검이 아닌 야권과의 진흙탕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향후 김 지사의 방어는 1심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던 ‘킹크랩 존재를 알았는지’ ‘드루킹과 어떤 내용을 주고받았는지’ ‘드루킹에게 공직 등 대가를 약속했는지’ 등에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31일 공개된 김 지사의 170쪽짜리 1심 판결문을 통해 항소심 쟁점을 미리 짚어봤다.

‘드루킹의 정보보고’ 유용했나?

지난 30일 1심 재판부는 “김경수 지사와 드루킹 김동원이 더불어민주당 정권 창출 및 유지를 위해 상호 협력한 사정”의 핵심 근거로 드루킹 김씨가 김 지사에게 보낸 온라인 정보보고를 지목했다. 정보보고는 2016년 10월부터 2018년 1월까지 49차례 작성됐는데, 김 지사는 “중요하지 않은 내용들이어서 확인도 잘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가 ‘온라인 정보보고’에 대해 다소 모순적인 판단을 드러내는 부분도 있다. 재판부는 “온라인 정보보고에 기재된 사항들은 대부분 온라인에 떠도는 정보들을 취합해 정리한 것으로 정치권 동향, 온라인 여론의 중요성,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에 대한 온라인 여론 동향, 네이버 등 뉴스 댓글에 관한 사항 등”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곧바로 “2017년 대선을 준비해 나가던 상황에서 온라인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피고인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온라인에 떠도는 내용’이 김 지사에게는 ‘매우 유용한 정보’라는 논리다.


김 지사 쪽은 항소심에서 드루킹 김씨가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회원들과 공유하던 온라인 여론 동향을 김 지사에게도 보낸 것일 뿐이며, 그 내용 역시 별 가치가 없어 보지 않거나 지웠다는 점을 거듭 주장할 전망이다. 또 당시 국회의원이자 고급 정보를 관리하는 대선 캠프의 핵심이었다는 점을 내세워 드루킹이 보내는 정보에 목을 맬 상황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인다”, “보이고” 81차례 심증

“김동원(드루킹)의 진술 등에 비춰 피고인은 김동원이 보내는 기사 목록 자체를 매일 확인했던 것으로 보이고 나아가 그 내용을 상세하게 확인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하루에 어느 정도의 댓글 작업이 이루어지는지는 확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여러 객관적 증거’를 토대로 진술의 신빙성을 살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판결문에는 김 지사의 유죄를 떠받치는 표현들마다 ‘~로 보인다’(68차례) ‘~로 보이고’(13차례) 등 재판부의 ‘심증’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특히 “범행의 직접적 이익을 얻는 사람은 김 지사를 비롯한 민주당 정치인들로 보인다”(심증)→“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은 경공모가 이해당사자인 피고인 허락 없이 자발적으로 불법을 저질렀다고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심증)→“김 지사 승인을 받고 킹크랩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심증)는 논리 구성을 여러곳에서 반복하고 있다.


재판부는 1년3개월여 동안 49차례 온라인 정보보고가 있었다고 했지만, 객관적으로 송수신이 확인된 것은 7~8차례 정도다. 선고 당일 여러 언론이 재판부 선고문에서 주목한 “킹크랩 완성도 98%”라는 온라인 정보보고(2016년 12월28일)가 실제로 김 지사에게 전달됐는지는 특검 수사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굳이 경공모 내부에서 킹크랩 완성도를 과장할 이유가 없다. 이는 김 지사에게 경공모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김 지사에게 전송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피고인이 해당 비밀대화방을 삭제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확인되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형사 재판에서 범죄 사실의 증명은 ‘합리적 의심을 넘어설’ 정도로 입증돼야 한다. 하지만 이번 재판은 특검 수사 단계부터 직접증거가 부족했다. 그래서 당사자들의 진술, 그 진술이 나온 맥락과 정황이 유무죄를 따지는 데 중요한 요건이 됐다. 증거의 증명력을 판사의 자유 판단에 맡기는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양쪽 진술에 대해 재판부가 이를 해석할 여지가 컸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변호사는 “이 사건의 경우 시시티브이(CCTV) 등 명백한 증거가 없는 상황이어서 ‘보인다’ 등의 문구가 많이 등장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른 변호사는 “형사사건에서 정황증거 또는 간접증거만 있는 상태에서도 사실 확정을 할 수 있다. 다만 ‘미루어 판단’하는 추단은 엄격함을 요구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정치적 알력 관계에서 나오는 진술의 경우 신빙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 지사 쪽 항소심 전략도 이런 부분에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

24년 만에 나온 실형 2년

김 지사가 업무방해(컴퓨터 등 장애) 혐의로 실형 2년을 받고 법정구속된 것은 그동안의 판례에 비춰볼 때 이례적인 일이다. 1995년 12월 이 처벌조항이 만들어진 뒤 23년여 만에 가장 무거운 처벌이다. 재판부는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해 포털사이트 시스템이 사용 목적에 부합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사용 목적과 다른 기능을 하게 한 것으로, 정보 처리에 장애를 발생시켰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네이버 등이 댓글 순위 조작을 막는 모니터링을 해서 ‘킹크랩’을 통한 조작이 의도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업무방해의 추상적인 위험이 이미 발생했다고 보이므로 범죄 성립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신은규 변호사는 “이 혐의만으로 실형이 선고된 것은 이례적이다. 사건의 맥락, 여론 조작으로 이어진 결과 등이 반영된 판결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에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댓글·추천 올리기는 내가 아는 한 모두 벌금형 정도였다. 네이버에 대한 업무 손해가 징역 2년어치가 되는지, 실명정책은 네이버의 비즈니스 모델일 뿐 국가가 개입해서 형사처벌로 보호할 일이냐”고 적었다.

김남일 최우리 고한솔 임재우 장예지 기자 namfic@hani.co.kr

2019.02.0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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