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 작품으로 전시했던 신라 불상…중국, 10년 만에 “신라산” 인정

[컬처]by 한겨레

최응천 교수, 10년 전 중국에서 아미타상 발견

‘통일신라’ 확신했지만 전시장엔 ‘남송’ 표기


최근 중국 전시에서 ‘통일신라’로 명기

국내 학계 연구 결과 수용한 첫 공인

남송 작품으로 전시했던 신라 불상…중

닝보 천봉탑에서 출토된 8세기 통일신라 시대 아미타불상.

10년 전인 2009년 3월, 불교공예사를 연구하는 최응천(60) 동국대 교수는 중국 저장성 유적을 답사하던 중 국내 학계에는 알려지지 않은 빼어난 모양새의 신라 불상을 발견했다. 상하이 남쪽 닝보시 박물관 전시장에 21㎝의 아미타불상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당당하고 풍만한 몸체, 엄정하면서도 유려한 기운이 감도는 표정이, 영락없는 8세기께 통일신라 시대 작품이었다. 두 어깨에 걸친 옷이 목 부분에선 유(U)자 모양으로 주름졌다가 배 부위에서 와이(Y)자 모양으로 갈라져 내려오는 모습, 불상 뒤 광배(빛무리판)에 풀꽃(당초문)과 불꽃 무늬를 수놓은 것도 신라산임을 명확하게 뒷받침했다. 더욱이 광배 사이엔 진주알까지 박혀 있었다. 국내에선 전례 없는 수준 높은 통일신라 불상이 중국 본토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최 교수가 알아보니 불상의 유래는 이러했다. 1982년 6월 닝보시에 있는 불탑(천봉탑·天封塔)의 지하시설인 지궁(地宮)을 발굴 조사하다 출토된 작품이었다. 은으로 만든 불전 속에 봉안된 채 발굴된 불상은 푸른 청동녹이 낀 상태로 출토됐는데, 광배와 대좌까지 온전하게 갖추고 있었다. 불상은 발굴 직후 닝보의 천일각 도서관에 보관됐다가 2009년 1월 닝보시 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옮겨졌다. 하지만 박물관은 이 불상을 남송시대 작품으로 표기해 전시중이었다. 불상을 봉안한 은제 불전에 남송 소흥 14년(1144)에 제작했다는 명문이 발견됐고, 남송 계통의 공양품들과 불상들이 함께 나왔다는 이유에서다.


최 교수는 귀국 뒤 통일신라 불상의 발견 사실과 그 양식적 특징을 알리는 논고를 발표했고 이는 일부 언론에도 보도됐다. 그러나 그 뒤 불상이 닝보시 박물관의 진열장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존심 상한 중국 당국이 불상을 감춰버렸을 것”이란 말이 돌았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잊혀갈 즈음인 지난해 11월 항저우의 저장성 박물관에서 열린 ‘오대십육국시대의 불교금동조상전’에 이 불상이 다시 출현했다.

남송 작품으로 전시했던 신라 불상…중

저장성박물관이 최근 펴낸 기획전 도록에 출품작으로 나온 닝보의 통일신라 불상. 기존 남송시대 불상이란 견해 대신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임을 명기해놓았다.

최 교수는 박물관 쪽이 이 불상을 통일신라의 작품으로 전시 명판과 도록에 명기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12일 <한겨레>에 밝히고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이는 그동안 불상을 남송시대 것이라고 표기해온 관행을 깨고 국내 학계의 분석 결과를 수용해 처음으로 공인한 것이다. 현재 중국 쪽은 부여에서 나온 백제금동대향로나 경주 석가탑에서 나온 신라시대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모두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중국이 자국 땅에서 출토된 불상 유물의 국적을 통일신라로 수정한 것은 획기적인 조처로, 앞으로 불상의 중국 반출 경로와 세부 양식에 대한 논의를 국외에 개방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평가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최응천 교수 제공

2019.03.1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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