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데이비드 호크니 첫 한국 회고전…회화는 납작하지 않다!

by한겨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생존 미술가

1972년 작품 작년 1019억원 낙찰

 

‘그리고 있는 바로 지금 현재’ 일관된 자각

7개 주제로 60여년간의 화풍 변화 보여줘

1980~90년대 ‘포토콜라주’ 빠져 아쉬움도

데이비드 호크니 첫 한국 회고전…회화

호크니가 미국 엘에이에서 그린 1967년작 '더큰 첨벙'.

우리가 지켜보는 세상은 갈수록 납작하게 바뀌어간다. 디지털 카메라가 찍고 포토샵으로 주무른 만물상이 세상을 도배하는 것이 21세기 시각풍경의 속성이다. 이미지들로 넘쳐나지만, 공간과 삶의 생동감, 사람의 활력은 사라졌다. 인간의 눈길이 살아있는 이미지는 어떻게 되살려야 하는가?


이 시대 최고의 미술거장으로 꼽히는 데이비드 호크니(82)는 자신을 다룬 다큐 영화에서 이 한마디로 말한다. “오랫동안 바라보고 그리는 것에 여전히 관심을 기울이라. 보고 그리는 것은 움직인다는 것이다. 움직이는 인간의 시선과 시점들로 그리고 본다는 것이다.”


지난 22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 2, 3층 전시장에서 시작한 그의 첫 한국 회고전 출품작들은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작가가 ‘그리고 있는 바로 지금 현재’를 자각하려는 관념을 일관되게 담았다. 전시장 입구에 등장하는 차(茶)를 담은 상자를 그린 1961년 작품은 차라는 정적인 음료에 걸맞지 않게 몸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4각형 아닌 7각형 차 상자에는 남자의 알몸이 희미하게 그려져 육체적 힘이 바깥으로 발산될 듯한 예감을 자아낸다. 캘리포니아 별장의 고요를 깨뜨리는 다이빙 순간의 자작거리는 물거품들(<더 큰 첨벙>), 관객에게 정면으로 다가올 것 같은 디자이너 부부의 얼굴과 창밖으로 뛰쳐나갈 듯한 품안의 고양이를 담은 초상(<클라크 부부와 퍼시>)들은 배경과 인물 사이에 긴장감이 충만하다.

데이비드 호크니 첫 한국 회고전…회화

전시장의 마지막 작품인 ‘2017년 2월 스튜디오’의 풍경 앞에서 한 어린이 관객이 그림 속 호크니를 바라보고 있다. 호크니와 어린이가 묵시의 대화를 하는 듯한 구도가 흥미롭게 비친다.

호크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생존 미술가다. 이번 전시엔 나오지 않았지만 1972년작 <예술가의 초상>이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9030만달러(약 1019억원)에 낙찰됐다. 그가 평단과 시장에서 두루 높이 평가받는 건 고전과 혁신의 미덕을 두루 겸비한 데서 비롯된다. 그는 영국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팝아트 화가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이래 미국과 영국을 왕래하면서 자신만의 회화 지형을 만들어냈다. 인간적 내음이 물씬한 풍경화나 인물화를 그리면서도, 특정한 유형에 빠지지 않고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동원해 회화를 새롭게 변모시켜왔다.


전시는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기’, ‘로스앤젤레스’, ‘자연주의를 향하여’, ‘푸른 기타’ ‘호크니가 본 세상’ 등 7개의 영역으로 갈라 화풍의 연대기적 변화를 드러낸다. 좀더 깊게 바라보면, 호크니 회화의 결정적 핵심을 깨닫게된다. 초상, 풍경, 추상을 넘나드는 실험을 통해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결실로 정착된 600년 전통의 단시점 원근법과 단호하게 단절했다는 점이다. 5부 ‘움직이는 초점’ 전시장에 걸린 멕시코 아카틀란 호텔의 내부를 그린 석 점의 연작은 이런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동차 고장으로 우연히 묵은 호텔에서 강렬한 영감을 받은 그는 내부 정원 한가운데 우물이 부풀어 육박하는 듯한 구도로 다시점의 강렬한 이미지를 재현했다.

데이비드 호크니 첫 한국 회고전…회화

호크니의 1971년 작 '퍼시와 클라크 부부'. 그의 초상화중 대표작으로 손꼽는 걸작이다.

특히 ‘호크니가 본 세상’은 풍경 속으로 풍덩 빠진, 21세기판 와유(臥遊)의 느낌을 주는 거작의 향연이다. 고향 요크셔의 숲을 그린 가로 12m 이상의 대작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2007)과 미 그랜드 캐년의 풍경(1998), 3000장의 사진을 이어붙여 자신의 스튜디오의 파노라마 풍경을 만든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 등은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무엇이든 내가 주시하고 보는 것은 그릴 수 있다’는 신념, 각자 자신의 시선으로 풍경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휴머니즘적 갈망이 담긴 수작들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엔 1980~90년대 실험정신의 진수를 보여주는 포토콜라주가 없다. 1980년대초 중국 여행 등을 통해 접한 중국 산수풍속화의 체험, 1990년대말 거울·렌즈를 활용한 르네상스·바로크 거장 작법 연구(이 연구의 결과물이 바로 2003년 한국에서 출간된 <명화의 비밀>이다) 등은 호크니 화풍을 계속 뒤바꿔놓은 중요한 계기들로 평가되지만, 이에 대한 설명은 없거나 부실하다. 3층 통로공간의 호크니 라운지와 크리스탈룸에서 틀어주는 다큐영화를 보면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는.


8월4일까지 열리는 전시의 입장료는 어른 1만5천원, 청소년 1만3천원. 호크니 명화를 실견하려는 관객들이 초반부터 몰려들면서 지난 주말엔 입장을 기다리는 이들의 긴 줄이 2, 3층 통로를 나란히 메우기도 했다. (02)2124-88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서울시립미술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