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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ESC

하야시 부부
“우리는 늙었지만 낡지는 않았다”

by한겨레

커버스토리/우아한 노년


‘근사하게 나이 들기’ 책 낸 햐야시 부부

70살이지만, 여전히 ‘멋쟁이’로 유명

“매일 옷을 잘 입는 게 ‘즐겁게 나이 드는 법’”

나이 들수록 자신의 치수 정확히 아는 게 중요

하야시 부부 “우리는 늙었지만 낡지는

하야시 유키오(남편)·다카코 부부.

“젊었을 때 입던 옷이 안 어울려요.” 나이 들면서 자주 하는 말이다. 옷 치수가 맞지 않을뿐더러 색이나 디자인도 어쩐지 너무 과감해 보인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시도를 하던 젊은 날과는 다르게 낙낙한 치수의 평범한 옷을 걸치게 된다. ‘계속 무미건조한 옷을 입어야 할까?’


이런 고민에 빠진 어르신을 위한 패션 노하우를 담은 책 〈근사하게 나이 들기>를 펴낸 일흔살 동갑내기 하야시 유키오·다카코 부부는 “나이 들었다고 멋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점점 우중충해진다”고 조언한다. 4년 전 이들이 낸 <근사하게 나이 들기>는 당시 일본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지난 2월에는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하야시 부부 “우리는 늙었지만 낡지는

40년간 옷을 만들고 판매해 온 하야시 부부는 일본 ‘멋의 도시’ 고베에서 20대뿐만 아니라 70∼80대 노년층도 입을 수 있는 옷을 판매하는 편집숍 ‘퍼머넌트 에이지’를 운영 중이다. 유명 디자이너의 옷보다는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티셔츠, 바지, 재킷, 가방과 모자 등이 가득하다. 하야시 부부는 “단순한 디자인인데, 얼마든지 멋스럽게 입을 수 있다”며 ‘일상복의 멋’을 부지런히 전파해 왔다. 지난 20∼21일 서면과 전화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들은 “옷은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동반자이자 근사하게 나이 들기 위한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근사하게 옷 입는 방법은 뭘까.


책에서 일상복의 중요함을 강조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다카코 : 마음에 드는 재킷을 입은 날, 이상하게 자신감이 생겼다. 특정 색의 옷을 입었을 때 기분이 화사해지는 경험도 했다. 내게 잘 맞는 옷을 입는 건 생각보다 의미 있는 일이다. 매일 입는 옷이 생활에 변화를 주고 기운을 북돋워 준다. 남편과 항상 즐겁게 나이 들자고 대화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옷에 신경 써야 한다.


유키오 : ‘어차피 옷인데’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옷은 자나 깨나 함께하는 나의 일부다. 일상복은 부담스럽지 않게 편히 걸치는 옷이다. 좋은 옷은 삶에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좋은 옷이란 어떤 옷일까?


유키오 : 언제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다. 반소매, 긴소매 티셔츠와 다양한 색의 바지를 매치해 즐겨 입는다. 다만 목이나 소매 등에 포인트가 있으면 밋밋해 보이지 않고 멋스럽다.


다카코 : 나이가 들수록 ‘몸에 잘 맞는 옷’이 좋은 옷이라고 생각한다. 꽉 조이는 옷을 입으면 녹초가 돼 그날은 안색이 안 좋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체형에 맞은 사이즈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하야시 부부 “우리는 늙었지만 낡지는

고베에 있는 한 서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하야시 부부.

몸에 잘 맞는 옷을 찾는 방법이 있다면?


다카코 : 바지 치수를 보통 허리둘레에 맞추는데, 엉덩이 둘레에 맞춰야 맵시가 살고 착용 후에도 몸이 편하다.


유키오 : 수선할 때 전체적인 모양새를 봐야 한다. 바지가 길 경우 짧게 자르기만 하는데, 이때 바지통도 함께 줄여야 한다. 무조건 헐렁하게 입는다고 편한 게 아니다. 옷이 몸에 겉돌면 심신이 피로해진다.


체형에 맞는 옷을 찾았다면 디자인, 소재, 색 등을 고려할 차례다. 어떤 요소를 중요하게 보는 편인가?


다카코 : 색이다. ‘셔츠와 카디건’ 등을 살 때 잘 어울릴 것 같은 색의 옷을 먼저 고른다. 흰색·회색·남색·갈색·검은색의 옷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으면 매치해 입기 쉽다.


유키오 : 강렬한 원색 옷은 패션 스타일에 ‘포인트’를 줄 때 활용한다. 빨간색 코트를 입지 않더라도 빨간색 양말은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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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디자인과 원색을 잘 매치해 멋을 부린 하야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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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부부의 안경.

지금 무슨 색 옷을 입고 있는지 궁금하다.


다카코 : 그러고 보니 운동화가 빨간색이다.(웃음) 남색 재킷에 회색 바지, 평범한 조합이지만, 신발만큼은 강렬한 원색이다.


유키오 : 파란색 테 안경을 썼다. 안경도 옷 색에 맞게 걸친다. 다양한 색의 안경들을 갖고 있다. 50개 정도.(웃음)


안경은 어떤 색 테를 사는 게 좋을까.


유키오 : 검은색 테, 갈색 테와 금·은색의 금속 소재 테로 만들어진 안경 3∼4종류를 추천한다. 파스텔 톤의 옷을 입을 때는 갈색 테, 무채색이나 흰색 옷에는 검은색 테가 어울린다. 금속 소재의 테는 어떤 색 옷에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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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청바지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하야시 부부.

한국 어르신 중에는 화려한 원색 옷을 즐겨 입는 이들이 많다. 멋스럽게 소화할 방법은 없을까?


다카코 : 무채색의 기본 옷을 갖춘 후 원색 옷에 도전하길 추천한다. 이때 무늬 없는 옷을 고르는 게 중요하다. 동물, 꽃 등 튀는 무늬의 옷을 즉흥적으로 사지 않길 권한다. 다른 옷과 조합해 입기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캐시미어 등 고급 소재의 옷을 입어야 하지 않을까?


다카코 :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어울리는 소재가 적당하다. 활동량이 많은 사람에게는 가볍고 튼튼하면서 세탁 시 금방 마르고 주름 잘 안 지는 면 소재의 옷이 편할 거다. 나이가 들면 명품 가방을 들어야 한다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50∼70대 손님들은 고급 가방을 바라면서도 결국 가벼운 가방을 주문한다. 가죽보다는 천 소재 가방을 추천했더니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이제는 ’만족한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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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부부의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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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부부의 모자.

하야시 부부 “우리는 늙었지만 낡지는

하야시 부부의 가방.

‘어르신 패션’엔 그저 편하게 걸치는 게 중요하다는 건가.


유키오 : 분명히 편한 옷이 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부분도 있다. 상의를 넉넉한 치수로 입었는데 하의도 그런 식으로 입는다면 칠칠치 못하게 보인다. 반대로 상·하 모두 좁고 짧은 길이의 옷을 입으면 밖에 나가지 않는 걸 추천한다.(웃음) 상의가 큰 사이즈면 하의는 타이트하게, 상의가 타이트하면 하의는 큰 사이즈를 입는 게 좋다. 상, 하의 비율은 7 대 3 정도가 적당하다.


부부의 짝짝꿍이 예사롭지 않다. 오랫동안 함께 산다고 이들 같진 않다. 이들은 어떻게 서로를 알아봤을까? “25살에 결혼했는데,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유키오가 말했다. 이들은 초등학교 때 처음 만났다. 아내의 두 오빠와 친했던 남편은 매일 그의 집에 갔다. 예술대학에 진학해 패션을 공부하던 남편. 고등학교 졸업 후 한 무역업체에서 일했던 아내. 생활공간은 떨어져 있어도 이들은 ‘친구의 여동생’, ‘오빠의 친구’로 거의 매일 만났다.


부부가 40년 넘게 집뿐 아니라 일터에서까지 얼굴을 마주하면 갈등도 여느 부부의 갑절이 되지 않을까. “성격이 반대다. 빈틈없는 내 성격과 달리 남편은 뭐든 대충한다. 그래서 많이 싸웠다. 하지만 패션, 잡화 등 관심사가 같다. 우리 부부를 오랫동안 이어 준 연결고리다.”(다카코) 아내의 이런 말에 남편은 “늘 고마울 뿐이다. 아내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다”고 한다. 유키오는 대학 졸업 후 한 방적 회사에서 3년간 일하다가 뛰쳐나와 옷을 제작, 판매하는 일을 했다. “파는 게 어려웠다”는 그는 전업주부였던 아내를 꾀었다. 아내는 한 옷 가게에 취직해 판매 노하우를 익힌 다음 남편의 업체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이들에겐 자녀는 없지만, 외롭진 않았다.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일상은 즐겁다.


일상을 즐겁게 사는 방법이 궁금하다.


유키오 : 거창한 일을 할 필요 없다. 즐거움은 소소한 것에 있다. 아무리 바빠도 아침에는 자전거를 타고 저녁에는 당구를 친다. 그리고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뒷산에 오른다.


부부가 함께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그런데 요즘 ‘비혼’도 많다.


다카코 : 비혼과 기혼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비혼이라고 더 외로울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아니다. 결혼해도 각자의 삶이 있다. 일본에는 ‘좋아서 하는 일이야말로 쉽게 숙달된다’라는 속담이 있다. 즐거운 일일수록 홀로 익히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 나는 홀로 그림을 그리고, 영어 회화 교실을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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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부부.

<근사하게 나이 들기>에 실린 이들 부부 사진을 보면 백발이 성성하다. 유키오는 “검버섯, 주름, 백발 등은 세월을 나타내는 기록과 같다.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도 멋이 될 수 있다. 세월을 받아들이는 어른스러운 태도가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라고 한다. 결국 “멋이란 그 사람의 됨됨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다카코는 “매일 즐겁게 살면 ‘좋은 기분’이라는 옷을 입는 것과 같다”며 일상에서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길 권했다.


끝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유키오 : 나이 생각하지 말고 신나게 놀아 달라. 인생 한 번밖에 없다(웃음).


다카코 : 나는 ‘늙더라도 낡지 않은 기분’을 갖고 산다. 부디 즐겁게 사시라. 멀리서 응원하겠다.

에스엔에스 스타 본·폰 부부···같은 듯 다른 옷 입기

하야시 부부 “우리는 늙었지만 낡지는

본 폰 부부. 사진 〈미래의창〉 제공

백발의 60대 노부부의 커플룩이 인스타그램 등에서 화제다. 올해 결혼한 지 38년을 맞은 일본의 ‘본’(bon·63)과 ‘폰’(pon·61)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본은 남편, 폰은 아내의 애칭이다. 이들은 3년 전 색과 무늬, 소재 등을 맞춘 커플룩을 입고 찍은 사진을 자신들의 인스타그램(@bonpon511)에 올리면서 인기를 끌었다. 팔로워 수만 약 79만명(3월25일 기준)에 달한다. 20대처럼 다양한 패션에 도전하는 모습에 ‘가장 귀여운 커플’, ‘이 부부처럼 살고 싶다’며 누리꾼들이 열광했다.


부부는 2016년 본이 정년퇴직한 후에야 비로소 부부만의 시간을 갖게 됐다고 한다. 평소 입던 옷 스타일도 확 바꿨다. 커플룩이라고 하면 흔히 ‘똑같이 맞춰 입는 같은 옷’을 말한다. 하지만 이들의 커플룩은 ‘같은 옷을 입은 듯하면서도 다른, 비슷해 보이기만 하는 옷’이다. 폰이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으면 본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는 식이다. 폰이 빨간색 원피스를 입으면 본은 빨간색 양말을 신는다. 고급 옷을 사기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패스트패션’ 브랜드나 인터넷에서 중고 옷을 사기 때문에 다양한 패션 실험이 수월했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얘기를 담은 책, 〈본과 폰, 두 사람의 생활〉, <아직 즐거운 날이 잔뜩 남았습니다>도 출간했다. ‘서로 비슷한 옷을 입고 즐겁게 손 잡고 걷다 보면 다시 젊어진 느낌이다.’ 책엔 그들의 철학이 녹아있다.

나이

사람이 세상에 나서 살아온 햇수. ‘100세 시대’를 맞아 나이와 관계없이 근사하게 제2의 인생을 사는 이들이 늘었다.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알려졌던 패션 분야에 도전한 60~70대 시니어 모델들이 대표적이다. “가슴 뛰는 일을 좇는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게 이들의 조언이다.

김포그니 기자pognee@hani.co.kr, 사진 〈마음산책〉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