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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논밭도 일구고 자식농사도 짓지만 마음농사가 최고네요”

by한겨레

전북 장수 ‘글쓰는 농부’ 전희식씨

 

1994년 귀농 이래 10번째 책 출간

‘마음농사 짓기-나를 알아채는 시간’

“모든 관계에서 숙성의 기다림 우선”


‘똥꽃’ 치매어머니 떠난뒤 명상여행

술·맛 등 일상의 습관 중독 깨달아

“날마다 살아있음 느끼니 99% 행복”

“논밭도 일구고 자식농사도 짓지만 마

“논농사, 밭농사, 자식농사 등이 있지만, 마음농사가 최고입니다. 마음·느낌·생각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고 마음먹음에 따라서 모든 게 결정되니까요. 선방의 책은 그곳을 벗어나면 말짱 도루묵이 됩니다. 이 책은 일상과 차단된 선방에서의 접근방법과 달리, 장삼이사의 일상을 마음공부 시선으로 다뤘습니다.”


귀농 25년 만에 10번째 책을 낸 ‘글쓰는 농부’ 전희식(61)씨. <똥꽃>과 <아름다운 후퇴> 등으로 알려진 그가 신작 <마음농사 짓기-농부 전희식의 나를 알아채는 시간>(모시는사람들 펴냄)을 쓴 이유를 이렇게 답했다. 어떤 조건에서도 긴장없이 균형을 유지하는 평화로운 일상과 시골에 살면서 겪은 일화들을 정리했단다.


지난 6일, 전북의 동부산악권인 장수군 장계면 그가 사는 곳을 찾았다.


대도시에 살며 노동운동과 국회의원 출마까지 했던 그는 1994년 전북 완주로 귀농했다. 2006년부터는 ‘똥꽃’의 주인공이 되는, 치매 노모를 모시고자 인근 장수에 또 다른 터를 잡았다. 지금도 4개 매체에 글을 쓰고 있으며, 농민단체, 생명평화단체, 채식과 명상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농사와 사람·동물 여타의 관계에서 기다림은 자연스럽게 완숙·숙성되는 기간입니다. 기다리기가 싫어서 생육과정을 단축시키고, 사랑하는 과정에서도 과속들을 합니다. 마음농사가 필요한 데,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룰 때 기다림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없습니다. 기다림은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기 전에 완전해지는 과정입니다.”

“논밭도 일구고 자식농사도 짓지만 마

전희식 작가의 10번째 책 <마음농사 짓기> 표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홀로 지내는 저자를 반겨주는 반려견 2마리 모습도 담았다.

좋은 말이고 대략 뜻을 알 것 같지만, 머리에 제대로 꽂히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그랬더니 명징한 사례가 되돌아왔다. 자가용이 없는 그가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가 겪은 경험이다. ‘운전중인 버스기사가 욕설까지 섞어가며 시끄럽게 통화를 했다. 버스 안에는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는 진동으로 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버스가 중간 터미널에 잠깐 들렀을 때 그는 기사에게 자신이 쓰던 괜찮은 이어폰을 건네줬다. 기사는 당황하면서 자신도 이어폰이 있다며 사양했다. 그 뒤론 편안히 목적지까지 도착했고 이어폰도 아낄 수 있었다. 그때 흔히들 하듯 “조용히 하라”며 큰 소리로 즉흥적으로 대응했다면 서로 불쾌해졌을 수 있다.’


그는 “내가 글을 쓰기 위한 소재로 삼기 위해 버스기사에게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아니다. 마음농사를 통해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대응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1993년 무소유 공동체 야마기시의 명상수련으로 첫 인연을 맺은 그의 마음농사이니 귀농보다 먼저인 셈이다.


그의 생계유지가 궁금했다. 컴퓨터를 전공한 그는 개인누리집에 종종 손수 가꾼 농작물 사진을 올린다. 과거에는 옥수수·돼지감자·들깨 등을 심어 생협과 거래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인이 많아져 개별주문을 받아 공급하기에도 벅차다. 비닐을 쓰지 않고 자연농법으로 가꾼 채소 등을 생산하기에 인기가 있다. 농작물을 보낼 때 자신이 봤던 잡지나 책을 함께 동봉해주기도 한단다.


1958년생인 그에게 퇴직을 했거나 앞두고 있는 동년배들을 위한 조언을 주문했다. 그는 “시골에서 살려면 전망 좋은 집터와 구조 등을 신경 쓰기에 앞서 자연과의 삶에 미리 친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귀농을 돕는 프로그램도 많으니 직접 체험하면서 노력하면 안목도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특히 가까운 거리에 마음으로 통하는 지인이나 친구를 확보해 두라고 강조했다. 채광 좋은 그림같은 집은 1~2년이 지나면 심드렁해지는데, 지역민과 문제가 생겼을 때 함께 소통할 사람이 있어야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4년 전 술을 끊었다. 밭에서 일한 뒤 시원한 막걸리나 캔맥주가 땡기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금주한 계기를 들려줬다. ‘2015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남미 명상여행을 한달간 했다. 현지 음식을 먹지 않고 손수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그런데 귀국 직후 문상을 갔을 때 술이 보기조차 싫었다. 여행하는 동안 술 자체를 아예 잊은 채 지낸 탓이다. 그동안 술을 습관적으로 개념없이 마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혀가 맛에 중독돼 있었던 것이다.’ 그는 보이차를 담은 병을 휴대하고 다닌다. 커피에 비해 보이차는 자극적이지 않지만 은근하다고 칭찬했다.


그에게 ‘지금 행복하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99% 행복합니다. 아침 햇살이 쨍하고 비칠 때 일어나는 게 좋습니다. 매일매일이 사실은 다릅니다. 일출 시간이 다른 게 아니라, 매일 새벽 풍경이 달라서 늘 새롭고 참 좋습니다. 파·상치 등이 아침마다 자라 있고, 외출했다가 들어오면 개 2마리가 배를 보이면서 드러눕습니다. 그럴 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내 손에서 호미가 놓여질 때까지 계속 자연과 맨몸으로 부딪히며 살겠습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