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남편 땅은 강남 농부에, 김세연 땅은 가짜 농부에게 팔렸다

[이슈]by 한겨레

[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 ④늘어나는 ‘무늬만 농지’

‘경자유전’ 허무는 상속농지

‘땅 투기꾼’ 먹잇감으로 전락

한겨레

[탐사기획] 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

64만6706㎡. 국회의원 99명(배우자 소유 포함)이 보유한 농지 면적이다. 그들의 농지는 자신의 개발 공약과 가까웠고, 예산을 확보해 도로를 내거나 각종 규제 해제에 앞장서면서 땅값이 뛰었다.


2526.1㎞. 5개월간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찾아다닌 거리다. 전체 국회의원 298명 가운데 농지를 보유한 의원은 33%다.


1549.4㎢.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서울과 인천을 합친 규모의 농지가 사라졌다. 값싼 땅이 새도시, 산업단지 등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외지인들은 개발 예정지 인근을 사들였고, 농부는 그 땅의 소작농이 되었다. 의원은 농지를 왜 매입했을까.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둘러싼 이해충돌 문제와 사라진 농부들의 사연을 6차례에 걸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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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이 땅 사면 농사는 어느 정도 짓는 척해야 하는 거 알죠? 저 같은 경우는 오빠가 대신 농사짓고 있어요. 이거 건물 지을 수 있도록 이미 허가받은 농지인데, 주위에서 하도 땅 잘 샀다고 팔라고 하긴 해요. 지금 팔면 세금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 땅 팔아서 다른 데 투자할 데가 확실히 정해지지 않아서 팔겠다고는 확실히 말 못 하겠어요. 얼마 정도 가격을 생각하고 계신데요?”

제2판교, 제2센텀…들썩이는 상속 농지들

2017년 3월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으로부터 경남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논 8135㎡를 8억3000만원에 사들인 허아무개씨는 ‘농지 투자자’였다. 양산시에 각종 산업단지가 대거 들어서면서 농지 값이 급등했다. 일부 농지의 경우 공장용지로 전용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지난 1월19일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허씨는 투자자로 분한 기자에게 계속 “세금 때문에”라며 매매를 주저했다. 양도세를 대신 내줄 수 있느냐는 취지로 들렸다. 그는 며칠 뒤 부동산업자를 통해 19억원이면 팔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매입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서 두 배 이상 높여 부른 것이다. 농지법에 따르면 농지를 매입한 자는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하지만, 허씨는 애초부터 투자 목적으로 매입가 8억3000만원 가운데 5억원을 대출받아 이 땅을 샀다.


이에 앞서 김 의원은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의 또 다른 상속 농지 8226㎡를 2009년 4월28일 안아무개씨 부부에게 28억9320만원에 팔았다. 이 땅 또한 농민이 아닌 투자자들에게 매각됐다. 안씨 부부는 논을 사들인 뒤 곧바로 소작농을 뒀다가 2016년 9월 지분을 쪼개서 되팔았다. 실제 농사는 소작농인 서아무개씨가 맡았다. “농지에 은행나무가 엄청 많아서 나무 사이에서 농사를 지었어. 주인한테 1년에 100만원을 주고 빌린 땅에 콩, 배추를 심어도 자갈밭인데다 굼벵이가 많아서 소출이 안 좋았거든. 배추를 시장에 팔아봐야 돈도 안 될 것 같아서 도매상한테 ‘밭떼기’로 갖고 가라 해갖고, 헐게(싸게) 줘버렸어. 내 인건비도 안 나오는 값으로. 직불금은 내가 받아본 적도 없고 땅 주인이 받아갔는지는 나도 모르지. 내가 대신 농사지어주면 땅 주인들 양도세가 감면된다고는 하던데 자세히는 잘 몰라.” 7년간 이 땅에서 농사를 대신 지었던 소작농 서씨의 기억이다.


김세연 의원 농지 투자자가 사들여

김 의원 양산 논 8억에 매입한 허씨

2년만에 “19억이면 팔 의향 있다”

인근 땅 8226㎡ 산 가짜농부 안씨

몇년 뒤 지분 조개 투자자에 되팔아


나경원 대표 남편 땅 ‘강남 농부’ 손에

작년 매매 성남 땅엔 ‘관상수’ 신고

‘제2판교’ 호재 등에 땅값은 ‘들썩’


상속농지 구멍 숭숭 뚫린 농지법

자경 의무 없고 사인간 임대차 가능

대법은 휴경·방치 “위법 아니다” 판결

1만㎡ 이상 ‘농지은행 위탁’ 유명무실

의원 4명, 법 조항 무시한 채 보유


이들 양산시 농지는 김 의원의 아버지가 1969년에 사들였다가 2005년 김 의원에게 상속한 땅이다. 김 의원은 2008년 초선 의원이 됐다. 농지법에 따라 선거 등으로 공직에 취임한 경우 재임 기간에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되지만, 김 의원의 경우 당선 이전부터 자경 의무는 없었다. 상속 농지는 자경하지 않아도 되고, 사인 간 임대차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농지법에서는 상속 농지에 대해 예외적 규정을 폭넓게 허용한다.


김 의원이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일대 농지와 임야 1만8047㎡ 또한 2016년 ‘제2센텀지구 도시첨단산업단지’로 지정돼 현재 토지거래허가구역에 속한다. 토지의 투기적 거래가 성행할 우려가 있는 지역 및 지가가 급격히 상승하거나 상승할 우려가 있는 지역에 땅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설정하는 구역으로, 일정 규모 이상 매입을 원하는 자는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부산의 강남이랄 수 있는 해운대구 우동의 ‘센텀지구’ 개발이 끝나고 추가 개발이 이뤄지는 곳이다. 지난 1월20일 찾아간 김 의원의 반송동 논과 밭은 정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동그랗게 깎인 나무들 밑으로 쓰레기들과 방금 잘라낸 듯한 나뭇가지들이 더러 보였다. 김 의원의 땅 근처 텃밭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은 “김 의원의 정원사가 부산과 양산을 다니며 농지 관리를 해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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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남편 김아무개씨가 1985년 공동 상속받은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농지 6321㎡는 2018년 3월 29억원에 ‘강남 농부’ 이아무개씨에게 팔렸다. 상속받은 농지 가운데 김씨의 지분은 절반이다. 해당 농지는 현재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긴 하지만, 금토동에 이른바 ‘제2판교테크노밸리’ 등이 조성되면서 이 일대 토지가 주목을 받았다. 나 원내대표 남편으로부터 농지를 사들인 ‘강남 농부’ 이씨의 주소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ㅇ아파트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이씨의 농지원부를 보면, 밭 12필지(1만1929㎡)를 보유하고 있다. 나 의원 남편으로부터 사들인 농지를 포함한 8개 필지(1만695㎡)가 ‘자경’ 상태로 등재됐고 나머지는 휴경이다. 재배 작물은 모두 관상수, 과수였다. 통상적으로 나무는 진짜 농부가 아닌 투자자들이 가장 흔하게 재배하는 품종이다.

1만㎡ 이상 상속 농지를 보유한 의원들

자경 의무는 없지만 농지법은 과도한 상속 농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농지법 제7조는 “상속으로 농지를 취득한 자로서 농업 경영을 하지 아니하는 자는 총 1만제곱미터까지만 소유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다만, 농어촌공사가 운영하는 농지은행에 위탁 운영하는 경우에 한하여 1만㎡ 이상 상속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고 있다. 국회의원 298명 가운데 1만㎡ 이상 상속 농지를 보유한 의원은 자유한국당 김광림·김세연, 더불어민주당 홍의락, 무소속 이정현 의원 등 4명으로 이들은 농지은행에 상속 농지를 위탁하지 않은 채 땅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겨레> 취재 과정에서 뒤늦게 농지법 위반을 확인한 김광림·홍의락 의원은 “관련 법을 잘 몰랐다”며 상속 농지를 농지은행에 위탁하는 방안을 알아보기로 했다. 이정현 의원은 “현재 지목이 농지이긴 하지만 토지가 척박해 임야로 형질 변경 중이다. 일부 형질 변경하고 남은 농지는 농지은행에 위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세연 의원실 관계자는 “지목은 농지이지만, 실제로는 임야로 조성돼 있다. 농사가 가능한 땅인지 농어촌공사에 질의한 뒤 위탁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자경 의무가 부과되지 않는 상속 농지가 헌법 121조에서 규정한 ‘경자유전’ 원칙을 허무는 통로가 된다고 입을 모은다. 임영환 변호사(법무법인 연두)는 “지금도 상속 농지가 자경 원칙을 허무는 방법인데 최근에는 상속 농지를 휴경하거나 방치해도 된다는 법률적 명분마저 대법원 판례로 나왔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 2월14일 신아무개씨가 낸 농지처분의무통지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 부산 강서구 농지 2158㎡를 상속받은 신씨는 허가 없이 농지를 공장용지로 사용했고 구청이 ‘농지법 10조 1항’ 위반이라며 농지처분의무를 통지하자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1, 2심은 “상속으로 적법하게 취득한 1만㎡ 이하의 농지라도 무단으로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농지처분의무를 받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1만㎡ 농지까진 농업 경영에 이용하지 않더라도 처분 의무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제껏 상속 농지는 자경 의무는 없지만 휴경 또한 할 수 없었다. 자신이든 소작농이든 누군가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 하지만 이 판결은 상속 농지를 휴경하든, 다른 용도로 사용하든 농지법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법조계와 농민단체에서 대법원 판결을 두고 경자유전 원칙을 무시하는 해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이 판결에 대해 “해당 판례가 악용돼 무분별한 토지 투기가 성행하고 종국에는 농지로서의 가치를 상실하는 위기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규탄했다. 자경 의무가 없는 김세연 의원, 나경원 원내대표의 남편 농지는 이들 땅 인근이 대거 개발되면서 8억3000만~29억원에 농지 투자자들에게 팔려 나갔다. 이번 판결 이후 얼마나 더 상속 농지에 대한 예외적 규정이 허용될지 알 수 없다.


부산 양산/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2019.04.1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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