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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세상살이에 지칠 때
가볼 만한 서울의 시골

by한겨레

백사실 계곡의 능금마을·청계동천마을·도봉동 무수골·개포동 구룡마을


광화문서 직선 2~3㎞ 거리 마을

구룡마을은 70년대 신작로 같은 길이

무수골은 아직 벼농사 지어

서울 속 시골 풍경, 마음 차분해져

세상살이에 지칠 때 가볼 만한 서울의

무수골. 세일교에서 본 시냇물.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에서 직선으로 2~3㎞ 거리에 시골 같은 마을이 있다. 농사짓는 마을인 백악산(북악산) 백사실 계곡의 능금마을과 봄이면 ‘꽃대궐’을 이루는 인왕산 기차바위 아래 청계동천마을이 그곳이다.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는 70년대 신작로 같은 길이 산으로 이어지고, 도봉구 도봉동 무수골은 벼농사를 짓는다. 마을 주변 산세도 좋고 계곡도 좋다. 서울에 있는 시골 풍경, 그 안에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백사실 계곡 상류 능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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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금마을 능금나무에 능금이 열렸다.

종로구 부암동 백사실 계곡에 주춧돌과 연못이 있다. 조선 시대 별서(농장이나 들이 있는 부근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가 있던 곳으로 추정한다. 조선 시대 사람 백사 이항복과 추사 김정희가 그곳의 주인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옛사람들의 이야기보다 보호막같이 우거진 숲과 맑은 계곡에 머무는 지금 이 시간이 좋다. 돗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부부 옆 유모차에서 아기가 잔다. 새소리가 숲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어지고, 연못가에 앉은 아줌마들의 이야기가 숲에서 맴돈다. 젊은 연인은 그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이 가는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에 ‘능금마을’이라고 적혔다.


마을로 가는 길에 생태경관보전지역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도롱뇽, 산개구리, 버들치, 가재가 살고 있다고 한다.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능금마을로 가는 길에 앉아 있다. 그들은 이 지역을 지키는 사람들이자 안내자다.

 

한국전쟁 이전부터 이 마을에서 능금 농사를 지어 서울 시내에 내다팔았다는 이야기도 그들에게 들었다. 사람들을 인솔하며 백사실 계곡을 안내하는 아저씨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아저씨 말로는 1975년까지 능금을 키워 팔았다. 지금도 마을에 옛 능금나무가 몇 그루 남아 있다며 마을 도랑 옆에서 멀찌감치 보이는 능금나무 한 그루를 가리킨다.


옛날에 개성에서 가져온 능금나무를 이곳에 심었는데 그중 한 그루이며, 농사 잘될 때는 나무 한 그루에서 천 개가 넘는 능금을 땄다고 한다. 능금 농사의 역사는 조선 시대까지 올라가고 부암동 여기저기에 능금 과수원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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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금마을로 가는 길가 밭에 상추가 자란다. 사진 가운데 줄지어 선 작은 나무가 1~2년 전에 심은 능금나무다.

능금마을에서 능금나무를 잘 볼 수가 없어서 아저씨는 새로 능금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 자두나무도 보인다. 작은 능금나무 아래서 상추가 자란다.


옛날 능금마을은 능금과 함께 자두와 살구도 키우는 과수원 마을이었다. 과수원의 울타리는 앵두나무였다. 지금도 앵두나무가 텃밭 주변에 많다. 마을 안 밭에서 한 아주머니가 오이농사를 짓는다.

청계동천마을은 ‘꽃대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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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기차바위 아래 청계동천마을. 좁은 골짜기에 꽃이 한 가득이다.(4월 말에 촬영한 사진)

능금마을이 있는 곳이 백악산(북악산)이라면 봄이면 꽃대궐을 이루는 청계동천마을은 인왕산 기차바위 아래에 있다.


자하문을 지나 부암동사무소 방향으로 가는 길, 고갯마루를 넘어 바로 왼쪽 골목으로 접어든다. 좁은 골목 계단에 마른 꽃잎이 수북하다. 산비탈 골목은 하늘로 열려 멀리 보이는 북한산이 눈높이다. 잠시 골목을 벗어나 도로를 만난다.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다시 산비탈 마을 골목길로 접어든다. 인왕산 기차바위 아랫마을이다. 이곳부터 부암동사무소까지 이어지는 길은 예전에는 계곡이었다. 청계동천이라고 했다.(현진건 집터 표지석 위 숲 바위에 청계동천이라는 각자가 있다.) 청계동천에는 안평대군이 머물렀던 무계정사(무계동)가 있었다. 무계동 아랫마을에는 흥선 대원군이 머물렀던 석파정(삼계동)이 있었다.


경치가 얼마나 좋았으면 조선 시대 왕족의 두 인물이 머물렀던 별장이 있었을까? 그 흔적을 청계동천 가장 꼭대기 마을에서 찾을 수 있다.


인왕산 기차바위 아래 첫 마을은 봄이면 그야말로 ‘꽃대궐’이다. 산비탈에 집들이 들어서서, 길 아래 지붕이고 집 위가 골목이다. 그런 마을 골목길 담장 아래 작은 텃밭이 정겹다. 울타리 없는 집 옆이 산이다. 들꽃 핀 오솔길 사이에 장독대가 놓였다. 장독대 옆 텃밭 이랑 고랑이 정겹다.

 

옛날 산비탈 마을 꼭대기 집은 그랬다. 울타리 없는 집 뒤가 산이었고 집 마당이 밭이었다. ‘마당밭’ 한쪽에 고여 놓은 깨진 항아리는 아이들의 오줌통이었다. 그렇게 모은 오줌을 밭에 뿌리곤 했다.


옛 생각에 이 마을이 더 정겨워진다. 골목길에서 이어지는 오솔길로 접어들 때였다. 앞이 환해졌다. 노란 꽃, 하얀 꽃, 붉은 꽃이 골짜기에 가득했다. 산비탈 마을 좁은 골짜기지만 그 풍경은 ‘꽃대궐’이었다. ‘꽃대궐’ 좁은 골짜기에도 부지런한 사람들의 손길이 머문 텃밭이 추억처럼 남아 있다.

벼농사 짓는 무수골, 70년대 신작로 같은 길이 남아 있는 구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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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무수골. 논에 물을 댔다. 요즘이 모내기철이다

대모산과 구룡산이 품고 있는 구룡마을에도 옛 시골 풍경이 남아 있다.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앞 사거리에서 구룡마을로 들어간다. 이곳부터 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마을 외곽을 따라 걷는 길이다. 배드민턴장이 마을과 산의 경계쯤 된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지붕 낮은 식당이 몇 개 보인다. 식당 앞 길옆에 텃밭이 있고 텃밭 안에 송곳처럼 땅에 박힌 커다란 나무가 있다. 구불거리는 흙길을 따라 가다 뒤돌아본 풍경에서 땡볕 아래 곧추선 미루나무 그림자 위로 흙먼지 풀풀 날리던 70년대 신작로를 느꼈다.


도봉구 도봉동 무수골은 벼농사 짓는 마을이다. 도봉초등학교 앞을 지나 무수천을 거슬러 오른다. 멀리 북한산 자락과 도봉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수천 바닥이 암반 바위다. 그 위로 물이 고이고 흐른다. 냇물 바로 옆을 걷는 발자국 소리에 송사리가 재빨리 방향을 바꿔 헤엄친다.

 

냇가에 주말농장이 있다. 농장을 찾은 가족들이 농사일에 바쁘다. 작은 물조리개에 물을 담아와 채소에 뿌려주는 아이도 있고, 고랑에 쪼그려 앉아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아줌마도 보인다.


세일교 아래 반짝이는 모래사장 옆으로 냇물이 흐른다. 냇물 건너 어느 집 담벼락 아래 물이 고였다 흐른다. 고인 물 위에 붉은 꽃잎 몇 장 떨어져 맴돈다.


세일교를 건너 윗무수골로 향했다. 커다란 나무들이 만든 터널이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통로 같다. 만세교를 건너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길옆에 논이 있다. 마을에서 식당을 하는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마을이 생기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논이다. 그 역사가 한 500년은 됐다고 하신다. 지난해에도 모내기를 했다. 올해도 논에 물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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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마을.

논둑에 앉아 있던 하얀 새 한 마리가 발자국 소리에 날아간다. 날아가 앉은 곳도 산기슭 논둑이다. 작은 논 옆에 계곡이 있다. 초록 벼 포기 바람에 넘실거리는 여름이면 그 계곡에 여름을 나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할 것 같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