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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Weconomy | 경제의 창

‘하늘길 좌석’ 1등 지고
2등 뜨는 이유는?

by한겨레

1등석, 항공사 ‘간판 서비스’ 옛말

좌석 점유율 평균 30%도 안 돼

수익성 악화 주요 원인 전락

VIP들 전용기 이용 늘어나고

비즈니스석 수준 높아진 탓도

대한항공, 일등석 노선 절반 줄이고

아시아나는 9월부터 모두 없애기로

한겨레

항공사에서 일등석이 사라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오늘 6월부터 국제선 전체 노선 111개 중 35개 노선(32%)에서만 일등석을 유지하기로 했다. 기존 62개 노선(56%) 가운데 30개 노선에서 일등석이 없어지는 셈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아예 일등석 자체를 없애기로 했다. 에어버스380 6대에서만 운영되던 아시아나항공의 일등석은 오는 9월부터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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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항공사의 결정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일등석 축소는 이미 세계 항공업계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항공데이터 분석 기업 오에이지(OAG)가 3000해리(약 5500㎞) 이상 장거리 항공편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영국항공은 2008년 한 해 동안 58만개의 일등석을 제공했으나 2018년에는 48만석으로 10만개 감소했다. 독일 루프트한자 일등석도 같은 시기 49만석에서 18만석으로 감소했다. 에어프랑스는 약 19만개의 일등석을 운영했으나 10년 뒤 6만8천개로 줄었다. 일등석이 늘어난 항공사는 중동항공사 에미레이트항공(31만5000석→62만석)이 유일하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오일머니’의 지원을 받는 에미레이트항공은 일등석을 늘리고 있지만, 글로벌 항공업계에서 일등석 축소는 일시적인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된 지 오래다. 오히려 한국 항공사의 조처가 늦은 편”이라고 말했다.


한때 일등석이 항공사의 서비스 수준을 나타내는 ‘간판’으로 취급받던 시절도 있었다. 200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항공사들은 ‘누가누가 편안하게, 화려하게 꾸미나’를 놓고 프리미엄 일등석 경쟁을 벌였다. 대한항공은 2009년 ‘기존 일등석보다 더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일등석 ‘코스모스위트’를 만들었다. 좌석 가격이 2억5천만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목받은 코스모스위트는, 180도로 펼쳐지는 좌석, 23인치 모니터, 높은 가림막 등이 핵심이다. 아시아나항공은 2011년 국내 항공사 중 처음으로 좌석에 미닫이문을 달아 승객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강조한 ‘퍼스트 스위트’를 내놓기도 했다. 일부 외항사는 파격적인 서비스를 제공해 일등석 경쟁에 불을 붙였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일등석 승객이 이용할 수 있는 기내 샤워실을 만들었으며, 싱가포르항공은 좌석을 젖히지 않고도 누울 수 있도록 별도의 침대를 제공해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제 일등석은 항공사의 자랑이 아니라 애물단지로 전락한 상태다. 수익성 탓이다. 업계에서는 일등석 좌석점유율이 평균 30%가 채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일등석 12석 중 3∼4석 정도만 손님을 태우고, 나머지는 비워서 가는 셈이다.


대신 비즈니스석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다. 비즈니스석의 시설도 일등석 못지않게 훌륭해지면서 굳이 몇백만원을 더 얹어 일등석을 탈 유인이 없어진 것이다. 22일 인천발 뉴욕행 항공편 기준으로 살펴보면, 대한항공의 일등석과 비즈니스석 가격 차이는 330만원(일등석 약 720만원, 비즈니스석 390만원)이었고, 아시아나항공은 160만원(일등석 520만원, 비즈니스석 360만원)이었다. 기내식, 라운지 이용, 무료 수하물 기준 등의 차이는 있지만, 좌석의 편의성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게 항공업계의 설명이다. 대한항공의 비즈니스석인 ‘프래스티지 클래스’와 아시아나항공의 ‘비즈니스 스마티움’은 모두 좌석을 180도로 젖힐 수 있고 기내 바 이용도 가능하다. 앞뒤 좌석간 간격도 일등석과 비즈니스석 간 차이가 30㎝(대한항공 기준) 정도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보잉787, 에어버스350 등 새로운 기종이 출시되면서 일등석 못지않게 비즈니스석 수준도 높아졌다. 비즈니스석의 가성비가 좋아지면서 일등석의 우위가 낮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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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석을 타던 사람들이 전용기 시장으로 몰려가고 있다는 점도 세계 항공업계에서 일등석이 약화한 요인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3월 ‘일등석 여행이 감소하고 있다’는 기사에서 “전용기를 이용하면 (항공사 항공기를 이용할 때보다) 대기시간을 피할 수 있고 보안검색도 훨씬 빠르다.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지고 있다”며 전용기가 일등석 수요를 대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과)는 “일등석을 타는 브이아이피(VIP)들이 이동수단으로 전용기를 택하는 경향이 커졌다”며 “비즈니스 제트기 등 소형제트기 시장이 커지고, 일등석 수요는 줄어드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석의 수요가 높아진 만큼 이제는 비즈니스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항공사도 등장했다. 카타르항공은 2017년 ‘큐(Q)스위트’란 비즈니스석을 선보였다. 칸막이를 높여 일등석과 다름없는 독립적인 공간을 제공하고, 네 개의 좌석을 합쳐 전용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말레이시아항공도 지난해 좌석 사방을 칸막이로 가린 ‘비즈니스 스위트’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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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당분간 이런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앞으로도 저비용항공사(LCC) 등 항공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형항공사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3클래스에서 2클래스로 재편하는 흐름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희영 교수도 “2클래스를 운영하면서 비즈니스 좌석을 세분화하는 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몇만원 더 내면 더 널찍…‘일반석 차별화’ 경쟁

‘프리미엄 이코노미석’ 높은 인기에

저가항공사들도 좌석 확장 등 나서


일등석이 사라지고 비즈니스석이 늘어나는 동안 일반석(이코노미석)도 급이 나뉘고 있다. ‘프리미엄 이코노미’가 나오는 등 이코노미 경쟁이 뜨겁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은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을 운영 중이다. 대한항공은 일부 기종에서 ‘이코노미 플러스’ 좌석을 운영한다. 편도 기준 일반석보다 3만원가량 비싼데, 이코노미보다 앞뒤 좌석 간격이 10~13㎝ 넓다. 아시아나항공도 이코노미에서 2~15만원 비싼 ‘이코노미 스마티움’을 판매한다. 좌석 간격이 7~10㎝ 넓고, 우선 탑승과 인천공항 비즈니스 라운지 이용(일부 장거리 노선 한정)이 가능하다. 델타항공·에어프랑스·에어캐나다도 10여년 전부터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을 별도로 판매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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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비용항공사도 가세했다. 제주항공은 올해 4분기부터 일부 노선에서 일반석보다 좌석 간격이 25㎝ 넓은 ‘뉴클래스’를 도입한다. 우선 탑승, 무료 수하물 추가 등도 제공한다. 다른 저비용항공사는 비상구 프리미엄 좌석으로 판매하고 있다. 티웨이항공·제주항공·진에어·에어부산·이스타항공·에어서울 등이 그렇다.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에 대한 소비자들 관심은 날로 높아진다. 항공권검색 앱 스카이스캐너가 최근 3년간 1~4월 좌석 검색량을 분석한 결과, 올해 프리미엄 이코노미 검색량은 2017년보다 3배 가까이(296%) 증가했다. 스카이스캐너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며 4000㎞ 이상 장거리 여행을 기준으로 프리미엄 일반석을 이용하는 비중은 2017년 76%에서 2018년 83%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