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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ESC] 3일간의 세계 통조림 여행…신세계를 만났네!

by한겨레

커버스토리/통조림


9개국 17개 통조림 경험해 보니


채식 통조림부터 전통식 녹인 것까지 다양


가스파초, 콘비프 양파 볶음밥 등에 활용


캠핑·여름 휴가용, 독특한 간편식으로 고를 만


한겨레

열대과일의 맛을 통조림으로 배웠다. 하지만 때로 이국적인 식재료나 가공식품 통조림을 처음 맛보고 환상이 깨지기도 한다. 한국, 스리랑카, 프랑스, 타이, 포르투갈,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라트비아 공화국 등 9개국의 통조림 모험을 떠났다. 옅은 맛부터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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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채식 통조림의 날


첫날은 동물성 식재료가 포함되지 않은 채식 통조림을 골랐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엠디(MD) 브레드 후르츠 커리’다. 열대과일에 속하는 ‘브레드 프루트’는 빵나무의 열매로, 익히면 빵 맛이 난다고 한다. 캔 안에는 코코넛밀크가 들어가 부드럽고 묽은 커리에 사각형으로 잘린 빵나무 열매 조각이 잠겨있다. 호박과 감자의 중간 정도 식감이다. 진한 소스 때문에 빵 맛은 찾지 못했다.


다음은 프랑스 제품 ‘바비도핀 라따뚜이’다. 토마토 퓌레에 버무린 가지와 단호박, 양파 등은 뭉크러지지 않고 형체를 유지한다. 라타투이(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채소 스튜)는 많은 양을 만들어서 하루 묵힌 후 차게 먹어도 맛있다. 통조림 제품에 토마토 퓌레가 넉넉하게 들어간 편이라서 생토마토와 오이, 마늘, 올리브유 등을 넣고 갈아 만든 스페인의 가스파초처럼 차가운 수프를 만들기로 했다. 통조림에 부족한 신맛을 보충하려고 생파인애플 한쪽을 블렌더에 함께 넣어 갈았다. 예전엔 고급 통조림으로나 먹을 수 있었던 파인애플을 통조림 요리에 갈아 넣으니 묘하게 사치스러운 기분이다. 냉장고에 차게 식힌 수프 맛은 만족스러웠다. 크루통이나 통밀 비스킷을 넣어 먹어도 좋다. 더운 날 캠핑 요리로 이만한 게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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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기에 대한 편견을 통조림이 지울 수 있을까? 베지푸드의 ‘채식 찹스테이크’와 ‘채식 장조림’ 캔을 땄다. 채식 촙스테이크는 약간의 신맛이 배어든 콩 단백질에 양송이가 들어가 있다. 너무 달다 보니, 시큼한 호밀빵에 잼을 양껏 발라 씹는 기분이 든다. 꽈리고추가 들어간 채식 장조림은 간장양념 맛이다. 씹을 때마다 ‘콩고기란 무엇인가?’ 하는 번뇌에 빠진다. 이것이 문제다. 고기와 유사한 맛을 내려고 하지만, 고기여서는 안 되는 이것을 ‘고기’라고 부를 때의 갈등이 있다. 존재와 근원, 본질을 담을 수 없는 이름에 관해 생각하며 젓가락을 놀리다 보니 어느새 한 통을 다 비우고 말았다.


아시아 국가의 절임 반찬은 대개 입에 맞았다. 하지만 별걱정 없이 골랐던 타이 김치 제품 ‘피존 갓 절임’은 아쉬움이 남았다. 더구나 원터치 캔이 아니었다. 오프너는 없었다. 식칼 뒤꽁무니를 밥공기로 두들겨 가며 캔을 열었다. 갓 냄새와 식초가 섞인 절임액이 사방으로 튀고 카펫을 적셨다. 채식 통조림 모험은 빨래로 마무리했다.


▣ 2일: 조미 수산 통조림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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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 레이디 쿡스 고등어 캔’은 묽은 토마토소스에 고등어 토막이 잠겨있다. 토마토 향이 고등어를 압도하지 않으면서 비린 맛만 잡았다. ‘킹스피셔 그린칠리 정어리’는 고추를 다진 인도네시아 삼발소스에 버무린 정어리다. 맵고 짠 양념이 정어리를 덮어서 맨입에 먹기는 힘들다. 타이 통조림 ‘폼푸이 프라이드 마커럴 인 칠리소스’는 훨씬 친숙하다. 분명 고등어인데, 예전 문방구에서 사 먹던 조미 어포 맛이 난다. 꾸덕꾸덕한 식감에 달착지근한 양념이 밴 고등어를 쪽쪽 찢어서 마요네즈에 찍어 먹으면 맥주가 술술 들어간다. 회사명인 ‘폼푸이’는 타이어로 ‘통통하다’는 뜻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만엔 원년의 풋볼>에는 위스키 안주로 정어리 통조림을 손으로 집어 먹는 대목이 있다. 아베 야로의 만화 <심야식당>에도 정어리 통조림에 채 썬 양파를 올린 안주가 나온다. 포르투갈 브랜드 하미레즈의 ‘레몬 정어리 통조림’은 데우지 않고 크래커에 올려 먹을 때는 레몬 풍미가 선명하다. 종이 포일을 팬에 깔고 양파를 올린 다음 구워 먹으면 딱 알맞게 짭조름한 맛이 올라온다. 고소한 올리브유에 크래커를 적시면 채소 과자 맛도 난다. 조리시간은 고작 2~3분. 조리법도 간편해서 여름 휴가지나 캠핑장에서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설거지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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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하미레즈의 ‘라구소스 오징어 통조림’과 튀긴 바지락을 양념한 ‘폼푸이 스마일링 피시 베이비 클램 위드 칠리’와 라트비아산 통조림인 ‘리가 골드 훈제 청어 파테’의 맛을 보았다. 파테는 갈아 만드는 조리법이다. 보기엔 진흙 같아도 크래커에 발라먹기 간편하다. 그냥 먹을 때보다 과장해서 세 배쯤 맛있어진다. ‘센추리 뱅구스 밀크피시’ 통조림의 수입사에서는 밀크피시에서 우유 맛이 난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생선살은 시큼하다. 밀크피시는 필리핀 국민이 많이 먹는 생선 ‘뱅구스’(bangus)를 말한다. 통조림에 표기된 ‘시시그’(sisig)는 돼지의 부속 고기나 절인 생선을 잘게 자르고 새콤한 레몬즙 등을 더해 철판에 굽는 필리핀의 대중 요리 조리법이다. 필리핀에 가면 반드시 진짜 ‘시시그’를 시식해보리라.



▣ 3일: 고기 요리 통조림과 가공육 통조림의 날


인도네시아 베르나르디 상표의 통조림들은 나시고렝(인도네시아 볶음밥)용 양념 캔 외에는 이름이 낯설다. 사전을 뒤졌다. ‘소토 다깅 사피’(soto daging sapi)는 소뼈 우린 국물에 소고기를 더하고 향신료를 첨가해 끓인 인도네시아 전통 수프다. 소토가 ‘고기 수프’, 다깅은 ‘고기, 고기 살점’, 사피가 ‘소’를 뜻한다. 세 번 데워서 무와 대파가 푹 물러진 우리네 소고기 뭇국풍의 국물에 강황의 매운맛이 살짝 풍긴다. ‘른당(rendang) 다깅 사피’는 코코넛밀크를 넣은 커리에 소고기를 조린 형태다. ‘밤부 나시고렝’ 캔은 한 개에 밥 세 공기를 섞어 볶으면 적당하다. 짭조름함과 달콤함과 매콤함이 섞여 있고, 간간이 고기도 씹힌다. 짬뽕 맛도 떠오른다. 밥만 먹기 섭섭해서 배추와 게맛살을 채 썰고, 레몬즙과 피시소스, 간장을 뿌려 만든 샐러드를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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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콘비프’다. 본래 굵은 소금으로 염장한 소고기를 뜻하지만, 통조림 콘비프는 분쇄해서 양념과 기름을 더한 제품이다. 한국에선 1982년 제일제당(현 씨제이제일제당)이 콘비프 통조림을 출시한 적은 있으나, 곧 자취를 감췄다. 일본의 통조림 콘비프는 일본인들에게는 추억의 음식이다. 1950년 콘비프를 출시한 식품회사 ‘노자키’는 열쇠로 돌려 따는 사다리꼴 캔과 오래된 소 그림 디자인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만화 <심야식당>에도 콘비프 볶음과 남은 콘비프를 오차즈케로 만들어 먹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 레시피는 갓 지은 밥에 콘비프와 달걀노른자를 얹고 간장을 뿌려 먹거나, 무 조림, 감자요리, 샌드위치 등에 활용한다.


통조림 콘비프는 필리핀에서 인기다. 필리핀의 패스트푸드점 ‘졸리비’에는 ‘갈릭라이스와 콘비프, 달걀프라이’ 구성의 아침 메뉴가 있다. 구매한 통조림도 필리핀 ‘퓨어푸드 호멜 콘비프’다. 하얗게 굳은 소기름 덩어리가 보여서 아쉬웠다. 필리핀식으로 양파와 볶아 밥반찬으로 먹었다. 느끼한데도 잊을 만하면 또 생각날 맛이었다.


5월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17개의 통조림을 땄다. 모험 삼아 시작했지만, 조금 낯선 통조림 요리들이 먼 나라 사람들의 입맛과 조리법, 취향을 가늠할 가이드가 돼 주었다. 혼자 맛보며 생각했다. 가족끼리 혹은 여럿이 모이는 여행이나 캠핑에서 낯선 통조림을 함께 맛을 보고 감상을 나누는 것도 즐거울 텐데. 다음에는 놀러 갈 궁리를 하며 통조림을 고르기로 했다.


한편 고양이의 신뢰는 잃었다. 캔 따는 소리가 들리면 잠자던 고양이는 벌떡 일어나 뛰어온다. 하지만 어떤 캔도 ‘캣 푸드’가 아니다. 여러 번 속은 우리 집고양이는 이제 캔 따는 소리가 들려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


글·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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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 상온에서 보존이 가능한 것, 장기간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 해동하거나 물을 첨가할 필요 없이 그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인 대표적인 가공식품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간한 <2018년 가공식품소비자태도조사>를 보면 2021가구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89.7%가 최근 1년간 수산물 통조림 구매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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