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권력’ 연예기획사 문화 안 바뀌면 ‘제2의 YG’ 나온다

[컬처]by 한겨레

[토요판] 이슈 : YG 제국의 추락


양현석 1996년 연예사업 시작

지상파 중심 제도권에 반기 들고

“우린 다르다” 대안 문화 정체성

지드래곤·씨엘 등 독보적 인물 키워


‘회장님’ 판단으로 모든 것 좌우돼

군대식 서열문화 역시 고질적 병폐

정도 차이일 뿐 다른 기획사도 비슷

케이팝 전반적 문화 바뀌어야

한겨레

양현석씨는 소속사 연예인들의 마약 투약 및 관련 수사 무마 의혹 등으로 최근 와이지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에서 사임했다. 2014년 9월2일 엠넷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믹스앤매치’ 제작발표회에서 양씨가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의 대표 연예기획사 중 하나였던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가 소속 연예인들의 마약 사건으로 사회적 논란에 휩싸였다. 양현석·민석 형제가 각각 총괄프로듀서와 대표이사직을 내려놨지만 사태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아이돌 전문 평론 웹진인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이 와이지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이번 사태가 케이팝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최근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이하 와이지) 소속 그룹 아이콘(iKON) 전 멤버 비아이(본명 김한빈·23)의 마약 투약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와 관련해 와이지가 경찰과 유착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연초에는 빅뱅 멤버인 승리가 운영하던 클럽 버닝썬에서 조직적 약물 강간과 성매수, 대가성 있는 성매매 알선 등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전례 없는 추문이 반복되며 최근 와이지의 양현석 전 총괄프로듀서는 모든 직책에서 사임했다. 그의 동생이자 와이지의 대표이사였던 양민석씨 역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고발되고 대중에게 공개된 내용에 비해 수사 진행과 결과가 미온적인 것이 한 이유다. 한동안 연예인 마약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버닝썬의 성 관련 범죄 혐의로부터 대중의 눈을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듯 경찰이 신뢰받지 못하는 것은 버닝썬 스캔들 관련 의혹들이 대부분 경찰과의 유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와이지는 과거에도 마약 관련 사건으로 잡음을 자주 냈다. 와이지(YG)가 ‘약국’의 약자라는 조롱이 유행할 정도다. 수많은 연예기획사 중 왜 와이지에서만 이런 일이 잇따르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것은 와이지의 특징과 부분적으로 관련 있고, 또한 케이팝 산업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도 하다.

와이지가 제시한 아이돌 시스템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인 양현석은 1996년 와이지의 전신인 ‘현기획’을 설립하고 독자적인 연예사업을 시작했다. 초창기 최대 히트작은 4인조 힙합 보이그룹인 ‘원타임’이었다. 1990년대의 젊은 대중은 기성가요와는 차별화되는 새로운 감각을 희구하고 있었다. 그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 아이돌과 힙합이었다. 에이치오티(H.O.T.)가 아이돌 시스템이라는, 드렁큰타이거가 ‘진짜 힙합’이라는 지향점을 제시한 것이다. 와이지는 힙합에 방점을 둔 채 두 세계의 타협점을 성공적으로 마련했다. 언더그라운드 문화로서 성장하던 힙합이 좀처럼 달성하기 어려웠던 대중적 파급력을 입증했다. 아이돌 세계에서도 “와이지는 다르다”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한국 주류 가요계는 지상파 방송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권 문화의 특성을 강하게 띠고 있었고 아이돌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에 비해 와이지는 클럽을 직접 운영하고 인근 지역의 요식업과 부동산으로 사세를 확장하는 등 구조적으로도 언더그라운드 문화 집단의 형태를 취했다. 섭외나 심의 등과 관련해 방송국과 알력 싸움을 벌이고 이를 거의 자랑스럽게 외부로 내보이기도 한 것은 와이지의 이런 입장을 잘 대변한다. ‘잘나가니까 아쉬울 것 없다’는 ‘스왜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도권은 따분하고 우리는 다르다’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러니 와이지가 굳이 클럽을 운영해서 위험 요소를 방치했다는 주장은 본질에서 다소 벗어난다. 클럽이 마약의 동의어가 아님은 물론이고, 클럽을 위시한 ‘밤 문화’는 언더그라운드에 적어도 명분상의 뿌리를 대고 있는 와이지의 정체성에 직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와이지 아티스트들이 약물에 대한 윤리적 감수성이 낮았다고 한다면, 이 또한 클럽이 가까이에 있어서라기보다는 와이지가 갖는 대안문화적 정체성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높다.


케이팝 산업에서 와이지가 음악적, 시각적으로 앞서 나가는 스타일을 선보인 비결도 거기에 있었다. 또한 거리와 언더그라운드에 기반한 감각을 유지함으로써 나오는 생동감은 단연 남다른 것이었다. 이를테면 무대에서 정해진 안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저 뛰고 몸을 흔들고 소리지르며 관객을 열광시키는 데는 와이지 아티스트들을 따라갈 이가 드물었다. 이런 배경에서 지드래곤(빅뱅), 씨엘(투애니원) 등의 독보적 인물이 등장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직접 곡을 쓰는 아이돌, 힙합하는 아이돌, 성별을 넘어 환영받는 아이돌이란 당시로선 전례 없는 것이었다. 곡에 담긴 강한 자의식이나 도발적인 메시지 역시 그랬다. 빅뱅과 투애니원은 2000년대 후반 폭발적으로 성장한 해외 케이팝 팬덤이 가장 사랑한 아이돌들이었다. 또한 지드래곤과 빅뱅은 수많은 보이그룹의 암묵적 혹은 노골적 전범으로 거의 계보를 형성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워커로 패서 사람 만드셨다”

비아이가 마약 구매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 메신저 대화에서 그는 “천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대중음악에서는 유구한 신화다. 약물을 통해 어떤 감각을 해방하여, 달리 이룰 수 없는 음악적 성취를 얻어낸다는 것이다. 특히 영미권에서는 음악인의 약물 사용이 법적인 책임을 떠나 대중적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여지는 배경이기도 하다. 창작의 부담 앞에서 약물의 유혹을 느껴본 음악가는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비아이의 발언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한 가지는 이 젊은 음악가에게 약물은 창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조언을 해준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90도 인사의 예의를 가르친 사람은 많았을 텐데도 말이다. 다른 한 가지는 천재성이라는 또 하나의 신화가 그에게 정말 중요해 보인다는 점이다.


대화가 이뤄진 2016년은 그의 소속 그룹인 아이콘이 데뷔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대형 기획사 신인이라도 데뷔와 동시에 안정적인 입지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아이콘 역시 좋은 반응을 얻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것은 2018년 1월 ‘사랑을 했다’의 히트부터다. 2016년은 그에게 성공이 절박한 시점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담을 더한 것은 와이지의 의사결정 구조였을지 모른다. 와이지 아티스트들의 활동방식에 대해, 성과를 즉각 내지 못하면 활동 기회마저 좀처럼 얻지 못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안정적으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는 아티스트들은 활발하게 활동하는 반면, 빠르게 돌아가는 연예계의 호흡에 비해 지나치게 휴식기가 긴 아티스트가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과는 곧 양현석 전 총괄프로듀서의 인정 여부로 판단됐다고 볼 정황이 많다.


한 기업의 문화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알기 어렵고, 직원이라 해도 개인마다 경험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노출된 와이지의 문화에는 어느 정도 일관된 기조가 있다. 승리는 과거 예능 프로에 출연해 양현석이 최근에야 자신을 인정했다며 감격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는 양현석에게 물리력을 행사당한 경험을 시사한 적도 있고, 원타임의 송백경도 “옛날엔 워커로 패서 사람 만드셨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외에도 양현석 자신이 인스타그램에 즐겨 올리던 메시지 기록을 보면 소속 아티스트들이 그의 말 한마디에 얼마나 긴장하고 충성심을 보이는지 과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흔히 지적되는 와이지의 ‘제왕적 권력’이다.


와이지의 군대식 서열문화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리얼리티 방송에서는 불과 1년 먼저 데뷔한 아티스트가 말꼬리까지 잡아가며 ‘후배’의 ‘태도’를 강하게 질타하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했다. 승리의 인정 욕구 역시 빅뱅의 다른 멤버들과의 서열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자신의 서열을 높이고 ‘회장’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상업적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러나 연예계란 노력에 비례해 돈이 들어오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 ‘천재’가 되거나, 사익에 직접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윤리적 감각은 쉽게 변질된다. ‘회장’의 인정만 받을 수 있다면 다른 가치는 덜 중요해지는 것이다.


설령 일이 잘못된다 해도 이 가부장적 카리스마가 외부로부터 보호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서열상의 불이익이 있거나 (회장실이 있는) ‘7층’에 불려가 크게 혼이 나더라도, 결정적인 문제가 생길 경우 ‘막아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것은 실제로 지금 검찰·경찰과의 유착이나 사건 은폐 등의 제목으로 와이지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또한 버닝썬 스캔들에 와이지가 연루됐다고 의심하는 이가 많은 것도 그래서다.

한겨레

와이지엔터테인먼트 양민석 대표이사가 지난 3월22일 서울 마포구 홀트아동복지회 강당에서 주주총회에 앞서 ‘버닝썬 사태’ 등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양 대표이사는 최근 잇달아 소속 연예인들의 마약투약 혐의 등이 제기되자 지난 14일 대표이사 사임 의사를 밝혔다. 공동취재사진

와이지만의 일일까

연예기획사의 권력이 수장에게 집중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획사는 대표의 취향과 미감을 기획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음악의 스타일이나 하다못해 아이돌의 얼굴 느낌까지 각 기획사가 나름의 ‘취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대중 전반이 공감하는 의견이다. 또한 신인 아이돌을 선발하고 그룹을 조직하며 데뷔시키는 과정에도 수장의 의견이 중요하게 반영된다. 간혹 연예기획사들이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을 내릴 때 대중이 즉각 ‘사장님 맘대로’라는 해석을 내리는 것도 그래서다. 케이팝 산업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점차 의사결정을 시스템화하는 경우가 등장하지만 이는 선도적인 몇 회사에 한정된다. 상당수의 기획사는 인력 부족 때문에라도 대표가 ‘제왕적 권력’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와이지도 예외는 아니다. 더구나 시장 전반과도 확연히 차별화되는 안목과 감각으로 20여년의 성공을 이끌어온 인물이라면 그 입김이 더욱 강한 것도 놀랍지 않다.


군대식 서열문화 역시 한국 사회의 가장 흔하고 병폐적인 문화로 꼽힌다. 가장 선진적이고 국제적인 대안문화의 이미지로 시대를 주도한 연예기획사가 한국의 가장 후진적인 문화에 발목을 잡혔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다. 지금의 ‘와이지 사태’가 단지 와이지만의 일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적지 않은 연예기획사는 젊고 분방한 연예인들을 통제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명목으로 다양한 수단을 강구해 왔으며, 개중에는 휴대전화 압수나 강압적 지도, 식단 통제 등으로 대표되는 반인권적 처사도 포함돼 있다. 와이지와 같은 서열구조가 정착할 만큼 규모가 커지지 않아 ‘제왕’과 나머지 직원 및 아티스트라는 양분된 구도를 형성하고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은 가부장적 문화로 지탱되는 기획사도 상당수 있을 수 있다.


연예인 개개인의 인성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와이지도 ‘90도 인사’와 부단한 노력을 기준으로 삼아 소위 ‘인성교육’을 해왔다. 케이팝 산업의 전반적인 문화가 재고돼야 하는 이유다. 그러지 않고는 ‘약국’만이 아닌 다른 기획사의 소식을 신문 사회면에서 계속 접하든지, 가부장적으로 ‘덮어준’ 사건들이 쌓이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다.


미묘/<아이돌로지> 편집장

2019.06.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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