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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출판사들 꺼려 1인출판사 차리고…재판 대비 ‘검열’도 했죠”

by한겨레

6년만에 새 시집 펴낸 최영미 시인

1990년 등단 초기 ‘성폭력’ 작품도 실어

한겨레

6년 만에 신작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을 선보인 최영미 시인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신작을 소개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그가 아무리 인류를 노래해도/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비하한다면/ 그의 휴머니즘은 가짜다// 휴머니즘을 포장해 팔아먹는 문학은 이제 그만!”(‘거룩한 문학’에서)

고은 시인을 상대로 ‘미투’ 폭로를 했던 최영미 시인이 6년만에 신작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을 출간했다. 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최 시인은 “시집을 내면서 이번처럼 검열을 한 적이 없어요. 재판에 영향을 끼칠까봐 변호사에게 시를 보내서 검토받은 것도 처음이고요. 시도 몇 편은 빼고, 내용하고 각주도 여러 번 고쳤어요”라고 털어놨다. 최 시인은 지난 2017년 계간지 <황해문화> 겨울호에 실린 ‘괴물’이라는 시에서 고은 시인으로부터 당한 성추행 경험을 고발했다. 이후 고은 시인이 최 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2월 1심에서 최 시인이 승소한 바 있다.


“문학 전문 출판사에 연락을 했는데 제 시집을 내는 걸 부담스러워했어요. 인연이 있던 출판사에서도 (출간 제의에) 답이 없더라고요. 나중에 저와 싸우는 원로시인과 관계가 좋은 출판사라 곤란해 한다는 걸 알게 됐죠.” 결국 최 시인은 올해 4월 ‘이미’라는 일인출판사를 직접 차리고 여기서 새 시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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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신작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을 선보인 최영미 시인.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번에 출간된 시집에는 1990년 등단 직후인 1993년에 <민족문학작가회의>에 발표한 시 ‘등단 소감’을 실었다. 2000년 출간한 에세이집에 실었던 바 있는 이 시는 최 시인이 등단 초기에 문단에서 겪은 성폭력을 담은 대목이 등장한다.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 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 최 시인은 이 시를 두고 “작가회의 막내로 행사나 술자리에서 느낀 모멸감을 적은 시”라고 설명했다. “행사장에 서 있으면 누가 뒤에서 제 엉덩이를 만지고, 술자리에선 무수한 성희롱 언어를 듣고 성추행을 당했죠. 그런 게 불편해서 점점 문단의 그런 자리에는 안 나가게 되더라고요.” 이번 시집에는 ‘거룩한 문학’, ‘바위로 계란 깨기’ 등 고은 시인과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쓴 시들도 담겼다.


“‘왜 문단 성추행에 침묵하다가 지금에 와서야 말하느냐’라는 말도 들었어요. 그동안 제가 침묵한 게 아니에요. ‘괴물’도 (우리나라에서 미투운동을 일으킨)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있기 이전에 미국에서 시작한 미투를 보고 ‘이제 때가 됐다’고 생각해서 쓴 시죠.” 최 시인은 2016년 ‘문단 성폭력’ 운동 당시에도 관련 문제를 물어온 한 언론사 기자에게 고은 시인의 실명을 말했지만 보도가 나가지 않았던 사실도 전했다. “‘괴물’을 쓴 건 후회하지 않아요. 누군가는 ‘신의 한 수’였다고도 했는데, 어쨌든 1심에서도 이기고 이렇게 흘러간 것은 저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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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신작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을 선보인 최영미 시인.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그는 문단 성폭력이 오랜 기간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문단에서 권력을 쥔 사람들은 남자거든요. 남자가 평론가이자 교수이자 심사위원이니 그들을 불편하게 하기는 어려웠던 거죠. 모든 운동이 힘을 받으려면 구체적이고 삶에 기반을 둬야 해요. 그래서 지난해에 미투가 활발히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고요”라고 답했다. 최 시인은 ‘직접적인 표현으로 시를 쓰면 문학적으로는 높이 평가받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엔 이렇게 답을 돌려줬다. “다른 사람이 저를 인정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제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요. 지난해부터 저는 고립무원이고, 문단은 거의 그(고은)의 사람들인 상황에서, 제가 법정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큰 실수하지 않을 수 있던 것은 그런 확신 때문이었어요. 그게 저를 지금까지 이끌어왔다고 생각해요.”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