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는 편백 향이 나고 쑥섬은 꽃향기가 난다

[여행]by 한겨레

수십 년 전 한센인 유린당한 소록도

어두운 역사에서 교훈 얻는 다크 투어리즘 현장

가만히 지켜본 나무들 짙은 숲 내음 내뿜고

한적한 섬마을 쑥섬은 은은한 꽃내음 솔솔

전남 고흥 소록도와 쑥섬 향기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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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31일 전남 나주에서 쑥섬 꽃 정원에 방문한 홍정희(사진 왼쪽)씨 부부. 김선식 기자

벌교에선 주먹 자랑하지 말고 고흥에선 힘자랑하지 말란 말이 있다. 박치기왕 김일(프로레슬러), 코트의 갈색 폭격기 신진식(배구 선수), 아파치 김태영(축구 선수), 산소탱크 박지성(축구 선수)이 전남 고흥 출신이라는 설명을 들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난 5월30~31일, 어깨에 힘 빼고 찬찬히 전남 고흥군을 둘러봤다. 여행은 언제나처럼 예상을 벗어났다. 고흥반도 작은 두 섬에서 뜻밖의 향기에 휩싸여 꼼짝할 수 없었다. 포르말린 냄새로 가득할 것 같던 소록도(도양읍 소록리)에선 짙은 편백나무 향이, 쑥 향기만 날 줄 알았던 쑥섬(봉래면 사양리)에선 은은한 꽃향기가 넘실댔다.

 

전라남도에서 남해로 뭉툭하게 튀어나온 반도가 있다. 전남 고흥군이다. 면적(807㎢)이 부산(766㎢)보다 넓다. 주변엔 230개 섬이 있다. 유인도는 23개뿐이다. 그중 하나가 ‘비극의 섬’ 소록도다. 고흥군 남서쪽 녹동항에서 1㎞ 거리에 있다. 지금은 다리를 건너 들어갈 수 있다. 2009년 3월2일 소록대교를 놓으면서 섬을 외부에 개방했다. 전에는 고흥군 주민들도 1년에 한 차례, 매해 5월17일(국립소록도병원의 전신인 자혜의원 개원일)에 열리는 소록도 운동회 날에만 소록도에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소록도는 과거 나병, 문둥병, 천형병이라 불렸던 한센병 환자들을 일제강점기인 1916년부터 격리 수용한 곳이다. 지금도 환자 약 500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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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30일 오후 4시30분, 소록대교를 건너 소록도로 들어갔다. 소록도 중앙공원으로 가는 길은 1차선 도로다. 길가 나무들이 빽빽하다. 나무가 에워싼 좁은 길은 안쪽의 풍경을 더욱 기대케 한다. 그 길은 ‘수탄장’이다. 근심과 탄식의 장소란 뜻이다. 이곳에서 환자인 부모와 환자가 아닌 자식이 한 달에 한 차례 만났다. 부모들은 자식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전염을 막는다는 이유로 동거가 금지됐다. 환자들이 사는 공간은 2㎞ 철조망으로 병원 직원들이 사는 곳과 분리됐는데, 환자의 아이들은 직원이 거주하는 지역에 있는 보육소에서 자랐다. 수탄장 길가 양쪽에 부모와 자식은 마주 보고 섰다. 자식을 안는 것도, 서로 말하는 것도 금지됐다. 부모들은 전염 우려 때문에 항상 바람을 안고서야 했다.


수탄장에 선 부모의 처지는 그들의 과거와 겹쳐진다. 한센병 환자들은 어릴 적 피부 침윤이나 지각 마비 등의 증상이 나타나 마을 사람들이나 가족들도 병을 죄악시했다. 2000년대 들어서야 나병, 문둥병이란 병명에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이 서려 있다고 하여 한센병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한센은 1871년 나균을 발견한 노르웨이 의사 이름이다. 환자들은 발병 사실이 알려지면 마을에서 쫓겨나다시피 부모·형제와 생이별했다. 홀로 한센인 마을을 찾아 떠돌다 당국 단속에 걸려 소록도 등으로 끌려왔다. 가까스로 정착해 새 가족을 꾸린 그들은 또다시 아이와 생이별해야 했다. 한 달에 한 번 ‘침묵의 만남’만 허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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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30일 소록도 중앙공원 들머리 구라탑. 김선식 기자

섬이 ‘아기 사슴’을 닮아 소록도라는 설명은 익히 들었지만, 소록도는 보면 볼수록 ‘서럽다’는 말을 닮았다. 소록도 중앙공원으로 들어가는 들머리에는 1935년에 지은 감금실이 남아 있다. 빨간 벽돌로 지은 에이치(H)자 모양의 단층 건물이다. 겉모습은 고풍스럽고 내부는 을씨년스럽다. 안마당 시멘트 바닥은 제멋대로 갈라져 있었다. 감금실은 원내 내규를 어긴 환자들을 원장 재량에 따라 가둔 곳이다. 일제강점기엔 부당한 구금과 가혹 행위가 벌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감금실 방은 바닥 높이가 두 종류다. 바닥이 더 낮은 방엔 ‘더 괘씸한’ 환자들을 가뒀고 겨울철엔 바닥 아래 물을 채워 얼렸다고 한다. 회랑 벽에는 ‘이동’이라는 환자가 쓴 시가 걸려 있다. ‘소록도 갱생원’(자혜의원 후신) 4대 원장 스오 마사스에(1933~1942 재임)는 이동에게 벽돌공장 주변 소나무 두 그루를 옮기라고 명했다. 그날 병사에 응급환자가 생겨 그 환자를 병원으로 옮기느라 이동은 나무를 옮기지 못했다. 다음 날 새벽 그는 구타당하고 감금실에 갇혔다. 감금실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무조건 강제 정관절제수술을 받았다. 이동은 단종 수술대 위에서 떠오른 생각을 시로 썼다. 한센병은 1941년 특효약 답손이 발명됐고, 국내에는 1950년대 초반 본격 도입됐다. 하지만 소록도에선 1970년대까지도 명시적인 의사에 반한 강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이 이뤄졌다고 전해진다.


감금실 바로 옆 붉은 벽돌집이 하나 더 있다. 같은 해 지은 검시실이다. 수도꼭지가 2개 달린 먼지 쌓인 침상이 한가운데 놓여있다. 한센병 환자들은 자기 뜻과는 무관하게 사망 원인 조사를 이유로 부검 당했다. 이 때문에 한센병 환자들은 태어나 세 차례 죽는다는 말이 있다. 발병 사실을 알았을 때, 부검할 때, 화장할 때.


소록도에서 환자들이 유린당한 역사를 보고 들으며 심호흡을 했다. 그때마다 짙은 숲 내음에 정신을 뺏겼다. 중앙공원에 들어서자 또다시 그 향을 느꼈다. 정갈하게 꾸며 놓은 거대한 정원에는 황금 편백나무와 향나무, 소나무, 단풍나무가 빼곡하다. 그 틈마다 소록도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4대 원장 스오는 1939년 12월 일본 원예사를 불러 중앙공원을 조성하도록 했다. 환자들은 강제노동에 동원됐다. 산을 깎아 낮은 곳을 메우고, 나무와 돌을 날랐다. 병세는 악화하고 손발은 상처투성이가 됐다. 지쳐 쓰러지면 매질 당하고 견디지 못한 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1940년 4월1일 6000평 규모 중앙공원이 완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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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감금실 전경. 김선식 기자

지금 공원 중앙엔 오스트리아 ‘할매 천사’라 불리는 마리안느와 마가렛 등 소록도에서 헌신한 간호사들을 기리는 공적비가 있다. 그들은 1960년대 간호사가 부족한 소록도에 들어와 43년간 ‘맨손으로’ 환자들을 돌봤다. 중앙공원 끝에는 예수와 마리아상이 있다. 옛 벽돌공장이 있던 자리다. 환자들이 ‘죽도록’ 일한 기억 때문에 쳐다보기도 싫어했다는 곳이다. 스오 원장은 소록도에 세계 최고 나요양시설을 만든다는 포부로 수차례 확장 공사를 벌이고 환자들을 동원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병원 재정이 전쟁 비용으로 할당되면서 벽돌공장에서 생산하는 벽돌을 팔아 병원을 운영했다. 환자들은 3일간 불을 지피고 다 식지도 않은 벽돌을 가마에서 꺼내는 고초를 겪었다. 작업을 거부하고 저항하면 감금실로, 다시 단종수술대로 끌려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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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옛 벽돌공장 터. 김선식 기자

스오 원장은 생전 자신의 동상을 세웠다. 1940년 8월20일 높이 총 9.6m 스오 원장 동상이 중앙공원에 들어왔다. 매달 20일 환자들은 동상에 참배해야 했다. 1942년 6월20일 참배 날, 환자 이춘상이 동상 앞에서 원장을 살해했다. 지금 동상은 없고 개원 40주년 기념비가 남아 있다. 중앙공원을 나와 한센병 박물관 앞에선 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외부인 출입 통제구역이다. 그 안엔 환자들이 살고 있고, 화장장과 만령당(납골당)이 있다고 한다. 박물관 앞까지도 짙은 숲 향이 퍼진다. 강춘애(66) 고흥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소록도에 올 때마다 숲 향기를 강하게 느낀다. 여긴 나무가 유난히 좋다. 통제구역 안쪽엔 대부분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심겨 있다”고 말했다.


고흥반도를 중심으로 소록도 반대편에 해안선이 총 1㎞에 불과한 작은 섬이 있다. 나로도 왼편에 딸린 쑥섬(애도)이다. 섬에는 주민 20명 정도가 살고 있다. 예로부터 나로도항과 가까워 어업이 성행했다. 전국 각지에 고기를 내다 팔면서 덩달아 쑥도 유명해졌다. 섬에서 난 쑥이 인진쑥보다 낫다고 알려지면서 쑥섬이란 이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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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 별 정원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팽나무. 김선식 기자

지난 5월31일 오전 9시45분, 나로도 연안 여객선 터미널에서 쑥섬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3분 만에 쑥섬에 도착했다. 섬 안에 있는 숲과 정원 ‘힐링파크 쑥섬쑥섬’은 고채훈, 김상현 부부가 2000년부터 가꿔웠다. 숲길에 길 안내판을 놓고 나무 앞에 표지판을 세웠다. 정상 주변엔 꽃 정원을 가꿨다. 2017년 2월 전라남도 제1호 민간정원으로 지정됐다. 이날 날씨는 우중충했다. 전봇대 앞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잔뜩 웅크린 채 여행객들을 구경했다. 주민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적하고 심심해 보이는 섬마을이었다.


100m만 가면 숲길이 나온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해발 83m 언덕으로 가는 숲길로 접어들었다. 생경한 숲이었다. 난대원시림은 줄기가 독특했다. 줄기가 얼룩덜룩한 육박나무, 줄기에 울퉁불퉁한 몽우리들이 솟아 있는 후박나무, 줄기가 옆으로 튀어나와 섬 아이들이 타고 놀던 구실잣밤나무 등 수령 100~200년 나무들이 이어졌다. 약 500종 나무가 있는 이 섬을 주민들은 신성시했다. 쑥섬엔 무덤, 개, 닭이 없다. 마을 주민들은 섬에 무덤을 만들지 말기로 했고, 울음소리가 신을 쫓는다는 이유로 개와 닭은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숲길을 지나면 바다와 절벽이 보이는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환희의 언덕‘이라 불리는 곳이다. 맑은 날엔 멀리 거문도와 소거문도가 보인다고 한다. 그즈음 은은한 꽃향기가 밀려왔다. 꽃향기를 따라가다 보면 참나리, 돈나무 군락지에 이어 별 정원이 나온다. 칡넝쿨로 뒤덮인 곳을 개간해 별 모양의 꽃밭으로 가꾼 곳이다. 흐린 날에도 희고 파랗고 빨갛고 노란 꽃들은 빛을 잃지 않았다. 사계절 동안 400여 가지 꽃들이 피고 진다고 한다. 한쪽엔 바위틈에서 팽나무가 꿋꿋이 자라고 있다. 그 너머로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배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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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 숲길 후박나무 옆을 지나가는 여행객들. 김선식 기자

숲에서 내려와 다시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200~300년 된 아름드리 동백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그 앞길을 동백길이라 부른다. 봄이 올 무렵 동백길엔 빨간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떨어져 있다고 한다. 5월 말, 동백꽃은 흔적도 없는데 다시 꽃향기가 났다. 동백길 지나 돌담 밖으로 흰 인동초꽃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고흥 여행수첩

  1. 교통 : 케이티엑스(KTX)를 타고 순천역에 내려서 렌터카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순천역에서 고흥군 소록도까지 차로 약 1시간 거리다. 만약 서울에서 직접 차를 운전해 쉬지 않고 이동하면 약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가장 간편한 방법은 고흥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고흥군은 올해 12월22일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0시 순천역에서 출발하는 시티투어 버스를 운영한다. 고흥분청박물관~녹동항~금진항~금당팔경 유람선 관람~소록도를 돌고 저녁 6시30분 순천역에 내려준다. 매주 금요일 정오까지 고흥군 관광 누리집(tour.goheung.go.kr)에서 매주 40명까지 온라인 선착순 예약을 받는다. 가격은 일반 어른 2만6000원(중식 미포함).
  2. 식당 : 고흥읍사무소 근처 가정식 백반 전문점 대흥식당(061-834-4477)은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밑반찬이 푸짐하다. 백반 8000원. 바다한상(061-833-7373)은 회와 해물 전문점이다. ‘바다한상 스페셜’은 4만원부터, 회 코스는 1인당 3만원.
  3. 숙소 : 명품 무인호텔(061-832-6300/고흥읍 봉동주공길 95)은 시설이 깔끔하다. 한국관광공사가 품질 인증한 숙소는 나로비치호텔(061-835-9001/봉래면 나로도항길 94-10), 하얀노을호텔(061-833-8311/동일면 와다리길 3) 등이 있다.
  4. 참고·문의 : 쑥섬은 배삯 왕복 2000원, 섬 탐방비 5000원이다. 배 시간은 6~8월은 아침 7시30분~저녁 6시30분에 1~2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쑥섬 누리집(ssookseom.com) 참고. 고흥관광안내소(061-830-5637)

고흥(전남)/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2019.07.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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