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고양이의 극단적 번식…짝짓기 뒤 수컷 모두 죽어

[테크]by 한겨레

[애니멀피플]


몸무게 20∼40g으로 쥐처럼 생긴 소형 유대류


먹이 풍부한 9월초 짝짓기에 모든 걸 쏟아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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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 여기저기 죽은 매미가 나뒹군다. 여러 해에 걸친 땅속 생활을 마친 매미가 불과 몇 주 동안 벌인 짧고 강렬한 짝짓기 철을 마친 것이다. 매미처럼 평생 한 번 짝짓기하고 삶을 마치는 번식전략은 곤충에서 흔하지만, 포유류에서도 드물게 나타난다.


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 필바라 지역에 서식하는 ‘칼루타’란 주머니고양잇과의 동물이 그런 식으로 번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제네비 헤이스 오스트레일리아 서호주대 생태학자 등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자들은 ‘동물학 저널’ 봄 호에 실린 논문에서 “번식기 전까지 암·수 성비가 비슷하지만 격렬하고 짧은 짝짓기 철이 벌어진 뒤 암컷보다 훨씬 크고 건강하던 수컷은 모두 죽는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평생 한 번 번식하고 죽는 전략이 주머니고양잇과에서 독립적으로 두 차례 진화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런 극단적 번식법의 등장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에 75종이 사는 주머니고양잇과 동물의 약 20%가 이런 식으로 번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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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개미 등 곤충을 잡아먹는 칼루타는 무게 20∼40g으로 쥐처럼 생긴 소형 유대류이다. 10달이면 성숙하는데, 먹이가 풍부해지는 9월 초 2주일 동안의 짝짓기에 모든 걸 쏟아붓는다.


일처다부제이지만, 수컷은 가능하면 많은 암컷과 한 번에 14시간에 이르는 교미를 한다. 수컷은 짝짓기철 1∼2달 전부터 정자 생산을 멈추고 대신 치열한 짝짓기 경쟁에 대비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생산에 나선다.


이런 전략은 수컷의 몸에 치명적 대가를 부른다. 스트레스와 탈진으로 면역체계가 붕괴해, 짝짓기 뒤 피부병, 내출혈, 감염 등으로 모든 수컷이 새끼가 태어나는 걸 보지 못하고 죽는다.


연구자들은 “실험실에서도 짝짓기를 마친 수컷은 고환 수축과 정자 고갈 등 생식기관 노화로 다시 번식에 이르지 못한다”며 “암컷은 대체로 2차례 번식해 한 번에 8마리까지 새끼를 낳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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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극단적인 번식 방법이 진화한 이유는 뭘까. 먼저 암컷은 수정하기 전 며칠 동안 여러 수컷과 짝짓기해 정자를 보관한다. 그 결과 “정자 경쟁이 치열해 큰 수컷일수록 몸집에 견줘 훨씬 큰 고환을 지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수컷은 오래 사는 것을 포기하는 대가로 더 많은 암컷을 수태시키는 쪽을 선택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헤이스 박사는 “오스트레일리아 고유종인 이 유대류가 호주의 다른 포유류와 달리 멸종위험에 빠지지 않은 것도 이런 빠른 생활사 덕분”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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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Hayes, G. L. T. et al. Male semelparity and multiple paternity confirmed in an arid-zone dasyurid. Journal of Zoology (2019). https://doi.org/10.1111/jzo.1267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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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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