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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세포막 본뜬 바이오센서…드라마 속 사이보그가 현실로

by한겨레

생물 감각은 세포 간 통신이 기본

세포막 채널 통해 이동 물질 감지

전기 신호로 바꿔 뇌에 정보 전달

KIST, 3차원 실리콘 세포막 개발

세로토닌 결합해 정상 작동 확인

반도체 통해 신호 증폭할 수 있어

탐지견보다 나은 후각센서 가능

인공 눈·귀·피부 등에 활용 기대


한겨레

1970년대 중반에 방영된 미국 드라마 <6백만불의 사나이> 주인공은 보통 사람 시력의 20배가 넘는 ‘천리안’을 가졌다. 자매편인 드라마 <소머즈>의 주인공은 지금도 뛰어난 청력의 대명사로 입에 오른다. <소머즈>의 원제가 <생체공학 여성>(The bionic woman)인 것처럼 드라마의 두 주인공은 사이보그다. 사이보그는 사람의 뇌 기능은 유지하면서 다른 신체 부위를 인공기계로 바꾼 인조인간을 가리킨다. 사이보그를 상상에서 현실 세계로 나오게 하려면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감각의 기본 원리를 유지하면서 민감도를 높여야 한다. 감각은 세포 간의 통신을 통해 뇌에 정보가 전달된다. 감각 세포는 정보통신 기기의 센서처럼 작동한다. 센서는 ‘측정 대상물로부터 정보를 측정해 그 측정량을 인식 가능한 신호로 변환시키는 소자’이다. 감각 세포는 바이오센서다. 바이오센서는 ‘생물학적 측정 대상물로부터 정보를 측정하거나 생물학적 요소를 모방하는 것을 사용해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유용한 신호로 변화시켜 주는 소자’로 정의할 수 있다.


세포막은 외부로부터 전달해 오는 물리·화학적 신호를 이온 채널을 이용해 여닫음으로써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정확하고 정밀한 바이오센서이다. 김태송 한국과학기술연구원(키스트) 뇌과학연구소 바이오마이크로시스템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세포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포 간 통신을 해야 하는데, 전달물질로 세포막 채널을 열어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며 “뇌의 지시 내용이나 반대로 눈, 코, 귀처럼 외부 자극에 의해 세포가 감지한 정보를 뇌에 전달하는 아주 독특하고 훌륭한 센서 구실을 한다”고 말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까지 캔틸레버(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되어 있는 외팔보)를 이용한 바이오센서를 연구해왔다. 하지만 신호로 쓸 진폭이 작거나 원하는 단백질 분자만 붙어야 하는데 엉뚱한 단백질만 붙는 등 극복하기 쉽지 않은 한계에 부닥쳤다. 김 책임연구원은 과감히 캔틸레버 연구를 접고 세포막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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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은 과학자가 세포막을 본뜬 인공세포막으로 세포의 물리화학적 센싱 기능을 하는 바이오센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인공세포막은 실리콘 기반 위에 2차원적인 평면형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세포막은 두 개의 지질(리피드)로 이뤄져 있다. 바깥쪽에는 물과 친화성이 있는 친수성 지질, 안쪽에는 친유성 내지 소수성 지질의 이중막이다. 막 두께가 4~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밖에 안 돼 아주 취약하다. 2차원 평면 인공세포막은 유기용매를 사용해 막을 분리해 이중으로 만드는데 시간이 지나면 점점 이중막이 붙어 수명이 짧아진다. 문제를 극복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넘지 못할 한계가 있다.


키스트 연구팀은 발상의 전환을 했다. 실리콘 기판에 수만개의 지름 8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의 일정한 홀(웰)을 만들고 여기에 특수한 방법을 써서 리피드가 일정량 들어가도록 한 뒤 특정 조건을 줘서 공처럼 부풀어오르게 했다. 개개의 홀 위에 세포구조와 비슷한 평균 17마이크로미터의 균일한 3차원 구조물을 형성시킨 것이다. 김태송 책임연구원은 “웰의 지름과 깊이의 비율, 곧 종횡비와 리피드 양을 최적화한 것이 기술의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리피드는 물 속에 들어가면 이중막을 형성하는데 저절로 놔두면 구조물을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여기에 전기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띠도록 전계를 가하면 작은 비눗방울이 합쳐져 큰 비눗방울이 되듯이 융합(퓨전)이 일어나면서 큰 구조물이 탄생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렇게 형성된 인공세포막 구조물은 안정적인 모양을 5일 이상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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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트 연구팀은 3차원 인공세포막에 유연규 국민대 화학과 교수 연구팀이 분리, 정제한 인체 유래 세로토닌 분자 인식 채널(5HT3a) 수용체를 결합했다. 세로토닌은 뇌 신경계에 작용하는 신경전달물질로 행복을 느끼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HT3a는 7가지 세로토닌 수용체의 하나로 세로토닌 분자와 결합하면 채널이 열려 세포 안으로 소듐(Na), 포타슘(K), 칼슘(Ca) 등 양이온이 통과하는데, 연구팀은 형광현미경으로 이를 확인했다.


연구팀이 주목하는 것은 후각세포이다. 사람 세포의 수용체는 1300여개, 수용체를 통해 전달물질을 세포 안으로 유입하는 구실을 하는 트랜스포터가 800여개로 알려져 있다. 개의 경우 후각세포와 냄새를 구별하는 채널의 숫자가 훨씬 많기에 사람보다 1000배 이상 민감한 후각을 갖고 있다. 김 책임연구원은 “반도체에 3차원의 인공세포막을 형성한 것은 처음으로, 하나의 플랫폼을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이 플랫폼으로 채널의 숫자를 인위적으로 늘릴 수 있을뿐더러 들어온 신호를 반도체를 통해 증폭할 수 있기에 아주 민감한 바이오센서로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시스템으로 인조 코를 만들면 마약 탐지견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 나아가 인공 귀, 인공 눈, 인공 피부로 확장할 수 있고, 현재 신약 연구의 50~60%를 차지하는 채널 이용 약물 개발에도 기여할 것으로 연구팀은 기대하고 있다. 연구 논문은 학술지 <바이오센서와 바이오일렉트로닉스> 최신호에 실렸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