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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다뉴브강 참사 100일…피해자들 “수사 결과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가”

by한겨레

5일 헝가리 다뉴브강 유람선 참사 100일

생존자 윤씨는 3개월째 휴직 중 일상복귀 못 해

가족들 현지 수사상황 묻자 외교부 “개인사건”

‘헝가리 가서 시위해야 하나’ 피해자들 답답함 호소

헝가리 현지에서는 ‘실종자 발견’ 사례금 내걸어

한겨레

우울증과 공황장애약 그리고 신경안정제.


헝가리 다뉴브강(두너강) 유람선 침몰사고 생존자 윤아무개(32)씨는 하루에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만 3종류를 먹고 있다.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윤씨는 어머니와 이모, 삼촌과 함께 여행을 갔다가 지난 5월29일(현지시각) 침몰사고를 당했다. 윤씨와 어머니는 극적으로 구조됐지만 이모와 삼촌이 숨졌다. 친목 모임 차 떠난 여행에서 마주한 끔찍한 사고였다. 윤씨와 어머니는 이모와 삼촌의 주검을 찾아 사고 38일째 되던 7월5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하루하루는 순탄치 않았다. 부인과 딸을 잃을 뻔했다는 충격 때문인지 윤씨 아버지는 ‘급성 위암’에 걸렸고 수술을 받아야 했다. 윤씨와 어머니는 7월 말에야 겨우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다. 윤씨는 지금도 휴직 중이다. “10년 넘게 해오던 일을 쉬고 있어요. 여행상품을 기획해 여행사에 판매하는 일인데, 사고 이후 즐거운 마음으로 상품을 만들어 손님을 보낼 자신이 없거든요.” 윤씨에게 일상은 아직 먼 이야기다.


5일은 헝가리 다뉴브강에서 허블레아니호가 침몰한 지 100일 되는 날이다. 이 사고로 한국인 33명 가운데 2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생존자와 유가족으로 구성된 피해자 단체 대표인 김현구(36)씨와 윤씨는 4일 <한겨레>와 만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피해자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정부

“한국에 돌아온 순간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헝가리 수사 결과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요. ‘헝가리 머르기트 다리에 올라가서 시위해야 하나?’ 이런 생각마저 합니다.”


바이킹 시긴호의 유리 선장이 왜 그때 유람선 허블레아니호를 들이받았는지, 그가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그 처벌이 정당한 것인지 등…. 피해자들은 보상을 받는 것보다 이런 것들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윤씨는 헝가리에서도 관련 정보를 전혀 얻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개인의 사건이라 헝가리 법상 당사자가 아닌 대사관은 알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윤씨가 헝가리 경찰서에 직접 가 8000쪽의 수사기록을 보고서야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윤씨는 “헝가리 현지 수사와 관련해서 외교부가 뭔가를 하고 있으면 하고 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지금은 너무 불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고로 부모님과 누나, 6살 조카를 잃은 김씨 역시 “한국에 돌아온 순간 정부가 우리의 손을 탁 놓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향후 대응책 마련을 위해 외부에 가족들이 모일 장소 섭외를 부탁했지만 ‘(피해자의) 개인적인 일이라서 해줄 수 없다’고 거절당했다. 김씨는 “국민 20명 이상이 숨진 재난이다. 왜 한국 정부는 발을 빼려고만 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그러면서도 현지에서 애써준 구조대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현지에서 구조대 분들, 정부 소속 직원들과 단체들, 교민들과 종교단체들… 알게 모르게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왔네요. 구조하는 분들 생명이 소중하지요. 그래서 가족들이 대사관 통해서 ‘몸 상하지 않게 몸 챙겨가면서 해주시라. 너무 그렇게까지 하는 걸 우린 원치 않는다’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사건 초기 가족들이 언론을 피한 이유

윤씨는 사고 당시 자신의 몸을 ‘피멍투성이의 새까만 몸’이었다고 기억했다. 사고가 났을 때 배 안에서 여기저기 부딪힐 때 생긴 상처들이었다. 하지만 피멍보다 윤씨를 아프게 한 건 언론이었다. 언론은 다짜고짜 “왜 여행을 갔냐”고 캐물었다. 사고가 난 뒤 48시간 만에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카톡으로 기자들이 ‘보이스톡’을 해댔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사고 이후 최대한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피해자들은 다짜고짜 “이 사실이 맞냐, 아니냐”고 묻는 기자들이 무섭기까지 했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내가 죄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에서 얼마 받았느냐”며 참사를 ‘가십거리’ 정도로 소비하는 사람들의 말도 비수가 됐다. 김씨는 “‘세월호는 얼마를 받았다던데 너희는 얼마 받았냐’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윤씨는 “‘지네들이 돈 주고 놀러 가서 사고당해놓고 왜 우리 세금을 왜 쓰냐?’는 댓글을 봤다”며 “수색 등 구조에 세금이 들어간 건 맞지만 정부로부터 받은 돈은 일절 없다”고 강조했다.


생존자와 가족들은 여전히 ‘죄책감’ 속에서 살아간다. “주검을 먼저 찾은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제발 하지 말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우리 이모 주검이 발견되니까 알겠더라고요. 정말 너무 미안해서 남은 가족들을 쳐다볼 수가 없었어요.” 윤씨의 말이다. 사고 이후 실종자 1명의 주검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정부합동 신속대응팀의 수색활동은 지난 7월30일 종료됐다. 생존자와 가족들은 최근 정부에 ‘실종자를 찾는 사람에게 사례금을 주면 안 되겠냐’고 제안해 5일 현재 주헝가리한국대사관 페이스북과 누리집에는 ‘허블레아니호 실종자를 찾는다. 발견하신 분께 1백만 포린트(한화 약 400만원)를 사례한다’는 글이 게시된 상태다.


생존자와 가족에게 참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피해자들은 사고의 진상이 밝혀지고 가해자가 정당한 처벌을 받은 뒤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안전하게 돌아가야 참사는 끝이 날 것이라고 말한다.


“헝가리 사고가 아직 끝이 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개인의 사고가 아니라 국민 33명이 다치거나 죽은 ‘참사’이자 ‘재난’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세요.” 윤씨가 힘주어 호소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