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8차 범인’으로 20년 복역한 50대 “경찰 협박·강압에 거짓 자백”

[이슈]by 한겨레

범인 지목 윤 아무개씨, 인터뷰서 ‘가혹행위’ 첫 육성증언

윤씨, 재심 청구 계획…‘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변론

한겨레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 윤아무개(52)씨가 과거 경찰의 폭행과 가혹행위를 못 이겨 허위자백했다고 털어놨다. 윤씨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육성으로 당시 조사 상황을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경찰의 부실·강압 수사 의혹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윤씨는 9일 종합편성채널 <채널에이>와 한 인터뷰에서 “경찰의 협박과 강압수사에 거짓으로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체포된 직후 경찰서가 아닌 야산 정상으로 끌려갔다는 그는 “(그곳에서)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못 쓰는데, (경찰이) 쪼그려 뛰기를 시켰다. 주먹과 손바닥으로 때리고, 뺨도 때렸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이어 “(경찰이) 3일 동안 잠도 안 재웠다. 잠들면 깨우고, 또 깨웠다. 목이 말라 물 한병 달라고 하니까 자백하면 주겠다고 했다. 조서도 경찰이 불러주는 대로 쓰고, 지장도 찍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을 고문한 형사들의 성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범행 현장 검증도 경찰이 짜준 각본대로 진행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는 “형사가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해서 했다. (사건 현장의) 담이 많이 흔들렸는데, 형사가 잡아준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경찰은 물론 검사도) 자백하면 무기징역이나 20년을 해줄 수 있다”며 형량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로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기본적인 방어권도 보장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1심 때 국선 변호인을 한번 본 것으로 끝이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고문과 강압수사에 의해 허위자백했다며)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만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심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가 윤씨의 변론을 맡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화성연쇄살인의 유력 용의자 이아무개(57)씨가 진실을 밝혀주길 기대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이씨는 최근 화성 사건을 포함한 14건의 살인과 강간·강간미수 성범죄 30여건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당시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한 주택에서 박아무개(13)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으로, 범행 형태가 앞서 발생한 화성 사건과 달랐다. 이에 당시 경찰은 모방범죄로 결론 내렸다. 윤씨는 이 사건의 범인으로 특정돼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2009년 충북 청주교도소에서 가석방됐다. 그는 가석방 뒤 청주에서 거주해왔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지난 6일 윤씨를 찾아가 당시 경찰과 검찰의 수사 과정에 대해 확인하고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로부터 당시 내용에 대해 진술을 받았지만,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2019.10.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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