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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뒷목 잡을 통신용어... 속시원하게 설명해 드립니다

by한겨레

용어정리집 ‘사람 잡는 글쓰기’ 눈길

이통사 대리점·판매점 용어

‘번이’는 이통사 옮기는 번호이동

‘뉴 단말’, 개통한 적 없는 휴대폰

요금 관련 용어들

‘과납대체’, 더 낸 돈은 다음달 반영

‘연체가산금이 인출된다’는 말은

누적 연체료 한꺼번에 인출 뜻

왜 배배 꼬였나

외래어 우리말로 순화 노력 부족

보조금 단속 피하려 은어도 늘어

한겨레

“고객님, 익월 단말 요금은 과납대체 처리됐습니다.” “번이랑 기변 중에 선택하실 수 있는데요, 번이하시면 혜택 더 드려요.”


이 말을 듣고 이해했다면 당신은 ‘통신 천재’다. 대개는 통신요금 청구서를 받고 국외 로밍을 하고 새 휴대전화를 살 때, 외계어 같은 말에 고개만 끄덕이기 십상이다. 통신업계 은어와 한자어, 외래어가 한데 섞여서다. 앞의 두 문장 뜻을 풀면, 다음 달 통신 요금은 지난달 많이 낸 요금으로 대체됐으며 휴대전화 구입 때 번호이동과 기기변경 중 선택할 수 있고 번호이동을 하면 혜택을 더 준다는 뜻이다. 우리말로 풀면 한결 쉽다. 마침 에스케이텔레콤(SKT)이 우리말 정리집 <사람 잡는 글쓰기>를 지난달 펴냈다. 소비자들이 헷갈릴 만한 통신용어를 이 책이 정리했다.

이것만 알아도 ‘호갱’ 안 된다

소비자들이 낯선 통신용어를 처음 접하는 곳은 이동통신사 대리점과 판매점이다. ‘단말기(스마트폰)’며 ‘출고가(출시 가격)’ 같은 한자어가 빈번히 쓰인다. 통신사가 각종 요금 할인 혜택을 적용하기 전 제품 단독 가격을 표시하려고 만든 개념이다. ‘번이’는 쓰던 이동통신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번호이동’, ‘기변’은 쓰던 통신사를 그대로 두고 스마트폰만 변경하는 ‘기기변경’의 줄임말이다. 기기변경을 할 때 쓰이는 ‘뉴 단말’은 ‘개통한 적 없는 휴대전화’이고, ‘오엠디(OMD) 단말’은 ‘이동통신사를 통하지 않고 구매한 기기’라고 보면 된다. 피피에스(PPS)는 선불폰, 피유케이(PUK) 번호는 휴대전화 유심 잠금 해제코드를 일컫는다.


이제 요금안내서를 펼쳐 요금 내는 법과 시기를 알아보자. ‘당월’은 이번 달, ‘익월’은 다음 달이고 ‘납기일’은 요금 납부일이다. ‘일할계산’은 사용한 날수에 따라, ‘병행과금’은 사용량에 따른 요금 계산법이다. ‘과납대체’는 이전 달에 내야 할 돈보다 요금을 많이 냈을 때 다음 달 요금청구액으로 대체한다는 말이다. 통신사 요금제는 월정액제가 기본이지만 다음 달 시작 전에 가입하면 사용한 날수와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계산할 수 있다. ‘연체가산금이 인출된다’는 말은 쌓여 있던 연체료가 한꺼번에 통장에서 빠져나간다는 말이다. ‘요금이 미부과된다’는 말은 돈을 내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요금이 청구되지 않았다’, 즉 무료라는 뜻이다.

한겨레

요금제 특징을 보여주는 용어들


통신사 요금제 홍보문구도 뜯어보자. 최근 나온 요금제는 ‘속도 제어’라는 개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이 요금제는 한 달에 100기가바이트 데이터를 제공하며 소진 시 1Mbps로 속도 제어한다’는 식이다. 쉽게 말해 100기가바이트를 다 써도 최대 1Mbps 속도로 데이터를 계속 쓸 수 있다는 뜻이다. 통화료 할인 대상이 되는 ‘망내 통화’는 같은 통신사 내 통화를 뜻하며 데이터 요금 홍보문구에 자주 쓰이는 ‘제로레이팅’은 데이터가 무료라고 이해하면 된다.


‘상·하위 요금제’나 ‘요금제를 상·하향한다’는 말은 요금이 높거나 낮은 요금제로 바꾼다는 뜻이다. 사용하던 요금제를 중도에 해지할 때 물어내곤 하는 ‘핫빌요금’은 ‘아직 내지 않은 요금의 총합’을 일컫는다.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서비스 해지를 요구했더니 핫빌요금이라는 명목으로 수십만원을 내라고 했다”는 경우가 많은데 위약금·할부금·통신요금 등 소비자가 계약을 종료할 때 내는 돈을 전부 합한 것이다.


공항에서 자주 보이는 ‘인바운드(I/B) 렌탈서비스’는 국내 단기체류자나 여행객들에게 국내용 휴대폰이나 유심을 대여해 주는 서비스다. 오티에이(OTA) 개통은 스마트폰을 개통할 때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만으로 유심 정보를 받는 행위를 일컫는다. 국외로 나갈 때 안내받는 ‘음영지역(NPR)’은 통화 연결이 안 되는 곳이다.

VoLTE요? VoIp요?

음성통화 종류는 늘 헷갈린다. 스마트폰의 녹색 전화통화 버튼을 자세히 보면 ‘브이오엘티이’(VoLTE)라고 적혀있다. 반면 ‘070’ 번호를 쓰는 사무실 전화엔 ‘브이오아이피’(VoIp)라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다. 브이오엘티이는 엘티이망을 이용한 무선 인터넷 전화, 브이오아이피는 유선 인터넷 전화다. 브이오엘티이는 에이치디 보이스(HD Voice), 에이치디 오디오(HD Audio) 등 통신사마다 서로 다른 서비스명으로 불린다. 엠브이오아이피(mVoIp)라는 말도 있는데 카카오 보이스톡이나 스카이프 등을 통한 인터넷 전화를 일컫는다.

통신용어가 다른 업계용어보다도 특히 어렵고 난해한 건 왜일까?

통신업계 마케팅 분야에 20년 몸담은 한 관계자는 “외래어인 정보통신(IT) 기술 용어를 들여오면서 우리말로 순화하려는 노력을 덜 했고 외래어를 써야만 더 전문적인 사람처럼 보인다고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또 “업계 용어를 유통매장에 그대로 전달하니 직원들도 고객에게 그렇게 안내하더라. 불법 보조금 단속을 피하려다 보니 보조금 관련 은어도 많아졌다”고도 덧붙였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9개월간 3만장 읽으며 더 좋은 말 고민했어요”


용어집 펴낸 SKT 민혜진·이민정씨

“한때 ‘맞춤법충’ 얘기도 들었지만

이젠 사내외서 고맙다고해 뿌듯”

한겨레

9개월간 3만장이 넘는 종이를 읽었다. 홈페이지와 요금안내서, 고객센터 안내문구에 쓰이는 통신용어 300여개를 쉬운 단어로 바꿨다. ‘난쟁이’, ‘살색’ 등 광고에 쓰이던 소수자 차별 표현을 없앴다. 바뀐 사례를 모아보니 163페이지짜리 책 한 권이 뚝딱 만들어졌다. 에스케이텔레콤(SKT)의 언어표현 관리조직 ‘커뮤니케이션디자인팀’ 얘기다.


“고정관념이 담긴 표현이 아닐까, 더 읽기 쉽게 쓸 수는 없을까 매일 고민해요. 팀원 7명이 단어 하나를 하루 종일 붙잡고 있을 때도 있다니까요.” 8일 서울 중구 에스케이텔레콤 본사에서 <한겨레>와 만난 민혜진 팀장과 이민정 매니저는 팀 업무를 이렇게 소개했다.


지난해 3월 ‘고객언어연구소’로 설립된 커뮤니케이션디자인팀은 1년간 한시 운영될 계획이었지만 7개월 만인 그해 10월 정규 조직이 됐다. 웹사이트·홍보영상·캠페인 등 에스케이텔레콤이 소비자에게 전하는 모든 문구를 사전 검토하고 더 나은 표현을 고안한다. 커뮤니케이션디자인팀원 7명 가운데 6명은 방송작가와 카피라이터 출신이다.


가장 어려운 과제는 대안 찾기였다. “기존에 쓰던 말이 어려운 건 알겠는데 어떤 말로 바꿀지는 모르겠더라고요. 고친 단어가 너무 길거나 어색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고요. 보고서를 찾아 읽고 전문가 자문을 받아가면서 겨우 고쳤죠.” 이 매니저의 말이다.


어려운 통신용어는 국립국어원에 대체어 목록을 가져가 자문을 받았고 간단한 내용은 카카오톡 플러스친구에 추가된 ‘우리말365’에 물어보거나 국립국어원 ‘다듬은 말’ 서비스를 썼다. 인권과 관련된 주제를 다룰 땐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를 읽으며 공부했다. 두 단어 가운데 어떤 걸 선택할지 애매할 땐 소비자들에게 선호도 조사를 받기도 했다.


관성대로 일하려는 다른 팀과 부딪힐 때도 있었다. “외래어표기법상 렌탈이 아니라 렌털”이라고 바로잡으면 “그냥 씁시다”라고 대꾸했고 “럭키 찬스가 아니라 행운의 선물”이라 하면 “영어가 더 세련된 느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내 일부 직원들이 저희 팀을 ‘맞춤법충’, ‘띄어쓰기충’이라 불렀더라고요. 대안을 제시하면 ‘너희 팀이 한글 사랑하는 건 알겠는데’ 이런 조롱 섞인 답도 듣고요. 기분이 상할 때도 있지만 우리가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돼요.” 민 팀장은 “이미 사회는 소수자 비하 표현을 찾고 걸러내면서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노력을 알아주는 이들도 있다. 대체어를 알려주면 “바뀐 단어가 훨씬 좋다”는 쪽지와 메일이 날아오고 사내 감사편지제도를 통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실무자인 이 매니저는 많아야 1년에 3∼4건 받는 사내 감사편지를 하루에 3건씩 받는 일도 있다고 한다. 다른 통신사가 “좋은 일 해 줘서 고맙다”며 순화어 목록을 달라고 부탁하거나 인사팀이 교육 영상을 참고자료로 가져가기도 했다.


커뮤니케이션디자인팀의 목표는 에스케이텔레콤만의 ‘쓰기 쉬운 언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요즘 아이티 기업들이 독특한 서체로 개성을 알리잖아요. 에스케이텔레콤도 우리만의 차별화된 표현을 만들어 알리고 싶어요. 소비자들이 쉬운 통신용어를 보면 에스케이텔레콤이 만든 말이구나, 하고 떠올릴 수 있게요.” 민 팀장이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