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금 한번 밀린 적 없는데”…인천 일가족 유서엔 ‘생활고’ 토로

[트렌드]by 한겨레

일가족 3명 등 4명 숨진 채 발견


40대 어머니 유서엔 ‘생활고’ 토로


이웃들 “이상 징후 없었는데” 의외

한겨레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등 4명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현장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유서가 발견된 점 등을 고려해 이들의 극단적 선택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른바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이 정비돼 왔지만, 여전히 생활고로 인한 극단적 선택을 막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인천 계양경찰서과 계양구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전날 낮 12시39분께 인천시 계양구 한 아파트에서 ㄱ(49·여)씨와 그의 자녀 2명 등 모두 4명이 숨져 있는 것을 소방대원이 발견했다. 소방당국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왔는데 집 내부에 인기척이 없다’는 ㄱ씨 지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이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발견 당시 ㄱ씨와 딸(20), 딸의 친구(19·여)는 거실에서, ㄱ씨의 아들(24)은 작은 방에서 각각 숨져 있었다. ㄱ씨 딸의 친구는 몇 달 전부터 ㄱ씨 집에서 함께 생활한 것으로 파악됐다. 방안에는 저마다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 4장도 발견됐다. ㄱ씨의 유서에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건강이 좋지 않다는 심정을 토로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ㄱ씨는 수년 전 남편과 이혼한 뒤 자녀 둘과 함께 생활하다가 지난해 9월 다니던 직장을 잃으면서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ㄱ씨는 실직 뒤 계양구에 주거급여를 신청해 같은해 11월부터 급여 대상자로 선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계양구 관계자는 “ㄱ씨는 기초생활수급대상은 아니지만, 저소득 한부모 가정으로 임대 아파트 임대료를 지원받는 주거급여 대상자로 선정됐다”며 “지금까지 변동 없이 주거급여는 지급됐다”고 설명했다. ㄱ씨 자녀는 직업이 없거나 대학을 휴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ㄱ씨의 이웃들은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할 만한 이상 징후가 없었다며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이날 이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은 “이틀 전에 음식물쓰레기를 버리고, 딸 둘과 함께 평소처럼 외출하는 ㄱ씨의 모습을 봤다”며 “비보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숨진 딸의 친구가 모녀와 항상 붙어 다녀 ㄱ씨의 딸로 착각할 정도로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ㄱ씨가 공과금을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어 생활고를 겪고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복도식 구조의 ㄱ씨의 집 앞에는 배달시킨 택배 박스 4~5개가 쌓여 있었다. ㄱ씨와 같은 층에 사는 한 50대 남성은 “ㄱ씨 집에 강아지가 없었는데, 최근 강아지를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다. 복도에 애견 물품도 쌓여 있었다”며 “새 생명을 키울 마음을 가졌는데 왜 그런 선택을…”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ㄱ씨 등 4명의 주검 부검과 함께 필적 감정을 의뢰했다. 경찰 관계자는 “외부 침입흔적이 없고, 타살 흔적도 없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도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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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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