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보니 하니’ 폭행 논란…어린 여성 연예인을 지켜라, 지금 당장!

[연예]by 한겨레

[황진미의 TV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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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 <생방송 톡!톡! 보니 하니>가 제작 중단에 들어갔다. 얼마 전 4천회를 돌파한 <보니 하니>는 평일 저녁 6시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어린이 버라이어티쇼다. 전화 연결 등 시청자들과 소통이 많다 보니 청소년 주 진행자 ‘보니’와 ‘하니’는 ‘초통령’으로 불릴 만큼 인기가 높다.


이 프로그램이 성인들 사이에서도 회자되기 시작한 건 4년 전 이수민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논란이 되면서부터다. 이수민의 용모와 순발력 있는 진행을 담은 토막 영상이 ‘일베’ 등 남초 사이트에 확산하면서, 이수민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성희롱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갈수록 어린 여성 연예인을 소비하려는 욕망을 지적하며 ‘하이틴 걸그룹도 모자라 이제는 14살의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를 성희롱하느냐’는 탄식이 일었지만, 이수민이 시에프를 찍는 등 스타로 급부상하면서 해프닝처럼 끝났다. 여성 청소년을 보호하지 않고 소비하려는 우리 사회의 음험한 욕망을 ‘일베’만의 것인 양 미봉하고 지나간 셈이다.


이수민의 후임을 뽑는 오디션에는 천명의 경쟁자가 몰렸다. 결국 걸그룹 에이프릴의 이진솔이 뽑혔고, 2019년부터 ‘하니’ 자리는 ‘가장 어린 걸그룹’임을 표방하는 버스터즈의 김채연이 맡고 있다. 요컨대 이제 ‘하니’는 소박한 어린이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아니라 어린 연예인들이 선망하는 자리이자, 온갖 불합리함을 감내해야 하는 ‘소녀 아이돌의 최전선’이 되었다.


마침내 일이 터졌다. 교육방송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정규방송에 나오지 않는 ‘비하인드’ 장면들을 라이브로 송출하면서 15살의 여성 진행자가 그동안 어떤 환경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35살 최영수가 김채연에게 급격하게 팔을 휘두르는 장면이 찍혔다. 타격 장면은 가려졌지만, 이런 위협적인 동작을 취한 것 자체가 폭력이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38살 박동근이 김채연에게 한 욕설이다. 박동근은 재차 묻는 김채연에게 구강청결제와 ‘독한 년’이 중의적으로 들리는 욕설을 반복했다.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제작진은 폭력은 없었으며 친근한 사이의 장난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구강청결제가 유사성매매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에 대해선 김채연이 대기실에서 구강청결제를 사용한 것을 놀리려던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가글’이 놀림감이 되진 않는다. 놀림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맥락과 이를 공유하는 소집단이 있어야 한다. 가령 구강청결제 냄새가 여성의 품행을 헐뜯는 용도로 쓰일 만한 맥락과 그런 킬킬거림을 공유하는 ‘단톡방’ 등 말이다. 박동근이 김채연에게 ‘소-독한 년’ 운운하는 장면은 남자들끼리 공유하는 성적 농담을 어린 여성에게 던지고는, 못 알아들으면 ‘둔하다’며 계속 놀리고, 알아들으면 ‘까졌다’고 비난하는 이중 구속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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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 자리에서 김채연이 어색하게 웃으며 참지 않고 정색하며 항의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익숙한 ‘태도 논란’에 휩싸이며, ‘분란을 일으킨’ 김채연만 하차하지 않았을까. 그런 업계 생리를 잘 아는 탓인지, 소속사도 김채연을 보호하기보다 폭행은 없었다는 입장을 취했다. 사건이 무마되어 김채연이 계속 출연하길 원하기 때문이리라. 시청자들이 항의했으니 망정이지 어떤 문제가 있었어도 내부에선 제기하기가 불가능한 구조임이 분명한 상황이다.


최영수는 13년 동안 고정출연 했던 자신이 ‘마녀사냥’으로 퇴출당하는 것이 억울하다며 인터뷰했다. 길어야 2년인 ‘하니’와 달리 13년 동안 고정출연 했다니, 무명의 개그맨처럼 보이는 세간의 시각과 달리 촬영장에서는 권력자처럼 보였을 수도 있을 터이다. 그의 장수 출연이 ‘뚝딱이 아빠’, ‘깔깔 마녀’, ‘종이접기 선생님’처럼 교육적인 직업의식의 소산이었다면, 청소년 출연자에게 어떤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그토록 무지할 수 있었을까.


무지한 것은 출연자뿐이 아니다. 청소년과 성인이 함께 촬영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촬영 과정에서 성인이 청소년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젠더적인 관점까지 포함하여 만든 면밀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 영화 <우리들>과 <우리집>을 찍으며, 어린이 배우들과 작업해온 윤가은 감독은 성인이 어린이 배우를 어떻게 접촉하고 칭찬해야 되는지를 담은 촬영장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그동안 수많은 어린이 콘텐츠를 만들어온 교육방송이라면, ‘펭수’ 등에 쏠린 인기에 편승하기보다 이런 내규를 만들고 유포하며 전 직원과 출연자들이 숙지하도록 교육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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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중 교육방송 사장은 사과와 더불어 제작진을 교체하고 책임자를 보직 해임했다. 유튜브 영상이라 제재가 불가능하다던 방송통신위원회도 교육방송에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며칠 만에 이런 태세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 및 보호 조치다. 이대로 프로그램이 제작 중단된다면, 김채연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일을 잃는 이중의 피해를 겪게 된다. 또한 최영수의 인터뷰에서 보듯, 지금의 사태가 자신 때문이라며 자책할 수도 있다. 피해자가 올바르게 상황을 인식하고 자신을 치유할 수 있도록 상담과 보호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경력에 부당한 손실이 가해져선 안 된다. 부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어린 여성 연예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길 바란다. 더 이상 잃을 수 없다. 더 이상 애도할 수 없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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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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