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서커스’ 첫 한국인 홍연진 “벌써 11년차…한국서도 수중 공연 선보이고파”

[컬처]by 한겨레

2020년 세계를 빛내는 문화인


7살 때부터 시작했던 특기 살려


‘물에서 하는 공연’ 찾아 미국행


21년 역사 지닌 ‘오’쇼 배우로


“역할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연 환경


철저한 매뉴얼이 최고 무대 만들어


한국서도 수중 공연 선보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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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봉준호…. 2019년 많은 문화인이 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렸다. 이들처럼 화려한 조명을 받지는 않았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새 역사를 써 내려가는 문화인들이 있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공연단체 ‘태양의 서커스’ 단원이 된 홍연진(35)도 그중 한명이다. 2009년 5월 입단해 11년째 활동하고 있다. 태양의 서커스는 입단도 어렵지만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 살아남는 게 더 힘든 곳이다. 그가 길을 연 이후, 최근 한국인 단원이 4명 더 늘었다. 공연인들의 꿈의 무대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그를 최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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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가 확실하게 세분화되어 있는 것이 놀라웠어요.” 2009년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간 지 어느덧 10년. 직접 경험한 ‘태양의 서커스’가 35년(1984년 창설)간 건재한 비결을 물으니 그는 이 이야기부터 꺼냈다. 주먹구구식이 많은 한국 공연계와 달리 업무부터 무대까지 철저히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시스템부터 달랐다는 것이다. “공연 뒤 의상을 빨래방에 넣어두면 다음날 깨끗하게 세탁돼 각자의 자리에 놓이는 것부터 시작해, 공연 중 돌발상황에 대비한 세부 매뉴얼까지 있어요. 물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리프트가 갑자기 멈출 경우, 배우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라이브 연주자들은 어떤 곡을 연주해야 하는지까지. 각자 주어진 역할만 다해도 되는 환경이 최고의 공연을 만드는 것 같아요.” 그가 출연하는 <오>(O)쇼의 아티스트는 모두 117(77명+백업 멤버 40명)인데, 이들을 돌보는 스태프만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모두 주 40시간 일한다.


태양의 서커스는 서커스에 서사를 접목해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평가받는다. 상설 공연과 투어 공연으로 나눠 다채로운 작품을 빚어내는 것도 많은 이들이 호평하는 지점이다. 2020년 1월1월 기준으로 누리집에 소개된 공연만 총 25개, 투어 공연은 13개다. 한국에도 온 적 있는 <퀴담>이나 <쿠자>는 투어만 하는 공연이다. ‘태양의 서커스’의 백미는 라스베이거스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상설 공연이다. <카> <러브> 등 8개. 그중 홍연진이 출연하는 물에서 하는 <오>는 <미스테어> 다음으로 오래된 공연으로 21년 역사를 자랑한다. 150만갤런의 풀과 공중 곡예 등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로, 창의적이기로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 안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공연이다. 표값이 가장 비싼데도 매 공연 1800석이 꽉 찬다. 홍연진은 “관객 요청으로 올해부터는 주 5회에서 7회로 늘렸고, 그래서 백업 멤버도 40명 선발했다”고 말했다. <오>에서 홍연진은 싱크로나이즈드를 담당한다. 태양의 서커스 공연은 체조, 마임 등 각자의 확실한 장기를 갖고 그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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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 무대에 서 있어도 배우마다 손짓, 몸짓 등 표현하는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홍연진은 “아티스트의 예술성을 끄집어내는 데 많은 공을 들이는 훈련 과정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태양의 서커스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3~4개월간 훈련을 받고, 이후 최종 시험에 통과해야 정식 단원이 될 수 있다. “트레이닝 기간부터 아티스트가 되는 과정”이었다. 동작을 외우고 기술을 습득하는 차원이 아니라, 상상력을 몸으로 표현하는 창의력 훈련을 거듭한다. “물 한가운데에서 뱅글뱅글 돌면서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모습을 몸으로 표현하거나, 물속에서 발가락만으로 자신의 성격을 표현해보기도 해요.”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그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만 받던 내가 창의적인 표현을 해야 하는 것부터가 힘들었다”며 웃었다.


하지만 탄탄한 기본기와 악바리 근성으로 훈련 한달여 만에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공연에 투입됐다. 유연성과 기술, 체력, 힘 등 여러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때론 같은 역할을 반복하는 게 힘들 때도 있지만, 최초의 한국인 멤버로서 자긍심을 갖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태양의 서커스 단원들은 입단하더라도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기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데, 나이 등과 상관없이 실력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어 22년째 활동하는 아티스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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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개척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용기’다. 7살 때 싱크로나이즈드를 시작해,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도 출전했던 그는 은퇴 뒤 미래를 고민하다가 “라스베이거스엔 물에서 하는 공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디션 영상을 만든 뒤 무작정 지원했다. “영어도 못했고, 미국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는데, “오직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트레이닝 기간에는 통역이 있었지만, 입단 뒤에는 손짓 발짓으로 대화하면서 연습을 했다. 매일 물 속에서 살며 남들보다 두배로 훈련했다. 그가 길을 잘 닦은 덕분인지 태양의 서커스 안에서도 한국인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한국인 지원자도 늘었다. 최근 한국인 멤버 4명이 더 들어왔다. 이솔잎이 <오> 백업 멤버로, 이문행과 김현수가 <마이클 잭슨 원>에 합류했다. 전직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박소연도 새 투어 공연 <악셀> 단원이 됐다.


그는 “태양의 서커스에 도전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진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다. 수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이 태양의 서커스에서 공연을 하고 있을 줄은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인생은 그래서 재미있는 것 같다는 그는 또 다른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오>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아도 물에서 하는 공연을 한국에서도 선보이고 싶다”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서커스에 대한 한국의 안 좋은 시선을 깨는 것”도 목표다. “서커스가 정말 멋진 공연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그는 그 날을 기다리며 라스베이거스 무대를 누비고 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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