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걸레 옆 쌀 씻는 설움 “청소만 한다고 인격도 없나요”

[이슈]by 한겨레

[2020 노동자의 밥상] ④부산지하철 청소노동자


회사가 주는 월식대 ‘1000원’


“누가 우리 먹고 쉬는 데 관심 있겠어”


2시간 쓸고 닦고 새 아침 열지만…


밤새 토하고 더럽혀진 역사 청소 뒤


아침밥 당번이 두 끼 때울 밥 지어


휴게실에 싱크대 없어 화장실로


한끼 밥값 19원짜리 비정규직의 삶


월급명세서엔 명목뿐인 식대 항목


역무실 탕비실은 정규직 직원들용


“우린 그 사람들 출근 전에 청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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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코앞에 둔 차귀순(가명·58)의 마음은 흔들릴 일이 많지 않다. 새벽마다 지하철역에 사람들이 토해놓은 온갖 흔적을 닦아낼 때에도 그는 담담하다. 정규직에겐 “비누, 치약, 세탁기” 다 주면서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에겐 청소 용품조차 제때 주지 않는 회사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내가 갈 데가 또 어디 있나’ 생각하면서 버틴다.


그런 차귀순의 마음도 한없이 움츠러들 때가 있다. 지하철역에 몰려드는 출근 인파를 뚫고 화장실에 쌀을 씻으러 가는 순간이다. 청소노동자들의 아침밥을 지으려 화장실에서 쌀을 박박 씻고 있자면, 볼일을 보고 나온 출근객이 흘끔거릴 때도 있다. 그럴 때 차귀순은 손에 쥔 분홍색 바가지가 면구스러워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걸레 빠는 데서 쌀을 씻으니 영 비참한 기분이 들죠. 사람들 출근하는데 분홍 물바가지 들고 가는 게 좀 이상해 보이잖아요.” 지난 12월17일 부산지하철 1호선 ㄱ역에서 만난 차귀순이 복잡한 마음을 내비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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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의 발밑을 닦고, 화장실에서 쌀을 씻고


부산지하철 청소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인 차귀순이 출근해서 아침밥을 짓는 이유가 있다. 차귀순은 열차 시간표처럼 정확한 삶을 산다. 일주일에 쉬는 날 하루를 빼면, 날마다 새벽 4시30분 잠에서 깬다. 플라스틱 반찬통에 ‘언니들’과 함께 먹을 찬을 챙겨 새벽 5시15분 지하철 첫차를 탄다. 일터인 ㄱ역에 도착하면, 오전 6시다. 역사 플랫폼과 화장실에는 지난밤 마지막까지 이 공간을 이용한 사람들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어떻게 그럴까 싶을 정도로 날마다 ‘사고’가 난다고 차귀순은 말했다.


차귀순을 비롯한 3명의 오전반 청소노동자들은 그 흔적을 물로 씻고 쓰레기봉투에 담는다. 오전 7시가 되면 역사 전체를 돌며 비질과 물걸레질을 한다. ‘순회 비질’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버리고 묻히고 토해놓은 흔적을 줍고 쓸고 닦아서, 지난밤과 오늘 아침 사이의 경계를 지운다. 2시간 넘도록 승객들의 구둣발을 피해가며 새 아침을 열어두고 나면, 오전반원 중 당번 한 사람이 아침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아침 식사라고 해봐야 준비하는 것은 밥 짓는 일뿐이다. ㄱ역 지하 1층에 있는 청소노동자 휴게실에는 가스레인지가 없으므로 조리할 일이 없다. 쌀을 씻을 싱크대도 없다. 청소노동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산 전기밥솥이 유일한 세간이다. 매일 아침밥 당번을 맡은 노동자가 쌀바가지를 들고 출근객들을 역류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날 밥 당번을 맡은 차귀순도 자루걸레를 빠는 화장실 개수대 앞에 섰다. 개수대 왼쪽에는 파란 자루걸레 두 개가 넘어질 듯 서 있고, 수도꼭지 위엔 때가 낀 빨래판이 위태롭게 걸쳐져 있었다. 차귀순은 빨래판에서 찌든 먼지라도 떨어지지는 않는지 살피며, 바가지를 비껴 조심스럽게 쌀을 씻었다. 오늘 하루, 그를 포함한 다섯 사람이 아침과 점심 두 끼를 때울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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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밥값 19원짜리 삶


차귀순과 그의 동료들은 주 6일, 하루 두 끼를 지하철 역사 내 휴게실에서 먹는다. 어두컴컴한 휴게실에 밥상을 펴고, 각자 준비해온 반찬통을 꺼낸다. 차귀순과 ‘언니들’이 각자 담아온 총각김치, 김치, 무생채, 멸치볶음이 전부다. 사 쪽은 수저 하나도 사준 것이 없다. 반찬통을 꺼내다 차귀순의 동료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하나 사주는 게 없으니까, 수저도 다 집에서 가져왔지. 광택 내는 세제나 부품비도 청구하는 대로 안 사주고….” 직원들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무관심한 회사 대신 서로가 서로를 보듬으며 산다. 작년 설날에는 집에서 떡국을 싸와 나눠 먹었다. 서로의 생일에는 보온병에 미역국을 담아와 나눠 먹기도 한다. 원청인 부산교통공사도, 용역업체도, 이들의 두 끼에 별로 보태주는 것이 없다. 용역업체는 식대를 월 1000원 지급한다. 지난 12월, 차귀순은 26일 동안 일했다. 쉰두 끼에 1000원이니, 한 끼 식대는 19원꼴이다. ​ 회사가 주면 주는 대로, 안 주면 안 주는 대로 살던 시절도 있었다. 밥값은 없다니까 원래 그런 건 줄 알았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우리도 식대라는 걸 좀 받아보자”며 싸우니 ‘식대’가 생겼다. 애초 용역업체는 “부산교통공사가 식대 항목으로 주는 예산이 없다”고 버텼다. 노조는 “일단 식대 항목을 만들어놓고, 공사를 상대로 싸우자”고 제안했고, 용역업체는 못 이긴 척 2018년 6월 급여부터 ‘식대’ 항목을 배정했다. ‘일단 만들어둔’ 명목일 뿐이니 월 1000원에 그쳤다. 부산지하철 용역업체 11곳 가운데 7곳은 1만원 이상 식대를 편성하고 있지만, 차귀순이 계약한 업체를 비롯한 4곳은 아직 월 1000원을 고집하고 있다. 부산교통공사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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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정규직과 용역업체 비정규직 사이에 급여가 갈리는 것은 차귀순도 이해할 수 있다. 하는 일이 다른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밥을 갖고 차별할 때 마음속에 울컥, 서운함이 치미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차귀순들에겐 밥 해먹을 공간도 없지만, 정규직 직원들의 역무실엔 차를 타 마시는 탕비실이 있다. 탕비실의 싱크대를 청소하는 것은 정작 차귀순이다. 교통공사 직원들의 근무시간에 청소노동자들은 탕비실을 오갈 수 없다.


차귀순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재빨리 손을 놀려 역무실을 청소하고, 가능하면 정규직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밖으로 나온다. “근무시간에 관리하러 가면 시말서를 써라 사유서를 써라…. 우리 같은 비정규직들이야 땅으로 처박히지만 않으면 뭐…. 우리 먹고 쉬는 것에 누가 관심이나 있나.” 쌀바가지를 들고 사람들 사이를 걸을 때, 살금살금 들어가 남의 차 마신 흔적을 닦을 때, 이제는 굳은살이 박인 차귀순의 마음에도 생채기가 난다.


한 달 6만원을 받으며 봉제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뒤, 31년 동안 ‘주는 대로’ 받아왔던 차귀순이 “직접고용을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우린 임금은 그렇게 원하지도 않아요. 정규직 기술 가진 사람들에게 맞출 수는 없지. 복지만, 환경만 좀 개선해줬으면 좋겠어요.” 하루 2만보 넘게 걸으며 지하철 역사를 쓸고 닦아 최저임금을 받고 있지만 그와 동료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밥이라도 정당하게 먹으며 일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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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만 하니까 인격도 없는 줄 알아요. ‘청소하는 사람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도 청소하는 사람은 깊이 있게 안 보잖아요.” 화장실 바닥을 자루걸레로 닦아내며 차귀순이 나직이 말했다. 조금 전 닦아낸 바닥은 그새 더럽혀져 있었다. 이날 아침 쌀을 씻어내던 그 개수대에서, 자루걸레를 눌러 빨며 차귀순이 훅,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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