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성차별 만연한 ‘사랑하고 있습니까’…2020년 개봉작 맞습니까

[컬처]by 한겨레

카페 마스터와 알바생의 로맨스물

3년 전 촬영 뒤늦게 개봉했어도

언어폭력·불법촬영…이건 사랑 아냐

한겨레

영화 <사랑하고 있습니까> 스틸컷. 블루필름웍스 제공

오는 25일 개봉하는 영화 <사랑하고 있습니까>는 여러모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많은 영화가 개봉을 미루는 가운데 어렵게 선보이는 신작이라는 점, 최근 <문화방송>(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주목받은 배우 성훈의 주연작이라는 점, 지난해 세상을 떠난 배우 전미선의 유작이라는 점 등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지난 17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게 2020년 개봉작 맞아? 이게 사랑 맞아?’ 2017년 촬영을 마쳤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뒤늦게 개봉한다는 사실을 고려해도 달라질 건 없다. 영화에 만연한 성희롱·성차별과 폭력은 3년 전이 아니라 10년 전이라 해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수준이다.


카페 아르바이트생 소정(김소은)은 영화 시작부터 카페 마스터 승재(성훈)로부터 꾸지람을 듣는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 때문에 지각한 소정에게 승재는 자초지종도 묻지 않고 버럭 소리부터 지른다. 순간 10년 전 드라마 <파스타>가 생각났다. 툭하면 버럭 하는 셰프 현욱(이선균)과 그 밑에서 괴롭힘당하던 유경(공효진)이 결국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당시엔 ‘나쁜 남자가 대세’라는 트렌드를 만들었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갑의 횡포로 얼룩진 드라마라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


<사랑하고 있습니까>는 그보다 더하다. 소정은 연애 한번 제대로 못 해본 ‘모태 솔로’로 나온다. 그런 소정을 두고 주위에선 온갖 성희롱·성차별의 말을 쏟아낸다. 카페에서 함께 일하는 남자 선배는 소정에게 “넌 왜 화장을 안 하냐? 그러니 애인이 없지” “애인이 생기려면 소녀 같으면서도 섹시해야 한다”는 성희롱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승재를 만나러 카페에 자주 오는 안나(김소혜)는 소정에게 “왜 맨날 바지만 입어요? 치마와 하이힐은 편해서 입는 게 아니에요. 예뻐서 입는 거지”라는 성차별적 발언을 한다. 소정은 그런 말을 듣고 주눅 든다.


승재의 행태는 아예 범죄 수준이다. 소정을 “꼴통”이라 부르며 소리 지르는 언어폭력은 다반사다. 그런데도 소정은 승재를 사랑한다. 알고 보면 승재도 소정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 그런데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가관이다. 승재는 다른 남자들로부터 봉변당할 뻔한 소정을 구하고는 “네가 잘못 행동해서 이런 상황이 온 거 아니냐”고 몰아세운다. 술에 잔뜩 취한 승재가 새벽 2시30분에 소정의 집을 찾아가 불쑥 고백하는 장면은 낭만적이긴커녕 섬뜩하다. 승재가 술 취해 잠든 소정의 모습을 몰래 휴대전화로 촬영하고는 나중에 이 사진으로 사랑을 고백한다는 설정에 이르면 이 영화가 로맨스물인지 범죄 스릴러물인지 헛갈릴 지경이다.


지난 몇년 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2016년 벌어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과 각종 불법촬영 범죄들은 여성들이 일상에서 얼마나 공포에 떨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환기했다. 또 2017년 시작된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에 성희롱과 성폭행이 얼마나 만연한지를 일깨우며 자성을 촉구했다. 이런 아픔을 딛고 우리 사회는 점차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나온 <사랑하고 있습니까>는 시대착오적이며 퇴행적이다. 이런 건 사랑이 아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2020.03.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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