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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인디 뮤지션들
홍대앞 떠나 망명했지만…

by한겨레

인디 뮤지션들 홍대앞 떠나 망명했지만

지난달 15일 문래동 스컹크헬에서 열린 ‘문래메탈시티’에서 공연하는 다크미러오브트래지디. 문래메탈시티 제공

성수동·충무로 등 새로운 공간 찾아나섰지만

서울 전체로 번진 젠트리피케이션에 휘청

“인디 음악신의 활력 쇠퇴 이어질 것” 걱정

“번쩍번쩍 휘영청 반짝이는 불빛(불빛)/ 여기가 어디 나는 낯선 도시의 이방인 어색해요(어색해)/ … / 롸일락 꽃향기만 남아 있는데 난 어디로 가는가/ 꽃은 지고 빌딩 숲만 쌓여가는데 난 어디로 가는가.”(크라잉넛 ‘롸일락’)

라이브클럽 롸일락이 문을 닫은 건 올해 3월 말이다. 10월 초에는 2006년부터 10년간 서울 홍대 앞 라이브클럽 거리를 지켜오던 ‘클럽 타’가 문을 닫았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뮤지션들의 근거지를 밀어내는 사이 다른 지역에서는 새로운 무대를 찾아 개업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한 서울 성동구 성수동 지역이 대표적이다. 아예 도심으로 진출한 이들도 있다. 음악공간 자립본부는 3년 전 충무로에 문을 열었고, 역시 도심가인 중구 수표동 세라믹·타일 상가 밀집 지역에 문을 연 라이브클럽·바도 있다. 도봉구 창동에는 4월 말 플랫폼창동61이 열려 인디 뮤지션들이 매주 공연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무너졌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밀려난 이들은 여전히 밀려날 미래가 걱정이다.

홍대의 반대쪽 성수동

지난 4일 꽃잠프로젝트는 성수동 카페 성수에서 ‘취향 회수: 재생목록 훔쳐보기’ 프로젝트 1회 공연을 열었다. ‘계절의 사이’라는 주제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 혼네, 에바 캐시디 등의 음악을 뮤직비디오로 들려주고 사이사이 드라마 '또 오해영' 삽입곡 ‘흩어져’ 등을 불러주었다. 멤버 임거정은 “성수동에도 이런 공간이 생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좋다”고 말했다. 수원에서 온 한 팬은 “꽃잠프로젝트의 공연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취향 회수 프로젝트는 매주 제8극장, 수상한 커튼, 하헌진, 로우엔드프로젝트의 공연을 이어간다.

 

청강문화산업대에서 운영하는 카페 성수는 서울숲 부근의 돼지갈비 골목으로 유명한 곳 옆에 들어서 있다. 카페 성수 옆 주택가에는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인 곳이 많다. 카페 성수가 있는 뚝섬역 인근이 아닌 성수역 부근은 이미 홍대 앞을 방불케 할 만큼 문화복합공간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빅뱅 10주년 기념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에스-팩토리(S-FACTORY)가 대표적이다. 대림창고는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고, 카페 자그마치도 전시회와 일렉트로닉 공연을 진행한다. ‘새로운 문화놀이터’를 내세운 플레이스 사이도 대관 공연을 진행한다. 지하철 2호선에 자리한 뚝섬·성수는 홍대와 25분 거리로 ‘강남권’과 삼각구도를 이룬다.

인적 없는 거리, 밤은 뮤지션의 것

성수동 한라시그마밸리 지하에는 최근 복합문화공간 비앙에트르가 들어섰다. 상품 판매와 함께 바를 운영하고 중간의 넓은 공간을 공연장으로 쓰는 멀티숍이다. 레게 레이블인 ‘동양표준음향’의 오프라인 매장도 들어 있다. 4일 동양표준음향이 주최한 비앙에트르 오픈파티에는 오청달, 스마일리송, 스카챔피온, 슈가석율이 디제잉으로 파티 분위기를 돋우었고 루드페이퍼가 공연을 벌였다.

 

‘밤의 홍대’와 ‘낮의 홍대’가 있듯 밤의 성수동과 낮의 성수동은 다르다. 지하의 다른 영업장은 문을 닫아서 참석자들은 로비에서도 환담을 나누며 파티를 즐겼다. 파티에 참가한 서아무개씨는 “강남의 파티장 분위기”라며 색다른 분위기를 즐거워했다. 동양표준음향의 오정석씨는 “홍대는 명동이 돼버린 지 오래다. 성수동은 보세창고·자동차카센터들 등 건물 외관이 벽돌로 지어진 곳이 많고 성수 뚝도시장이란 재래시장도 있어서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은 3년 전 충무로에 자립본부를 열었다. 자립본부 황경하씨는 “잘 안 나가던 지하공간에 세를 들었지만 도심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정신나간 것처럼 비쌌다”고 말했다. 그래도 장점이 있다. “밤중에는 인적이 없기 때문에 시끄러운 음악을 하더라도 민원이 없다. 그리고 홍대 건물주 같은 ‘졸부’들이 아니어서 월세를 터무니없이 높이는 일은 안 하더라.”

오늘도 조용히 지고 있다

홍대 앞을 벗어났지만 망명자들은 결코 홍대 앞을 잊지 못한다. 성수동에서 ‘취향 회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뮤직앤피플의 백병철씨는 “관객 모집이 힘들다”며 “홍대는 부근에 다양한 먹거리·즐길거리를 한번에 즐길 수 있어서 접근이 편리하다. 그런 플러스알파 요소가 없는 것이 피부에 와닿는다”고 말했다. 황경하씨는 “새로운 공간을 찾았다기보다는 홍대에서 쫓겨난 것”이라고 했다.

 

홍대 앞을 바짝 뒤쫓는 높은 임대료도 망명자들을 힘들게 만든다. 오정석씨는 “성수동에 많이 몰린다지만 생각보다는 월세가 비싸서 놀랐다”고 말했다. 황경하씨는 “자립본부와 몇 개 특이한 바가 들어서자 이미 부동산업자들이 캐치해서 기획부동산을 하고 있더라”고 했다. 플랫폼창동61의 경우도 ‘케이팝 아레나’의 전초기지로 인디 뮤지션 공연장이 마련된 것이라 ‘시한부’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홍대 앞을 대신할 다른 지역 공간 역시 떠오르지 않는 현재의 상황이 인디 음악신의 활력 쇠퇴로 이어지리라는 암울한 진단도 나온다. “새로운 뮤지션이 자생적 흐름을 갖기가 불가능해졌다. 아마 혁신적인 사운드의 인디 뮤지션이 나오는 일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황경하) 자립음악생산조합 뮤지션들은 10월 편집음반 '젠트리피케이션'을 발매했다. 황푸하와 김해원은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는 오늘도 조용히 지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버티며 지고 있다.”(‘우리는 오늘도’) “바다 한가운데 나의 집이 떠내려가네/ 내 전부를 그렇게 잃었어.”(‘불길’)

인디 뮤지션들 홍대앞 떠나 망명했지만

충무로 자립본부에서 지난 4일 열린 ‘유기농 맥주’ 공연. 자립본부 제공

인디 뮤지션들 홍대앞 떠나 망명했지만

지난 4일 성수동 한라시그마밸리에 문을 연 비앙에트로의 오픈 파티.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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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 성수동 카페 성수에서 열린 ‘취향 회수: 재생목록 훔쳐보기’ 프로젝트 1회 공연에서 꽃잠프로젝트가 노래하고 있다. 뮤직앤피플 제공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