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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LP를 갖고 놀거나,
재즈·클래식이 동거하거나

by한겨레

음악평론가 김작가가 ‘강추’하는 이태원·홍대 앞 신개념 음악카페 3곳

LP를 갖고 놀거나, 재즈·클래식이

엘피(LP)바, 음악카페라고 하면 별로 새로울 게 없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의 음악 공간과는 사뭇 다른 곳이 서울 곳곳에서 이름을 얻고 있다. 손님이 음반을 골라 알아서 틀어놓고 즐기는 공간부터 재즈와 클래식이란 섞이기 어려운 장르를 번갈아 틀어주는 하이브리드 공간, 힙합과 R&B 전문 카페까지…. 음악평론가 김작가가 기존의 상상을 뛰어넘는 음악 공간 3곳을 직접 탐방해 그 속살의 매력을 소개한다.

손님이 디제잉하는 색다른 엘피바 음레코드

이태원 이슬람 사원을 끼고 언덕길을 오르면 우사단길이 펼쳐진다. 몇 개의 골목이 가로와 세로로 만나며 상권을 이루는 최근 서울의 핫 플레이스들과는 달리, 우사단길은 한 줄기로 이어진다. 이 길의 끝자락에 기다리고 있는 건 ‘음’이라는 글자가 크게 붙어 있는 낡은 2층 건물이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술과 음식을 주문하는 카운터가 있다. 그리고 엘피와 턴테이블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다.

 

음레코드의 진가가 드러나는 공간은 2층이다. 느슨하게 구분된 방이 두 개 있고 각 방에는 <이종환의 디스크쇼>부터 70년대 디스코, 윤상과 변진섭의 음반들이 두서없이 가득 꽂혀 있다. 각 방에는 턴테이블이 있는데, 트는 사람이 없다. 손님들이 음반을 골라 알아서 틀어놓고 노는 식이다. 턴테이블을 다뤄본 적 없는 이들을 위해 친절하게 조작법도 써 붙여놨다. 기존의 레코드 가게나 엘피바에서는 오직 주인과 디제이만이 만질 수 있는 음반을 아무나 고르고 틀 수 있게 해놓은 거다.

LP를 갖고 놀거나, 재즈·클래식이

지난해 6월 문을 연 음레코드는 잡지 편집장으로 일하는 전우치 대표와 공연기획, 파티플래너, 정육점 직원 등 사연 많은 인생을 산 박인선 실장, 두 남자가 만들었다. 박 실장은 약 3만 장의 엘피를 보유하고 있는 수집가이자 디제이 커뮤니티의 운영자이기도 했다. 엘피로 디제잉을 하는 친구들 중 공간과 경제적 이유로 꿈을 포기하는 친구들을 보고 그들이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어떨까 했다. 그러던 중 전우치 대표와 인연이 닿았고, 일 년에 몇 번 정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나머지는 비어 있는 이 공간을 그런 곳으로 꾸미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모던한 느낌을 생각했지만 결과는 1980년대 건물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 있게 됐다. “완공을 앞두고 불이 났어요. 막 설치한 에어컨이 녹아내리는데 웃음이 나더라고요. 내 인생 왜 이러나 싶었어요.”

 

초기엔 이태원 클럽의 디제이들이 주로 찾아왔다. 디제이들이 자주 오는 곳엔 파티가 따르는 법. 파티에 놀러온 사람들을 통해 입소문이 퍼졌다. 하나는 엘피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다는 것, 또 하나는 야경이 예쁘다는 것. 많이 외진 곳에 있음에도 8개월 만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의 주된 고객층은 20대 중반의 여성들이다. 90%를 차지한다. “커버를 보고 마음에 드는 걸 듣거나, 아니면 추천해달라고 해요. 어떤 장르를 즐기기보다는 엘피를 턴테이블에 올려놓는 행위를 즐거워하더라고요.” 엘피는커녕 시디(CD)조차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지금의 20대에게 엘피로 음악을 듣는 일은 새로운 음악 감상 행위이자 놀이다. 그리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인증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저희가 셀카 잘 나오기로도 유명해요. 연예인 화보 촬영도 15번 진행했을 정도예요.”

 

그들이 추천하는 음레코드의 보석은 3층 루프탑(옥상)이다. 여기선 엘피가 아닌 카세트테이프와 붐 박스로 음악을 튼다. 라디오를 틀어놓을 때도 있다. 영상보다 빨리 디지털화가 진행된 게 음악이건만, 음레코드의 모든 음악적 경험은 아날로그만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는 새롭지만 낯설 수밖에 없다. “1층에서 레코드를 사는 건 처음엔 힘들어하더라고요. 몇 번 와서 음반을 들어보고 자기가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한 장, 두 장씩 사는 거죠. 그러다가 턴테이블도 사고요.” 모든 문화가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때 그 문화는 마니아의 것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확산되는 법이다.

낮엔 클래식, 저녁엔 재즈 트는 헬카페

LP를 갖고 놀거나, 재즈·클래식이

‘카페 음악’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보통은 어쿠스틱기타와 나긋나긋한 보컬이 이끌어가는 부드러운 음악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귀를 거슬리지 않고, 공간의 수동적 배경 음악으로만 존재하는 그런 음악들.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집으로 꼽히는 보광동 ‘헬카페’엔 그런 음악이 없다. 진공관 앰프(증폭기)와 탄노이 스피커(확성기)가 15평 남짓한 공간을 울리는 음악은 낮에는 클래식, 밤에는 재즈다. 그것도 만만치 않다. 클래식은 대편성 곡, 재즈는 ECM(재즈 전문 음반 회사) 레이블의 음반들을 주로 튼다. 때로는 난해한 현대음악이 흐를 때도 있다. <수요미식회>에 나와 평일 낮에도 만석을 이루는데도 타협이 없다.

 

대학로의 학림다방을 좋아했던 권요섭 바리스타는 말한다. “음악을 잘 트는 건 아니에요. 그냥 다 트는 거지.” 하지만 그 ‘다’의 범위가 견고하다. “보통 카페 가면 100곡 중 90곡은 샤방샤방하고 5곡은 <나는 가수다>류 틀잖아요. 나라도 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걸 알아봐주는 손님들도 의외로 많다. 갓 발매된 ECM 음반을 틀었는데 “어? 이게 있네요?”라며 놀라는 식이다.

 

“하루 종일 클래식은 못 듣는다”는 임성은 바리스타는 그래서 가끔 쉼표를 제공한다. 봄에 버스커버스커 대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틀고 직후에 조용필의 ‘꿈’을 잇는 식으로.

하루 종일 힙합과 R&B만 트는 랫 댓

LP를 갖고 놀거나, 재즈·클래식이

음악 술집, 하면 록이나 포크 등의 장르가 떠오르는 사람으로서 최근 홍대 앞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는 흐름은 낯설다. 블랙 뮤직을 전문적으로 트는 펍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그 장르에 대한 편견이라기보다는 관성 때문일 것이다. 술집은 그렇다 치더라도 카페에서도 힙합과 아르앤비(R&B)가 하루 종일 흐른다면? 홍대 앞 극동방송국 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한 ‘랫 댓’이 바로 그렇다. 랫 댓은 ‘비포어 클럽’을 표방하는 카페다. 힙합을 좋아하는 클러버들이 클럽에 가기 전에 쉴 수 있는 곳 말이다.

 

어릴 때부터 클럽에 가고 싶었지만 나이 제한 때문에 가지 못했던 마음이, 김주형 사장이 랫 댓을 여는 계기가 됐다. 위켄드, 크리스 브라운, 디자이너, 갈란트 등 자기 색깔을 가진 요즘 음악인들의 곡을 주로 튼다. 낮 12시 문을 열기 전 유튜브에서 최신 힙합 플레이 리스트를 점검한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비교적 한가할 것 같은데 낮에도 꽤 손님이 많다. 취재차 방문했을 때도 지도 앱을 켜놓고 랫 댓을 찾아가는 여성 2명과 같은 길을 갔다.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는 힙합 팬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가진 거친 형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범한 분들이 많아요.” 힙합이란 음악이 젊은층 사이에서는 더 이상 특정한 계층에서 소비되는 게 아니라 보편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글·사진 김작가 음악평론가, 사진 조진섭 기자 bromide.js@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