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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독립·민주의 염원이 물든
진달래 능선을 걷다

by한겨레

국립4·19민주묘지와 애국선열 묘역 잇는 걷기…초대길과 순례길, 진달래 능선 연결하는 사색의 길

독립·민주의 염원이 물든 진달래 능선

근현대사기념관 옆 독립민주기념비. 시민 626명의 성금과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김서경 부부 작가의 재능기부로 지난해 8월15일 건립됐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

 

4·19혁명 기념탑에 새겨진 글처럼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스스로 진달래가 된 이들을 만나러 북한산으로 간다.

 

북한산 진달래 능선에 기댄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 지난 7일 ‘민주성지’라고 새겨진 돌탑을 지나 들어선 묘역의 중심에는 4·19 혁명 기념탑이 있고, 이 기념탑을 품은 비탈은 진달래가 선홍빛 꽃을 피우고 있었다.

독립·민주의 염원이 물든 진달래 능선

4·19 민주묘지

국립4·19민주묘지 조성까지 30년 넘게 걸려

젊은 연인을 그림자로 받아내는 고즈넉한 연못과 기념탑, 기념관, 조형물을 품은 국립4·19민주묘지(4·19묘지)가 오늘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3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1963년 9월20일 준공한 4·19묘지는 불과 3000여평에 지나지 않는 공원묘지였다.

 

지금의 모습은 1995년이 돼서야 완성됐다. 1993년 4월19일 시작된 성역화 사업은 150억원의 예산과 2년의 세월이 걸렸다. 면적은 4만여평으로 대폭 확장됐고 격도 국립묘지로 높아졌다. 제자리를 찾기까지 35년이 걸린 셈이다.

 

4·19 정신을 형상화한 3개의 조형물과 민주주의 발원지임을 상징하는 진입로 앞 조형물 ‘민주의 뿌리’, 100평 규모의 한옥 유영봉안소, 청동 재질의 ‘자유투사’ 상과 높이 9m의 ‘정의의 불꽃’도 이때 새로 조성됐다. 조성 당시 희생자 186위였던 안장자 수는 2017년 4월 현재 397위로 늘었다.

독립·민주의 염원이 물든 진달래 능선

광복군 17위 합동분묘

학생들에게 자유와 민주, 정의를 일러주는 문화해설사의 목소리가 퍼지는 묘역을 나와 산 쪽으로 걷는다. 어떤 이유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진달래 능선에는 4·19묘지와 독립을 위해 헌신한 11분의 독립운동가, 광복군 17위 합동분묘가 있다. 수유동을 감싸고 도는 북한산 둘레길 2구간 이름이 ‘순례길’인 이유다. 그러나 순례길은 묘역 인근까지만 이을 뿐이다. 묘역을 모두 돌아보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4·19묘지를 나와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 방향으로 오른다. 4·19 정신 계승과 기념행사를 알리는 펼침막을 지나고 커피 향이 밴 카페 간판이 즐비한 길이 끝날 즈음, 해맑게 웃는 김구 선생의 흉상이 반긴다.

 

잘 자란 소나무가 호위하고 진달래가 참배하는 ‘독립민주기념비’는 지난해 8월15일 건립됐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 사월혁명 투사들이 소원했던 나라가 대한민국의 미래’임을 알리기 위해 2016년 5월 문을 연 근현대사기념관의 부속물이다. 2층짜리 기념관 건물은 연면적이 30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규모이지만, 이 나라를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민중의 지난한 투쟁사를 오롯이 보여준다.

기념관과 초대길은 근현대사 학습의 길

기념관에서 애국선열의 삶과 꿈을 만나고 ‘초대길’을 찾아나섰다. 정부 수립 이후 기관과 정부부처의 초대 장을 역임한 4분의 묘역과 광복군합동묘역, 유림 선생의 묘역을 모두 돌아보게 연결하는 길이다.

 

초대길을 따라 제헌의회 초대 부의장 신익희 선생과 그의 아들이자 광복군 출신인 신하균 선생, 헤이그에서 유명을 달리한 1세대 검사 이준 열사,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이시영 초대 부통령의 묘역과 광복군 17위 합동분묘, 임시정부 국무위원이자 아나키즘 진영을 대표하는 유림 선생의 묘역에서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근현대사기념관을 내려보는 위치에 묻힌 유림 선생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나키스트였다. 선생은 “아나키스트는 강제권을 앞세운 타율정부를 배격하는 주의”라며 ‘국민이 주인인 자율정부’를 세우려 애썼다. 선생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국민이 주인이다!”를 외치며 끝내 대통령을 파면한 촛불시민들을 만나면 무어라 말할까’ 생각하다 들어선 길은 순례길이다.

 

섶다리를 지나고 물소리를 벗하는 예쁜 길은 앞만 보고 걷는 것은 아깝다. 고개를 들면 진달래와 개나리, 벚꽃, 산수유와 생강나무꽃이고, 고개를 숙이면 별꽃과 제비꽃이 앙증맞게 인사를 건넨다. 자연은 신기하게도 경쟁하는 듯 서로를 배려한다. 키 큰 나무들은 행여 작은 꽃의 햇볕을 가릴까 뒤늦게 잎을 내민다. 작은 놈들은 찬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부지런히 꽃을 피워 겨우내 꿀을 찾지 못했던 꿀벌들을 맞는다.

3·1운동 정신 깃든 봉황각과 소나무 숲길

진달래 마을을 지난 길이 다시 오르막이 될 즈음 만나는 신숙 선생 묘역 안내판 앞에서 순례길을 버리고 산으로 든다. 한국독립당 무장부대인 한국독립군 참모장으로 일제와 싸웠던 신숙 선생은 김구, 김규식 선생과 함께 반탁운동을 벌이며 민족분단 저지 최일선을 담당하기도 했다.

 

신숙 선생의 묘소를 지나 진달래 능선으로 오르는 길에 닿기까지, 제헌국회 의원을 지낸 서상일, 김도연, 김창숙, 양일동 선생의 묘역을 지난다. 길은 잘 다듬어지지는 않아 오히려 산길을 걷는 정취를 느끼게 한다.

 

양일동 선생 묘역을 벗어나면 대동문과 우이동을 잇는 진달래 능선 등산로와 맞닿는다. 오르는 길 내내 진달래가 연신 발길을 붙잡는다. ‘두견화’ 또는 ‘참꽃’이라는 이름도 가진 진달래. 하늘의 신이었던 두우가 인간을 사랑해 세상에 내려와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고 촉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촉은 위나라와의 전쟁에서 지고 복위를 꿈꾸던 두우는 두견새가 되어 밤새워 귀촉 귀촉 울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그 핏자국에 피어난 꽃이 진달래다.

 

진달래 능선에 사월이면 진달래가 만발한다. 그 능선에 묻힌 애국선열들과 두우의 모습이 교차되는 이유는 애국선열들이 꿈꾸던 나라가 되기에 아직 멀었기 때문이 아닐까?

엄홍길과 함께 걸어보자

독립·민주의 염원이 물든 진달래 능선

4호선 수유역에서 마을버스 01번을 타면 국립4·19민주묘지와 근현대사기념관(사진)에 닿는다. 애국선열 묘역을 둘러보고, 둘레길 2구간을 따라 솔밭근린공원 쪽으로 걷다가 만나는 신숙 선생 묘소 안내판을 따르면 애국선열 묘소를 모두 돌아볼 수 있다.

 

강북구는 4·19혁명 57주년 기념행사를 19일까지 국립4·19민주묘지와 강북구 일원에서 연다. 14일에는 4·19 정신을 잇는 ‘대학생 걷기대회’가, 16일에는 419명의 시민들이 산악인 엄홍길씨와 함께 북한산 순례길을 걷는다. 18일에는 고려대 학생들이 ‘4·18 희망나눔 마라톤대회’로 4·19 정신을 잇는다.

 

국립4·19민주묘지에서는 ‘4·19혁명 희생 영령 추모제’로 민주 영령들의 혼을 위로한다. 같은 날 오후 7시에는 ‘4·19혁명 국민문화제 2017 전야제’를 강북구청 사거리에서 연다. 진혼무 공연과 시낭송, 개막식 선언 등 공식 행사 후 전인권밴드, 이승환, 노브레인, 슈퍼키드, 슈가도넛 등 가수들의 록페스티벌이 2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공식 행사는 19일 오전 10시 국립 4·19 민주묘지에서 열린다.

 

문의: 강북구 문화체육과 02-901-6215 www.gangbuk.go.kr

글·사진 윤승일 기자 nagneyoon@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