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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천운영의 심야 식탁

어른의 과일, 무화과

by한국일보

어른의 과일, 무화과

스페인 전통시장의 무화과. 무화과는 어른의 과일이다. 소설가 천운영 제공

초여름 방과 후 교문 앞에는 풋복숭아, 풋사과 같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곤 했다. 아마도 솎아내 버려질 것들이었겠지만 풋것의 이름을 달고서 아이들 주머니를 노리던 것들.

 

봄날의 병아리처럼. 뭘 그런 걸 사 들고 왔느냐 꾸지람도 꽤나 들었더랬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해 못하는 아이들만의 맛이 분명 존재했다. 아삭하고 새곰하고 솜털 돋는 풋과일의 맛.

 

그리고 어른의 과일도 있다. 어릴 적에는 도무지 그 맛을 알 수 없었으나, 어른이 되고 난 후에야 진정한 맛을 알게 되는 과일. 무화과가 그렇다. 내 어머니는 무화과를 무척 좋아했다. 그냥 좋아한 것이 아니라 정말 어여뻐했다. 무화과를 먹을 때 엄마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미술품이라도 바라보는 듯한 감탄의 눈길. 조심스럽게 반을 가른 다음 서서히 갖다 대는 입술의 모양새. 이가 아니라 입술로.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입매가 살며시 올라가고. 호옴. 낮은 탄식 같은 것이 새어 나오고. 어린 나는 알 수 없는 영역의 어느 경지. 나도 그 세계가 궁금했더랬다.

어른의 과일, 무화과

무화과의 농익은 속살. 오독오독 씹히는 건 꽃수술이다. 소설가 천운영 제공

그런데 지금은 무화과가 익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다시 맛본 무화과의 맛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이토록 달고 향기로운 과일이 있었다니. 부드러움과 오독오독 씹히는 꽃수술의 조화라니. 내가 알고 있던 그 무화과가 아니었다. 무화과의 맛을 알게 된 날, 비로소 나는 어른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았더니, 아버지나 어머니의 얼굴이 있더라는 수많은 자식들처럼. 그때 내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면 오래 전 내 어머니의 얼굴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과일은 훔쳐 먹는 과일이다. 거기에 금기까지 붙어 있다면 금상첨화. 하느님이 먹지 못하게 하고, 이브가 훔쳐서, 아담과 함께, 몰래 먹은, 그 과일처럼.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 무화과였을 것이다. 괜한 주장이 아니다. 낙원에서 쫓겨날 때 아담이 부끄러운 곳을 가린 잎이 바로 무화과 잎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무화과는 어른이 되게 만드는 과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브가 한 입 먹고 아담도 한 입 먹고.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게 되고, 부끄러움이 무언지 알 수 있게 되는 과일.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거니까.

 

무화과는 풋것으로는 아무 맛이 없다. 풋복숭아처럼 아삭한 식감으로 먹기도 곤란하고, 풋감처럼 울려먹지도 못한다. 농익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과일이다. 충분히 잘 익은 무화과는 생으로 먹어도 맛있지만, 말려서 먹으면 당도가 높아져 훨씬 더 맛있어진다. 반건시처럼 몰랑몰랑하게 말려서 먹기도 하고, 곶감처럼 완전히 말려서 먹기도 한다. 닭고기에 말린 무화과를 넣고 찜을 하면 기가 막히게 맛있다. 하몽과 무화과 잼은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다른 과일잼으로는 불가능한 맛이다.

 

이제 나는 풋복숭아는 먹지 않는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가 못 따라가서 베어 물 수가 없다. 풋복숭아는 역시 어린이의 과일. 어른인 나는 무화과를 먹어야지. 무화과가 익으려면 아직 멀었다. 무화과를 기다리는 것은 여름이 농익기를 기다리는 것. 작년에 말려둔 무화과를 먹으며 생각해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금기를 넘어선다는 것과,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어른의 과일, 무화과

스페인 한 호숫가의 무화과 나무. 어린 열매가 달렸다. 소설가 천운영 제공

어른의 과일, 무화과

말린 무화과를 먹으며, 무화과 익는 때를 기다린다. 소설가 천운영 제공

소설가 천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