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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B급 이 장면

할리우드는 수산시장을 사랑해

by한국일보

할리우드는 수산시장을 사랑해

영화 ‘블랙팬서’에서 블랙팬서가 부산 자갈치 시장을 질주하는 모습. ‘미꾸라지 민물장어’ 등 수산시장의 한글 간판이 생생하게 담겼다.

자갈치시장에 반한 블랙팬서 감독

싱가포르 마다하고 부산서 촬영

활어 횟집ㆍ수족관 등 생경한 체험

노량진 수산시장ㆍ가락시장에도 

할리우드ㆍ美 TV 잇달아 찾아와

 

‘흑인 영웅’으로 주목받고 있는 채드윅 보스만(영화 ‘블랙팬서’)도, 하버드대 출신 유명 백인 방송인 코넌 오브라이언(TBC ‘코넌쇼’)도 다녀갔다. 인종 구분 없이 문전성시다. 인기 배우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다운사이징’에도 이곳이 나온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앞다퉈 찾는 ‘핫플레이스’. 바로 한국의 수산시장이다.

 

자갈치 시장에 놀란 ‘블랙팬서’ 감독

 

부산 자갈치 시장은 ‘블랙팬서’의 주요 공간이다. 첨단 무기 재료(비브라늄) 밀거래 장소인 카지노가 있는 곳으로, 블랙팬서와 악당 클로(앤디 서키스) 일당과의 격전이 시작되는 장소로 나온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그것도 SF 영화에서 자갈치 시장이라니 왠지 어색하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 마블 스튜디오(마블)의 ‘블랙팬서’ 제작팀은 2016년 1차 촬영 장소 물색 작업을 할 때부터 자갈치 시장에 눈독을 들였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자갈치 시장을 둘러 보며 수족관 등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았다. ‘블랙팬서’의 국내 촬영을 지원한 부산영상위원회의 이승의 영상제작지원팀장은 “쿠글러 감독이 자갈치 시장을 둘러보고 굉장히 역동적이며 장관이었다고 하더라”고 촬영장 섭외에 얽힌 얘기를 전했다.

할리우드는 수산시장을 사랑해

영화 ‘다운사이징’에선 가락시장이 나온다.

‘올드보이’ 산낙지 시식 체험도

 

외국 감독의 눈에는 수산시장의 어떤 모습이 장관으로까지 보였을까. 형형색색의 간판을 달고 늘어선 횟집과 수족관 행렬 그리고 활어를 소비하는 풍경 자체가 특히 영ㆍ미권 외국인의 눈엔 ‘새로운 세계’다. 회를 알더라도 퍼덕이는 물고기를 수조에서 꺼내 바로 잡아 먹는 공간 자체가 낯설기 때문이다.

 

10여 년 동안 한국을 찾은 영ㆍ미권 스타들의 통역을 해 온 강모씨는 “영화 ‘올드보이’를 보고 산 낙지 시식 체험을 위해 수산시장에 간 스타도 있다”고 귀띔했다. 지구촌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비무장지대(DMZ)와 수산시장은 인기 관광코스다. ‘다운사이징’은 가락시장에서, 오브라이언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각각 촬영을 진행했다.

할리우드는 수산시장을 사랑해

TBS 토크쇼 ‘코넌쇼’에서 소개된 노량진 수산 시장의 모습. 진행자인 코넌 오브라이언이 낙지를 들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자갈치 아지매’까지 등장

 

마블은 야경이 일품인 싱가포르 대신 부산을 ‘블랙팬서’ 촬영지로 택했다. 자갈치 시장 촬영에 특히 공을 들였다. 미국 애틀랜타에 ‘자갈치 시장’ 세트까지 지었다. 특수 카메라 12대가 달린 차량으로 자갈치 골목 풍경을 찍어간 뒤 세부 풍경을 더 살리기 위해 세트에서 추가 촬영을 했다. 횟집 간판도 직접 만들어 영상의 색을 살렸다. 영화엔 부산의 풍경이 15분 가량 동안 생생하게 펼쳐진다.

 

카지노 문지기로 나오는 ‘자갈치 아지매’는 ‘블랙팬서’ 자갈치 시장 장면이 지닌 ‘특별 선물’이다. ‘자갈치 아지매’의 극중 이름은 소피아.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 알렉시스 리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아프리카 가상의 나라인 와칸다에서 온 여전사 나키아(루피타 뇽)는 ‘자갈치 아지매’에 “아줌마 얼굴 보니 좋으네요”란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해 구수함을 준다. 마블 영화에서 외국 배우가 한국말을 하기는 처음이다. 뇽은 한국인 친구에게 한국말을 배웠다. 한국어 대사를 친구에게 보낸 뒤 그 친구가 녹음해 보낸 파일을 반복해서 들었다고 한다. 자갈치 시장을 앞세워 국내 관객에게 친숙함을 준 덕분일까. ‘블랙팬서’는 북미 지역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가장 많은 관객(21일 기준 350만명)을 불러 모으며 인기다. 다만, 자갈치 시장 내 카지노 종업원들이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 등은 한국에 대한 시대착오적 시선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