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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부장님, 그렇게 좀 입지 마요"

동시통역사 태인영이
말하는 '수트 잘 입기'

by한국일보

셔츠는 부드럽고 속 비치지 않게, '런닝셔츠 안에 입기'도 이제 그만


배바지는 자칫 엉덩이를 빈약하게, 허리선 낮은 슬림핏이 대세

동시통역사 태인영이 말하는 '수트 잘

흐르듯 감싸 안는, 몸에 잘 맞는 수트는 남성의 가장 섹시한 무기다. LF 제공

옷 잘 입는 남자에 대한 편견이 우리에게는 있다. ‘남자가 우직하게 일을 잘해야지 멋이나 부려서 어디다 쓸 것인가!’라는 공고한 이데올로기가 횡행한 나머지, 실력 있는 남자라면 응당 옷을 못 입어야 한다는 괴상한 결론마저 도출될 기세다. 연령이 많아지고, 직위가 높아질수록 이런 경향이 일반적이어서 패션이 그 자체로 언어인 국제무대에서는 종종 안타까운 장면이 펼쳐지기도 한다. 목이 헐거워 축 늘어진 셔츠, 볼록 나온 배에 기어이 단추를 다 채운 재킷, 한복치마인 양 가슴선까지 끌어올린 배바지…. 수트란 자고로 현대 남성의 갑옷이건만, 도무지 전투태세가 아닌 옷차림들이 난무한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한국을 대표하는 각계각층의 남성들을 만나온 국제회의 동시통역사 태인영(사진)씨는 “옷을 너무 막 입는 경향이 있는” 한국의 나이든 남성들을 보며 한없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국가원수급 정치인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까지, 패션으로 수많은 메시지를 발화하는 외국 남성들과의 사이에 너무 큰 국제격차가 존재했다. 남성패션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해 하나 둘 조언해준 것이 모여 지난 봄 한 권의 책이 됐다. 비전문가의 솜씨답지 않게 감각적인 스타일링이 돋보이는 ‘셔츠 매뉴얼’(안나푸르나 발행)이다. ‘매너가 남자를 만든다’고 할 때, 그 매너는 수트에서 나온다. 국제표준에 입각해 제안하는 태씨의 수트 스타일링을 활용해 올 가을 남자의 품격과 멋을 살려보자.

동시통역사 태인영이 말하는 '수트 잘

(왼쪽 위) 회사 중역들과의 회의나 식사자리에서. 회색 수트에 푸른 넥타이는 신뢰감을 준다. (오른쪽 위) 흰색 셔츠를 활용한 캐주얼한 스타일링. 가벼운 저녁식사 자리에 어울린다. (왼쪽 아래) 하늘색 셔츠는 흰색 셔츠와 달리 색 조합이 까다롭다. 야외 나들이에 적합한 옷차림. (오른쪽 아래) 주말산책이나 외출에 적합한 스타일. 흰 셔츠에 회색 팬츠는 실패하는 법이 없다. 안나푸르나 제공 

셔츠가 남자를 만든다

“외모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한국 남성들에게 실용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관심을 갖고 배워보려고 해도 전문가들의 너무 어려운 조언밖에 없어서 답답하다는 분들이 많아 전문가가 아님에도 용기를 낼 수 있었죠.”

 

태인영씨의 수트 스타일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클래식, 즉 기본이다. 연예인의 몸매를 가진 것도 아니고, 패셔니스타의 탁월한 감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시도했을 때 실패 확률이 가장 적으면서도, 유행을 타지 않아 오래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클래식한 아이템들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는 것이 바로 셔츠. ‘그저 재킷 안에 입는 잘 안 보이는 이너웨어’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감이에요. 당당한 태도와 자세. 이걸 보여주는 게 바로 셔츠죠. 제발 셔츠만은 좋은 걸 사 입으시라고 조언을 많이 해드려요.”

 

셔츠는 여성으로 비유하자면 피부 메이크업과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무리 예쁘고 화려한 색조화장을 해봐야 피부 표현이 지저분하거나 말끔하지 않으면 별무소용인 것처럼, 몸에 제대로 맞지 않는 구겨진 셔츠는 이탈리아 맞춤 수트로도 해결이 어렵다. 남자의 옷 중 원단이 가장 좋아야 하는 것이 그래서 셔츠다. “셔츠는 패션의 기본 뼈대 역을 해요. 피부에 닿는 옷이라 부드러우면서도 입었을 때 편안해야 하죠.” 셔츠 자체가 속옷의 개념으로 고안된 것이므로, 한국남성들의 고질병인 ‘런닝셔츠 안에 입기’와도 이젠 결별해야 한다. 표면은 부드러우면서도 어느 정도 단단하고, 속은 비치지 않는 셔츠를 찾는 것이 제1 임무다. 

동시통역사 태인영이 말하는 '수트 잘

브이존, 남자의 인상을 결정짓다

남자의 인상은 브이존에서 결정된다. 브이존은 얼굴과 칼라, 넥타이의 매듭부분을 일컫는 삼각지대로, 얼굴형과 칼라의 매치, 넥타이 매듭 부분의 형태와 색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순식간에 인상이 결정돼 버린다. 샤프하게 보이기 위한 수트 착용의 목적이 사실상 셔츠 칼라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얼굴형이든 샤프해 보이게 해 주는 포인트 칼라는 깃이 아래로 길고 높이가 높을수록 얼굴이 선명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 둥근 얼굴형에 특히 좋다. 양쪽 깃이 벌어진 각도가 가장 넓은 스프레드 칼라는 화려한 느낌을 주는 칼라로 옷을 센스 있게 입었다는 인상을 준다. 얼굴이 길거나 목이 가는 남성에게 더 잘 어울린다. 칼라 끝에 버튼이 달린 버튼다운 칼라는 스포티하고 캐주얼해 보이는데, 버튼이 반드시 잠겨 있어야 부주의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목둘레에 제대로 맞는 셔츠를 찾는 것은 거의 필사의 사명이다. 목젖을 중심으로 수평으로 목둘레를 잰 후 1인치를 더하면 그게 바로 자신의 사이즈다. 칼라와 목 사이에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가는 정도다. 답답하다고 목둘레를 크게 잡으면 넥타이가 자꾸 느슨해진다거나 칼라가 처져버린다. 스마트해 보이는 것과는 영 거리가 멀어진다. 

 

셔츠 끝 커프스는 차렷 자세일 때 재킷 소매 끝에서 반 인치 정도 밑으로 보이는 게 원칙이다. 반소매 셔츠는 엄밀히 말해 정장이 아니므로, 프리젠테이션을 한다거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장소에서는 덥고 불편하더라도 긴 소매의 클래식 셔츠를 입고, 소매를 걷어 올린다. 더불어 풀어 젖힌 셔츠의 버튼은 일하는 남성의 섹시미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지만, 버튼은 두 개까지만 풀어야 한다고. 그 이상은 “남자답게 보이기는커녕 징그럽고 과한 인상”을 준다. 넥타이는 수트에서 가장 화려하고 장식적이기 때문에 깔끔하고 단정하게 맨 상태가 아니면 차라리 안 매는 것이 낫다. 넥타이 매듭 아래 생기는 주름을 일컫는 딤플은 경직된 수트 차림에 다채로운 표정을 부여하는 신사의 무기이므로,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매는 연습할 필요가 있다. 딤플 없이 두껍게 맨 타이는 일처리가 야무지지 못한 둔한 사람의 느낌을 주고, 넥타이 매듭과 깃 사이로 셔츠나 타이의 일부가 노출되면 사람이 느슨해 보인다. 

정확한 '배둘레헴'을 찾아라

의외로 자신의 정확한 허리 사이즈를 모르는 남성들이 많다. 골반뼈 바로 위와 배꼽 밑 사이가 허리로, 바지를 입었을 때 손가락 네 개 정도가 들어가는 게 자신의 정확한 사이즈다. 허리선 위로 바지가 올라가면 배바지, 밑으로 내려가면 골반바지가 되는데, 요즘은 허리선이 낮은 슬림핏이 대세다. 문제는 많은 한국남성들이 다리가 길어 보이겠다는 일념으로 배바지를 추구한다는 점. 태인영씨는 “중요한 자리에서 만난 너무 많은 한국남성들이 배바지를 입고 있어 항상 안타까웠다”며 “배바지는 다리가 길어 보이기는커녕 엉덩이만 빈약해 보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바지는 앞주름이 있든 없든 허리선에서 발끝까지 쭈욱 시원하게 이어져야 하는데, 날씬해 보이고 싶다면 주름 없는 팬츠를, 칼날 같은 앞주름으로 날렵한 인상을 주려면 밑단 접힘인 커프스가 있는 팬츠가 좋다. 커프스의 무게가 바지를 일자로 잡아당겨 주기 때문이다. 팬츠는 입었을 때, 옆주머니가 벌어지지 않아야 제대로 맞는 사이즈다. 

 

수트 재킷은 단적으로 말해 어깨는 넓고, 허리는 들어가 보이기 위해 입는 옷이다. 품이 적당히 넓어 편안한 아메리칸 스타일이 우리나라에서는 각광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 남성들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은 다소 과장된 어깨와 잘록한 허리의 S라인을 강조하는 이탈리안 스타일이다. 전형적인 군복에서 모티프를 따온 브리티시 스타일은 몸은 반듯하게 세워주는 딱딱한 각과 꼿꼿한 등선이 특징. 어떤 스타일이든 버튼은 두 번째 것만 잠근다. 뱃살이 두툼한 체형이라면 원버튼 재킷은 피하는 게 좋다. 

 

패션이라는 게 제대로 갖추고자 하면 끝도 없이 살 것들이 이어지지만, 안전하고 효율적인 클래식 스타일에는 화이트 셔츠 세 벌, 하늘색 셔츠 1벌, 회색과 남색 수트 각 한 벌, 갈색구두 1벌에 넥타이 몇 종류면 충분하다. “벨트는 무조건 구두와 같은 색으로, 지갑은 얇게, 양말은 종아리까지 올라오도록 길게, 이 정도 원칙만 지켜도 충분히 근사하게 스타일링을 할 수 있어요. 여기다 안경까지 그날의 룩에 맞게 매치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죠.”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