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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직접 쓰려고 만들었는데…
입소문 타고 상품이 된 '작은 브랜드'

by한국일보

#1

양념, 옷, 그릇 등 SNS 올렸더니

팔아달라는 팬들 생겨나 사업화

주류 업계보다 가짓수 적어

생산-소비자 아닌 취향 공동체

 

#2

대량생산 완전히 거부하진 않지만

가치관 일치하는 상품 찾는 현상

직접 쓰려고 만들었는데… 입소문 타

‘장스목공방’의 원형 트레이(위)와 사각형 트레이. 2009년 부부가 함께 문을 연 장스목공방은 가구부터 숟가락까지 모든 원목 제품을 손으로 깎아 만든다. 장스목공방 제공

언론사에서 마케팅 일을 하던 임보연(37)씨는 출산 후 회사를 그만뒀다. 일명 경단녀(출산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가 된 그가 취미를 붙인 건 아이를 위해 매일 만든 음식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 대학 시절 일본에서 유학한 그는 당시의 경험을 살려 간이 세지 않은 일본식 소스와 드레싱을 직접 만들었다.

 

댓글 보는 재미로 올리던 사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질문이 달리기 시작했다. “오로시(무를 간 것) 소스가 뭐예요?” 소스를 만드는 방법과 활용법을 설명해 주던 그에게 누군가 “잘 팔릴 것 같으니 마켓에 나가 보라”는 제안을 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소스를 병에 담아 어설픈 손글씨로 라벨을 붙여 2016년 부산의 한 플리마켓에 나갔다. 그날 가지고 나간 제품은 완판됐다.

 

“어떻게 알고 오셨냐고 물으니 90% 이상이 인스타(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날 인스타에 완판 소식을 알리며 감사하다는 글을 올렸는데 그 밑에 택배 주문을 받아 달라는 댓글이 엄청나게 달렸어요.”

 

이제는 정식 브랜드가 된 ‘메종드율’의 탄생기다. 한 달에 한 번, 선주문 후제작 방식으로 소스를 만들어 팔던 임 대표는 수직상승하는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난해 10월 공장을 차렸다. 소스병을 이고 지고 처음 플리마켓에 나간 지 1년 반 만의 일이다. 지난달 이마트몰에 입점한 메종드율은 이달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도 팝업 스토어를 연다. “브랜드 론칭이나 제품 출시라는 거창한 과정 없이 그냥 저와 제 아이가 먹던 소스를 만들어 팔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요즘 프로 살림꾼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는 SNS의 ‘작은’ 브랜드들이다. 해당 분야와 전혀 무관한 일을 하던 사람들이 취미로 만든 양념, 옷, 가구, 커피, 그릇이 브랜드화해 주류 시장까지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엄마의 마음으로” “내가 먹는다는 생각으로” 같은 대기업의 광고문구는 여기선 빈말이 아니다. 정말로 내가 쓰려고 만든 제품이 브랜드가 되고, 이들은 팬덤을 방불케 하는 열혈 소비자층을 이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평범치 않은 물건이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그저 살림 자랑만 했을 뿐인데…

직접 쓰려고 만들었는데… 입소문 타

아기옷 브랜드 ‘이로운 의상실’의 대표 상품인 레이스 보닛. 정한솔 이로운 의상실 대표의 두 딸이 브랜드 모델로 활동 중이다. 이로운 의상실 제공

연구원 출신인 정한솔(31)씨가 아기옷 브랜드 ‘이로운 의상실’을 시작한 건 2014년 딸을 출산하면서다. 딸 머리 숱이 적어 종종 남자 아이냐는 말을 듣는 게 속상했던 정씨는 아이의 머리를 가리기 위해 손수 보닛(머리 뒤에서부터 씌워 턱에서 끈을 묶는 모자)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제가 찾던 보닛은 매일 쓸 수 있는 디자인이었는데 시중엔 돌잔치처럼 특별한 날에 쓰는 제품밖에 없더라고요. 결국 제가 레이스 천을 사서 직접 손바느질을 시작했어요.”

 

정성껏 만든 보닛을 아기에게 씌우고 예쁘게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팔로어 수가 늘기 시작했다. “팔아 달라”는 댓글에 큰 고민 없이 10장 정도 만들어 판매한 것이 ‘이로운 의상실’의 시작이다. 출발은 보닛 하나였지만 지금은 양말, 드레스, 코트, 신발까지 취급하는 아기옷 브랜드로 확대됐다.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는 보닛 공구(공동구매)는 보통 1, 2시간 만에 매진된다.

 

“브랜드를 키우려고 했다기보다는 아이의 성장에 따라 턱받이, 속바지 등 필요한 걸 하나씩 추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품군이 확대됐어요. 시작부터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는 저희의 콘셉트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직접 필요한 걸 만든다’는 거예요.” 처음 보닛을 썼던 딸은 지금 다섯 살이 됐고 그 사이 둘째 딸이 태어났다. 정 대표는 최근 자매가 함께 입을 수 있는 커플룩을 새로 선보였다.

직접 쓰려고 만들었는데… 입소문 타

장스목공방의 롱스푼, 볶음주걱, 잼 나이프 장스목공방 제공

작은 브랜드들의 경쟁력은 단순하다. 소비자의 마음은 소비자가 가장 잘 안다는 것. 이는 최근 급속도로 확대되는 리빙 시장에서 ‘일반인 콘텐츠’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대 마케팅분과 교수는 저서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영향력, 인플루언서’(넥서스 발행)에서 많은 이들이 대기업보다 일반인이 만든 상품에 열광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업이 주도하는 형태의 콘텐츠는 자본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세련될 수는 있다. 세련된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고, 주변의 일반인들이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커 온 지금의 Z세대들은 작위적인 세련미보다는 진정성이 느껴지는 콘텐츠를 더 선호한다.”

 

여기서 말하는 Z세대란 2000~2008년생으로, TV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보는 현재의 10대들을 이른다. 그러나 리빙 분야로 이야기를 옮기면 이런 경향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분화된 취향과 다각화된 개성을 수용할 수만 있다면 이들에게 브랜드의 규모는 크게 중요치 않다. 자신의 침구를 직접 만들다가 2013년부터 ‘그레이시 그레이’라는 침구 브랜드를 시작한 하진(39) 대표는 작은 브랜드의 힘을 “선명한 색깔”에서 찾았다.

직접 쓰려고 만들었는데… 입소문 타

침구 브랜드 ‘그레이시 그레이’의 3중 거즈 담요. 신혼집에 꼭 맞는 침구를 찾지 못해 직접 만든 데서 브랜드가 시작됐다. 그레이시 그레이 제공

“소비자로서 작은 브랜드라고 해서 특별하게 생각하진 않아요. 중요한 건 나와 어울리냐 아니냐인데, 아무래도 작은 브랜드는 제품 수가 적고 카테고리가 방만하지 않기 때문에 이 요건을 충족하기가 더 쉬운 거죠.”

 

‘그레이시 그레이’도 다른 브랜드들과 마찬가지로 인스타에 ‘집 자랑’을 했다가 판매 요청을 받고 브랜드화된 케이스다. 하 대표는 작은 브랜드들이 금세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는 이유로 SNS에서 만들어지는 ‘취향의 공동체’를 꼽았다.

 

“SNS에서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들끼리 영향을 많이 받아요. 예를 들어 제 고객들은 저희 제품뿐만 아니라 제가 올린 사진 속 다른 제품들도 궁금해하세요. 그럴 때 저는 판매자가 아니라 동료 소비자가 되는 거죠. 자기와 같은 성향을 가진 동료 소비자의 추천을, 방송에서 일방적으로 뿌리는 광고보다 더 신뢰하는 것 같아요.”

“팬이에요” 평범함을 추종하는 시대

직접 쓰려고 만들었는데… 입소문 타

12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열린 플리마켓 ‘띵굴시장’. 오프라인 플리마켓은 그동안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던 작은 브랜드들과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공간이다. 사진=황수현 기자

SNS를 통해 형성된 취향의 공동체는 일반적인 생산자-소비자 관계와 약간 다르다. 나와 같은 또래, 나와 같은 취향과 고충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상품에 보내는 응원과 지지는, 브랜드 충성도보다는 차라리 ‘팬심’에 가깝다. 설계 일을 하던 장태영(39)씨와 미술을 전공한 손재민(36)씨 부부가 2009년 만든 원목 브랜드 ‘장스목공방’은 일일이 손으로 깎아 만든 도마와 트레이, 가구 등으로 인스타에서 인기 브랜드가 됐다. 주로 SNS로 고객들을 만나다가 처음 오프라인 플리마켓에 나간 손 대표는 “팬이다” “보고 싶었다” “좋은 제품 만나게 해 줘 고맙다”며 앞다퉈 인사하는 고객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대체 우리가 뭐라고 이렇게 찾아 주시나 감동적이더라고요. 저희끼리 ‘연예인은 얼마나 감격스럽겠나’ 이런 얘기도 농담처럼 해요(웃음). 고객들이 표현하는 마음만큼 저희도 더 정직한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매일 합니다.”

 

작은 브랜드들의 부상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내는 주류의 방법론이 눈에 띄게 허물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 주류 시장을 이용하지 않는 이들은 소수자, 비주류, 심지어 저항가로 분류됐지만 이제 평범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도 여기 동참하기 시작한 것이다.

직접 쓰려고 만들었는데… 입소문 타

12일 띵굴시장에서 절찬리에 팔린 ‘플라스틱 팜’의 장바구니. 심플한 디자인으로 젊은 여성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사진=황수현 기자

이들은 덤스터 다이빙(과잉 소비에 반대해 쓰레기통에서 물건이나 음식을 주워 생활하는 것)을 하는 대신, 자본주의 사회의 성실한 일원답게 사고파는 행위로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에 균열을 낸다. 일본의 자유기고가 사쿠마 유미코는 저서 ‘힙한 생활 혁명’(하루 발행)에서 이들을 “주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신의 가치관을 갖고 있지만, 펑크와 히피(…)의 기수들과 다른 점은 주류와 공존하면서 자신의 상품을 통해 가치관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새로운 문화 조류는 스스로가 소비하는 물건의 본질을 강하게 의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 소수라도 좋으니까 정말로 좋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공급자의 노력과 환경과 몸에 더욱 좋은 것을 입고 싶고, 더욱 깨끗한 음식 재료를 먹고 싶다는 소비자의 욕구가 부합”해서 나온 결과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황수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