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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남의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집주인 취향보러 왔단다"

by한국일보

SNS 놀이 '남의 집 프로젝트'

 

남의 집 서재, 남의 집 영화관...

모르는 사람들 모여 색다른 힐링

프로젝트 시작한 직장인 김성용씨

"회사 빼고 아무것도 없다 느낀 순간

내 힘으로 재미있는 딴짓 구상"

어느덧 51회 360명 넘게 참가

남의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남의 집’을 찾은 20대 청년들. 한쪽 벽면이 CD와 카세트테이프로 가득 차 있었다. 이날 집을 찾은 20대의 손님들은 “워크맨을 처음 작동해봤다”며 신기해 했다. 이소라 기자

지난 7일 오후 12시 30분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빌라. 생전 본 적도 없는 남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초대한 집주인의 자취방에 들어서니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CD와 카세트테이프,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온 손님 3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 CD플레이어와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집주인은 커피를 내리고 따끈한 팝콘을 내왔다. 집안 곳곳을 돌아보고 자리에 앉았다. 일주일간 느껴본 적 없는, 심심한 시간이 이어졌다.

 

한 작가의 사진집을 감상하던 직장인 박소정(27·가명)씨가 집주인에게 사진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서 조용하던 거실은 수다로 가득해졌다. 집주인은 얼마 전 일본에서 구매한 사진집도 들고나와 이야기를 이어 갔다. 2시간을 함께 보낸 손님들은 이날 처음 만난 사이인데 이름도, 전화번호도 묻지 않은 채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지속적 관계를 쌓아야 한다는 부담 없이 한낮의 여유를 즐기는 데만 집중한 모임이었다.

 

전혀 모르는 남의 집을 찾아가 집주인 취향을 즐기는 일명 ‘남의 집 프로젝트’는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된 최신 놀이다. 온라인에서 어떤 이가 모임을 제안하고 사람들이 참여 의사를 밝히면 초대하는 식으로 모임이 이뤄진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식 계정 회원이 1,500명을 넘는다. 이날 만남은 남의 집 탐방 중 특별히 서재에 집중했다 하여 ‘남의 집 서재’ 모임으로 일컬어졌다. 박 씨는 이날 모임까지 ‘남의 집 프로젝트’에 두 번 참여했다. 모두 주말이었다. 박 씨는 “월요일 퇴근 후에 모임이 있으면 힐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월요병을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다”며 평일 모임에 적극 참여할 뜻을 내비쳤다. “평소 안 하는 ‘딴짓’을 하고 싶어” 모임을 찾은 김우중(29)씨는 “낯선 사람과 새로운 주제로 대화를 나누니 회사 일을 잊게 된다”며 웃었다.

남의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

7일 ‘남의 집 프로젝트’ 모임이 열린 집의 책장에는 집주인의 손때가 묻어 있는 CD와 카세트 테이프가 가득 차 있었다. 남의 집 프로젝트 제공

‘남의 집 프로젝트’는 51회가 열렸다. 집으로 낯선 이를 흔쾌히 초대한 집주인은 39명, 남의 집을 방문해 호기심을 채운 손님은 360명이 넘는다.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모르는 사람의 집을 찾아가 낯선 만남과 타인의 취향을 즐겼다.

 

‘남의 집 프로젝트’의 주제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남의 집에서 아침식사를 함께 하면 ‘남의 집 아침’,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나누면 ‘남의 집 영화관’, 고수로 요리를 해 먹으면 ‘남의 집 고수’라는 이름이 붙는다. 21일에는 한 신혼부부가 ‘남의 집 청첩’ 모임을 열어 1년간 결혼을 준비한 이야기를 전한다. 거실만 있으면, 주제는 자유롭다. 단, 취업 강의나 자기계발 강연은 될수록 하지 않는다.

남의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

‘남의 집 프로젝트’의 주제는 지극히 소소하다. 기념품용 자석을 모으는 취미를 가진 집주인이 손님들을 초대해 자신이 모은 자석을 소개하고 있다. 남의 집 프로젝트

남의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

‘남의 집 프로젝트’는 제주도로도 진출했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열린 ‘남의 집 제주도’. 남의 집 프로젝트 제공

‘남의 집 프로젝트’는 서울 연희동의 한 셰어하우스에서 시작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 일하는 직장인 김성용(36)씨가 퇴근 후 벌일 색다른 일을 찾다가 떠올렸다. 김 씨는 “직장인 8년 차에 나를 돌아보니 회사 빼고는 내게 아무것도 없었다”며 “내 힘으로 재밌는 일을 벌여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손님들이 “카페 차려도 되겠다”고 칭찬하는 자신의 집 거실에 주목했다. 혼자 보기 아까운 거실을 낯선 사람에게 개방하기로 했다. 장난처럼 시작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 둘 김씨의 집을 찾기 시작했다. 생활의 때가 묻어 있는 거실은 다채로운 이야깃거리가 됐다. 모임은 입소문을 타면서 활동 장소와 내용이 다채로워졌다. 불참 방지를 위해 1만~3만원의 참가비를 설정하는 등 나름의 규칙도 세웠다.

 

김씨가 프로젝트의 성공을 확신한 건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으려는 행위)에 대한 직장인들의 욕구를 읽으면서부터다. 월요일 밤에 열린 ‘남의 집 홈인샵’에 직장인들의 참가 신청이 몰리는 현상을 보며 자신감이 붙었다. ‘남의 집 홈인샵’에서는 자취방 대신 가게를 보금자리로 택한 사장과 손님들이 만났다. 평일 밤이었지만 늦게까지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김씨는 “‘나와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라는 궁금증이 참여로 이어지는 것 같다”며 “반복된 일상을 보내던 손님들이 (모르는 사람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등 그동안 안 해 봤던 행동을 하면서 색다른 기분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남의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

‘남의 집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하는 일명 ‘문지기’ 김성용씨. 남의 집 프로젝트 제공

거실을 제공하는 집주인이 얻는 기쁨도 크다. 친구들과는 나누지 못하는 은밀한 취향을 호기심에 충만한 손님들에게 소개하면서 신바람이 난다. 초창기엔 김씨가 집 개방 의사가 있는 지인들을 일일이 섭외했지만, 지금은 먼저 참여하겠다는 집주인이 늘고 있다.

 

낯선 사람을 집으로 들이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풀어야 할 숙제다.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통해 사연을 받고 집주인이 직접 집에 들일 손님들을 선별하며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7일 열린 ‘남의 집 서재’는 ‘남의 집 프로젝트’와 독립된 프로그램으로 꾸준히 모임이 열릴 예정이다. 김 씨는 카페보다 더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려고 한다. 그는 앞으로의 모임에 반영할 만한 새 아이디어도 구상 중이다. 일명 ‘남의 집 반말’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김 씨는 “일회성 만남에서 남녀노소 상관없이 반말을 하면 대화가 어떻게 흐를지 궁금하다”며 “최대한 소소하고도 재밌는 프로젝트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