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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제기 Cast

아델이 선택한 ‘그 남자’

by한국일보

아델이 선택한 ‘그 남자’

예술영화계의 각광을 받고 있는 캐나다 영화감독 자비에 돌란. 엣나인 제공

영국 가수 아델의 새 음반 ‘25’ 열풍이 최근 뜨거웠다. 빙하기에 가까워진 음반시장에서 보기 드문 판매 열기였다.


아델은 ‘25’를 내기 전 싱글 ‘헬로’를 먼저 발표하며 대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수려한 흑백화면이 인상적인 뮤직비디오는 ‘헬로’의 인기에 적잖은 힘을 보탰다. 캐나다 영화감독 자비에 돌란이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26세의 이 젊디 젊은 감독은 적어도 세계 예술영화계에서는 수년 전부터 아델의 유명세가 비하지 못할 정도로 빼어난 재능의 소유자로 평가 받아왔다. 촉망이라는 미래형 수식을 이미 넘어 젊은 대가라는 형용을 얻고 있다. 뮤직비디오 촬영 뒤 돌란의 연출에 반한 아델은 자신의 첫 출연 영화도 돌란의 신작으로 택했다. ‘더 데스 앤 라이프 오브 존 F. 도노반’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다. 아델은 “돌란이 연기의 재미를 알게 해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돌란은 국내 예술영화 애호가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그의 영화 대부분이 국내 개봉했고 주문형비디오(VOD)로 접할 수 있다. 20대 캐나다 청년은 어떻게 세계 예술영화계의 큰 별이자 희망으로 떠올랐을까.

천재의 탄생과 성장

돌란의 과거는 천재답다는 표현으로 충분하다. 나이를 뛰어넘는 성취를 매번 이루며 20대 중반에 대가가 됐다. 그는 출신부터 남다르다. 이집트계인 어머니는 돌란이 나고 자란 캐나다 퀘벡주에서 유명한 가수 겸 배우 마누엘 타르도스다. 돌란은 어머니의 후광과 타고난 재능으로 아역 배우로 활동하며 어려서부터 유명인사가 됐다.

 

퀘벡주를 넘어서 세계적인 주목을 이끌어낸 그의 활동은 첫 장편영화 ‘아이 킬드 마이 마더’(2009)였다. 스무 살 돌란이 각본과 주연, 연출을 겸한 이 데뷔작은 천재의 탄생을 알리기 충분했다. 미워하고 사랑하고 또 갈등하는 어느 모자의 모습을 화려한 색감으로 정밀하게 그려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다. 돌란은 이 영화로 세 개의 상을 거머쥐었고 단번에 캐나다(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퀘벡주)의 유망 감독으로 떠올랐다.

 

돌란은 곧바로 ‘하트비트’(2010)를 만들었고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초대됐다. 한 양성애자 남자를 사랑하는 두 남녀를 통해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는 돌란이 앞으로 나갈 길을 선명히 제시한다. 화려한 색채와 인상적인 선곡으로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포착하며 관객의 마음을 훔친다. 돌란은 이 영화에서도 각본과 주연을 겸했다. 

세 번째 장편 ‘로렌스 애니웨이’(2012)도 돌란의 화려한 색감을 과시한다. 남자로 태어나 여성 옷에 집착하다가 결국 성전환까지 하게 되는 대학 강사 로렌스와 그의 연인 프레드의 징글징글한 사랑을 그렸다. 사회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심장의 논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뜨거운 인생이 스크린에 아로새겨져 있다. 돌란의 뚝심 있는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다. 형형색색이 스크린을 장식하고 기묘한 인물들이 기이한 사랑을 성취해가는 과정이 사뭇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를 떠올린다. 하지만 ‘로렌스 애니웨이’는 알모도바르의 아류를 취급할 수 없는 리듬감을 보여준다. 심장을 때리는 음악들이 빠르고 느리게 호흡을 조절하며 상영시간 168분 동안 활력을 불어넣는다. 프레드를 연기한 쉬잔 클레망은 이 영화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인스타그램 시대의 명작 ‘마미’

돌란은 쉬지 않고 다음 작품 ‘탐엣더팜’(2103)을 연출한다. 그는 남자친구를 사고로 잃고 남자친구의 고향 농장을 찾은 주인공 탐을 연기하기도 했다. 남자친구의 자취를 찾기 위해 찾은 농장에서 탐은 남자친구 가족들의 적대감과 마주한다. 가족들은 아들이자 형이자 오빠였던 존재가 고향에서 동성애자로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탐을 학대하고 박대하면서도 탐에게서 죽은 자의 흔적을 찾고자 한다.

 

멜로물의 성격에 스릴러의 요소를 가미한 이 영화에서 돌란은 완급을 조절하는 빼어난 연출력으로 관객들의 105분을 훔쳐간다. 두려움과 그리움이 교차하는 얼굴의 탐을 연기하기도 했다. 영화는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완성도를 인정 받았다. 2013년 돌란은 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초빙됐다. 동갑내기들은 영화학도 정도에 머물 나이에 그는 일가를 이룬 대가 대우를 받은 셈이다.

 

지난해 선보인 ‘마미’는 돌란의 재능이 만개한 수작이다.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화면비율부터 파격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의 사진과 같은 비율의 정사각형 안으로 그는 인물과 풍경을 집어넣는다. 분노조절장애로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가 집에 돌아오게 된 스티브와 엄마의 뜨거운 모자 관계를 그린다. 시한폭탄 같은 스티브 때문에 엄마는 매번 곤경에 처하나 이웃집 여인과 함께 유사가족을 형성하며 나름 행복한 삶을 이어간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스티브를 보내야 하는 모성, 세상이라는 감옥에 맞서는 스티브의 뜨거운 감성 등이 화면에 불꽃을 일으킨다. 애처롭고 따스하며 쓸쓸한 기운을 함께 품은 영화다.

돌란은 ‘마미’의 정사각형 화면으로 영화적 역설을 펼쳐낸다. 영화는 당초 태생적 제한을 지닌 매체였다. 무성흑백으로 출발해 유성흑백, 유성컬러, 아이맥스, 3D 등으로 진화했다. 현실에 가까워지도록 진화하고 있으나 여전히 실제와는 다르다. 현실과 다른 태생적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영화는 여러 미적 장치들을 개발했고 이를 통해 관객과 소통했다. 돌란은 넓게 펼쳐지거나 입체적인 화면을 택하는 대신 좁아진 정사각형 스크린으로 분노조절장애와 빈곤, 고독 등에 갇힌 스티브의 정신적 외부적 상황을 표현해낸다. 영화의 진화 방향과 달리 제한된 공간 속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구축해낸 돌란의 면모는 천재적이라는 수식을 받을 만하다(돌란은 인스타그램에서 수 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SNS 스타이기도 하다).

영화역사의 한 켠을 예약한 젊은 작가

자비에 돌란은 오랜 만에 등장한 재능 넘치는 젊은 감독 겸 배우다. 26세에 ‘시민 케인’(1941)으로 영화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긴 오손 웰즈(1915~1985)를 연상케 한다. 역시 감독 겸 배우였던 웰즈에겐 ‘시민 케인’이 영예이자 멍에였다. 그는 뛰어난 연출력과 빼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투자에 목을 매야 했다. 작가라는 인상이 강했던 웰즈에게 자선가처럼 돈을 쉽게 대줄 할리우드 제작자는 많지 않았다. 

 

웰즈에 비하면 돌란은 행운아다. 거의 매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한때 캐나다로부터 독립을 강하게 추진했던 퀘벡주 출신이라는 배경이 적지 않은 힘으로 작용한다. 프랑스어권인 이곳에서 할리우드에 휘둘리지 않는 영화 문법으로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돌란은 유럽, 특히 프랑스 영화인들에겐 매력적인 존재다.

 

돌란은 캐나다 내부에서 자체적인 문화 생태계를 지닌 퀘벡주에서 성장한 뒤 프랑스 자본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유럽과 세계의 아트하우스(예술영화관)으로 뻗어가고 있다. 칸영화제 감독주간,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 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상으로 이어지는 성장 과정은 엘리트 예술영화 감독의 전형적인 이력이다. 여느 유명 감독들이 10년 안팎으로 일굴 이력을 돌란은 5,6년 만에 돌파했다.

 

차기작 ‘더 데스 앤 라이프 오브 존 F. 도노반’은 돌란의 첫 영어 영화다. 제시카 채스테인이 스크린 중심에 설 이 영화는 한 할리우드 스타가 팬과 나눈 편지가 미디어에 공개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유럽 아트하우스를 사로잡은 돌란의 감성이 미국 시장까지 노리는 모양새다.

 

돌란은 동성애자다. 그의 성적 소수자로서의 위치는 영화에서도 가늠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기성사회와 부딪히면서 발산하는 에너지가 스크린을 지배한다. 돌란은 카메라 뒤에만 서지 않고 스스로 스크린에 들어가 허구들 속에 자신의 감정을 주입한다. 그의 영화가 놀라운 성과를 남기며 전진만을 거듭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젊은 천재가 언제 빛을 잃을지 모른다. 중년을 넘어 범작을 거듭하다 세상을 떠난 웰즈가 밟은 길을 따라 갈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그는 영화팬들을 놀라게 하고 영화 역사가 기억할 만한 작품들을 이미 충분히 만들어왔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