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은 하늘에 흐르는 은하수가 여기 숨었네

[여행]by 한국일보

설악산 대승폭포, 장맛비에 위엄 뽐내


기습 폭우로 한편에선 물난리를 겪었고, 또 다른 지역은 오랜 가뭄에서 벗어났다. 대승폭포를 보기 위해 설악산을 찾아간 전날에도 강원 영서지역엔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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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대승폭포. 전망대 바로 앞에서 89m 수직 낙하하는 장관을 볼 수 있어 감동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인제=최흥수기자

대승폭포는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한국의 3대 폭포로 꼽힌다. 산행 출발점은 설악산 탐방지원센터 장수대분소다. 인제와 양양을 잇는 44번 국도변으로, 원통과 한계령휴게소 중간지점이다. 장수대는 1959년 당시 제3군 단장인 오덕준 장군이 주도해 지은 기와집이다. 일종의 숙소이자 휴게소인 셈인데, 설악산 전투에서 순직한 6ㆍ25 전몰 장병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이렇게 명명했다고 한다. 현재는 방치된 채 낡아 가는 건물에 출입금지 현수막만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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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대분소 도로 건너편의 장수대. 출입금지 현수막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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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폭포 탐방로로 들어서는 장수대분소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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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솔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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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하지 않더라도 잠시 쉬어가기 좋다. 오후 1시 이후에는 들어갈 수 없다.

이곳에서 대승폭포까지는 약 900m로 멀지 않다. 평지라면 성인 걸음으로 10분가량 걸리지만 보통 40분을 잡는다. 이 정도면 기어가는 수준인데, 왜 그런지는 걸어보면 안다. 설악산국립공원은 대승폭포 코스의 난이도를 ‘보통’으로 분류한다. 난이도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설악산에서 이 정도는 ‘보통’이고, 산 좀 타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힘들지 않다는 얘기다.


탐방로 입구에 들어서자 하늘로 쭉쭉 뻗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그늘을 짙게 드리웠다. 신선한 솔 향기가 쏟아져 내리는 듯해 등산이 아니어도 잠시 쉬어가기 안성맞춤이다. 시원한 계곡 물소리 따라 작은 다리를 건널 때까지 짧은 구간이지만 깊은 산중에 들어선 기분이다. 그러나 편안한 발걸음은 여기까지다. 계곡과 갈라지는 지점부터 계단이 이어진다. 다행히 나무계단 바닥은 타이어 재질과 비슷한 밧줄을 잘라 마감해 미끄럽지 않고 피로도 덜하다. 양양으로 가는 길에 쉬어 가려고 들렀다가 폭포까지 걸어보기로 했다는 한 여행객은 맨발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지압효과를 노린 것이지만, 탐방로가 그만큼 잘 정비돼 있다는 말이다.


거리가 짧다는 것만 믿고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던 탓일까. 절반쯤 올라 첫 번째 전망대에 다다르자 벌써 다리가 무거워진다. 물소리는 아득히 들리는데 계곡도 폭포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한계령에서 흘러내린 우람한 설악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곳부터 경사는 더욱 가팔라진다. 날카로운 바위 능선에 뿌리를 내리고 꿋꿋하게 살아남은 소나무를 보고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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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전망대. 폭포는 보이지 않고, 맞은편 산줄기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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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곳마다 설악산을 다녀간 옛 사람들의 시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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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절벽에 뿌리내린 소나무가 한 폭의 그림이다.

‘설악산을 다녀간 옛 사람들의 시’를 음미하며 쉬어 가는 것도 재미다. 조선중기 문인 구사맹(1531~1604)의 ‘한계산’부터 양양부사를 지낸 정범조(1723~1801)의 ‘한계폭포’까지 900m 탐방로에 한시 10여편을 새긴 철제 안내판이 쉬어 갈 만한 곳마다 세워져 있다. 16~19세기 문인들이 쓴 이들 시에는 설악산과 대승폭포라는 명칭 대신 한계산과 한계폭포라 지칭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악산국립공원의 안내문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현재의 대청봉 주변과 그 북쪽만을 설악산이라 했고, 울산바위 주변은 천후산, 대청봉 서쪽 일대를 한계산으로 구분해 불렀기 때문이다. 한계(寒溪)라는 지명이 사용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신라 진덕왕 1년(647)에 창건한 ‘한계사’라는 사찰이었다. 이후 지리지와 고지도, 유람기 등에 한계산, 한계성, 한계폭포, 한계천, 한계령 등의 지명이 폭넓게 사용됐다.


장수대분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계사 터가 남아 있지만, 사전에 국립공원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갈 수 없어 다소 아쉽다. 한계사는 647년 자장(慈藏)이 창건해 690년(신문왕 10)에 불탔다가 719년(성덕왕 18)에 다시 건립되는 등 부침을 거듭했다. 조선시대로 넘어와 1456년(세조 2)에는 사찰을 인근 백담사로 옮겨 지금처럼 절터만 남게 되었다. 현재 절터에는 주춧돌을 비롯해 받침돌, 파손된 석조불상과 한계사지 남삼층석탑(보물 제1275호)이 남아 있다. 남삼층석탑은 다른 곳에 옮겼다가 1985년 절터를 정비하면서 원래 자리에 복원했다. 절터에서 북쪽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북삼층석탑이 있지만, 남삼층석탑과 구분하기 위한 이름일 뿐 쌍탑은 아닌 것으로 문화재청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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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은 설악이다. 대승폭포까지 오르면서 보는 풍경도 작은 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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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전망대까지 오르면 폭포 상단이 조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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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드디어 나뭇가지 사이로 대승폭포의 물줄기가 보인다.

대승폭포라는 이름은 17세기 한시와 유람기에 등장하기 시작해 지금은 가장 널리 쓰이는 이름이 다. 아마도 대승암(大乘庵)이라는 암자와 불교의 영향으로 보인다. 한계리에서 버섯 따는 일을 생계로 삼은 ‘대승’이라는 총각에 관한 전설도 있다. 폭포 절벽에 밧줄을 매고 버섯을 따던 대승이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절벽 위에서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를 듣고 올라와 보니 커다란 지네가 동아줄을 갉아먹는 중이었단다. 이때부터 돌아가신 어머니의 간절한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고 해 대승폭포라고 불렀다는 얘기다.


다시 가파른 계단을 하나씩 올라 두 번째 전망대에 이르자 드디어 소나무 사이로 폭포 상단부가 조금 보인다. 수직 89m 낭떠러지로 쏟아져 내리는 국내에서 가장 낙차가 큰 폭포라는데,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앞서 가던 중년 부부는 다소 실망했는지 그만 내려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정상이 코앞인데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드디어 오르막이 끝나고, 폭포 앞 전망대까지 평평한 길이 이어진다.


검붉은 암벽 한 가운데에 하얀 물기둥이 끝없이 떨어진다. 종잇장처럼 갈라지던 물줄기는 아슴푸레하게 보이는 바닥까지 닿지 못하고 안개처럼 부서지며 다시 계곡을 오르고 흩어진다. 올라오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날씨가 흐려 햇살에 부서지는 무지개는 볼 수 없었지만 설악의 장엄함과 마주한 감동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옛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날아가는 듯한 폭포, 공중에 떠 있는 듯(조인영)’하고, ‘천 개의 북 울리는 듯한 우레 같은 소리, 미친 듯한 포말이 하늘에서 뿜어(오도일)’ 내린다. ‘가파른 절벽은 철벽과 비슷하고(김시보)’ ‘떨어지는 기세는 은하수가 하늘에 걸려 있는 듯(홍세태)’하다. ‘비단 옷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만 겹의 주름(이유원)’ ‘아스라하여라 한계폭포여(김창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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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승폭포와 마주하다. 물줄기가 떨어져 웅덩이를 이룬 맨 아래는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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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m 수직으로 낙하하는 물줄기와 마주하면 그저 입이 떡 벌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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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갈 때 힘들었던 그 계단이 내려올 때는 천상을 걷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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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의 경사가 대충 이 정도다.

전망대 부근 바위에 새겨진 ‘구천은하(九天銀河)’라는 네 글자는 대승폭포의 감동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가장 높은 하늘에 흐르는 은하수’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바위의 글귀는 누가 새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당나라 시인 이백의 ‘여산폭포를 바라보며’에서 빌려온 문구다. 대승폭포의 여운을 안고 내려오는 길은 한결 가볍다. 발아래 까마득한 풍경을 굽어보노라면 걸음걸음이 천상의 산책이다.

은둔자의 휴식처 필례약수와 필례온천

장수대 분소에서 한계령휴게소를 지나 곧장 내려가면 양양이고, 600m 아래 갈림길에서 ‘점봉산’ 방향으로 우회전하면 필례계곡으로 이어진다. 한계천에 비하면 경치는 소박하고 경사도 완만하다. 1994년 포장된 도로는 지금껏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으로 차량 통행이 더욱 뜸해 한적하게 드라이브를 즐기기는 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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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례약수로 가는 길은 양양과 인제를 잇는 가장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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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는 철분 성분이 좀 느껴질 뿐, 탄산은 거의 없다.

이 길은 한계령이 생기기 전 양양과 인제를 연결하는 가장 빠른 고갯길이었다. 나귀에 소금을 실어 나르던 산길이어서 요즘도 ‘소금길’이라 부르는 주민들이 더러 있다. 시골 아낙네처럼 정겨운 ‘필례’라는 명칭은 대동여지도에서 표기한 필노령(弼奴嶺)이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강릉이 고향인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銀飛領)’의 배경이기도 하다.


계곡을 따라 약 5km를 내려가면 필례약수에 닿는다. 1930년경에 발견된 탄산 약수인데, 어찌된 셈인지 톡 쏘는 맛은 거의 없다. 철분이 섞인 듯 살짝 비릿하지만 물맛은 생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때 70여 가구가 살았던 마을 주변엔 현재 식당과 상가가 몇 있을 뿐인데, 2015년 ‘필례온천’이 문을 열었다. 지하 730m에서 뽑아 올리는 온천수는 게르마늄 함량이 국내 최고라고 자랑한다. 덕분에 필례마을은 온천보호구역으로 정식 승인을 받았다. 음용수로도 판매하는데, 짠맛과 단맛이 동시에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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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례약수터 위 필례온천. 동네 목욕탕처럼 아담한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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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 뒤편엔 자작나무숲이 있다.

필례온천은 최근에 지었지만 시설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물놀이 시설은 고사하고 그 흔한 수압 마사지 기기도 없다. 온탕과 냉탕, 그리고 작은 야외온천탕이 전부다. 지금도 동네 주민과 자연 속에서 고요하게 휴식을 즐기려는 이들이 찾아오는 정도다. 깊은 산중 은둔자의 휴식처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야외온천탕 바로 앞은 숲이고 하늘이다. 뜨거운 탕 안에 몸을 담그면 산행의 피로가 사르르 녹는다.

한적한 시골의 가을 정취 월학리 냇강마을

필례온천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길은 인제와 원통 사이 44번 국도와 다시 만난다. ‘인제 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하소연이 절로 나오는 바로 그곳이다. 인제 북면 원통은 최전방 군 생활의 설움을 상징하는 지역이었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 동홍천IC로 나와 속초로 이어지는 4차선 국도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원통까지 불과 2시간 남짓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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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학리 김장소마을 한복판의 자작나무 가로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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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정원은 작은 숲에 들어선 것처럼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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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정원엔 조형물 대신 벤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원통에서 뒤편 고갯마루를 하나 넘으면 인제에서 들꽃마을로 통하는 월학리 냇강마을이다. 냇강마을은 김장소, 말거리, 도리촌, 소재골, 대터 등 다섯 개 자연 부락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그 중 김장소마을을 중심으로 13가구가 협동조합을 결성해 경관농업을 시작하면서 지금은 집집마다 정원과 꽃밭을 가꿔 마을 전체가 화사하게 변하고 있다. 앞마당에 심은 백일홍, 봉숭아, 사루비아, 과꽃이 과수원까지 번져 사과밭인지 꽃밭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집도 있다.


강가에 조성한 연못에는 연꽃이 지고, 씨방 줄기가 샤워기처럼 고개를 숙인 채 여물고 있다. 인근 들꽃재배단지에는 맨드라미와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마을 중간 ‘냇강두레 농촌체험관’ 앞에는 자작나무 가로수가 작은 터널을 이루고, 바로 옆 마을 정원은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가꿨다. 여느 공원에 흔한 운동시설이나 정체 모를 조형물 대신 벤치 몇 개 놓은 게 고작이어서 작은 숲 속에 들어온 듯 아늑하다. 가을볕을 쬐며 한참을 쉬어도 지겹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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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소마을 들판에 맨드라미가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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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연못, 연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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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꽃이 핀 과수원. 사과 밭인지 꽃밭인지 분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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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읍내에 위치한 박인환문학관.

냇강은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으로 2002년 마을에 거주하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모해 지은 이름이다. 공식 지명은 인북천이다. 요즘은 제방을 따라 저절로 자란 마타리와 달맞이가 노랗게 피어 있다. 다듬은 듯 아닌 듯한 마을 길 어디를 걸어도 가을 정취가 가득하다. 돌아오는 길에 인제 읍내에 있는 박인환문학관을 들르는 것으로 여정을 마무리해도 좋다. 그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의 한 대목을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곧 쓸쓸해질 가을 서정이 짙게 묻어난다.


인제=글ㆍ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2018.09.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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