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하면 두고 보자” 협박 시달려… 교도관 4명 중 1명 정신질환

[이슈]by 한국일보

올해 벌써 7명 극단적 선택

“출소하면 두고 보자” 협박 시달려…

11일 경기 안양교도소 내부 복도에 선 기동순찰팀 교도관이 수용자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나 출소 얼마 안 남은 거 알지? 퇴근길 조심해야 할 거야.”


수도권 교정시설 A 교도관은 지난해 강간ㆍ폭행 혐의로 수감된 강력범에게 이런 협박을 받았다. “태블릿 PC와 영양식을 넣어달라”는 요구를 A 교도관이 거절했다는 이유에서다. “너희 집 어딘지 안다, 애들이 학교 제대로 다닐 수 있겠냐” 등 위협은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이어졌다.


협박은 말로 그치지 않았다. 일부러 교도관을 골탕 먹이려는 목적으로 ‘각 부서 5년치 예산집행내역’ 등 50여건의 정보공개를 한꺼번에 청구했다가, “안면이 있어 봐준다”라며 선심 쓰듯 청구를 일부 취하하기도 했다. A 교도관은 “성직자 같은 사명감으로 일하려고 해도, 매일 욕설에 협박 고소까지 당하면 회의감이 밀려온다”고 말했다.

교도관 4분의 1이 정신질환 호소

‘범죄자의 형 집행 및 교화’라는 세상 궂은 일을 맡은 교정공무원이 일부 수용자의 부당한 위협과 폐쇄적 근무환경 탓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교정공무원 4분의 1이 정신질환을 겪고 있으며,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교정공무원도 늘고 있다.


27일 법무부에 따르면, 교정공무원 3,005명 대상 정신건강 실태 분석에서 730명(24.3%)이 정신건강 위험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증상(중복응답)에 따라 무능력감을 호소한 교정공무원이 330명(전체의 11.1%)으로 가장 많았고, 우울감(310명) 불안감(261명) 외상증후군(187명)이 뒤를 이었다.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2015년 2명, 2016년 3명, 지난해 4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올해는 이 수치가 이달 기준 벌써 7명이다.


현장 교도관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문제는 작정하고 교도관들을 괴롭히려는 일부 수용자의 횡포다. 한국일보가 이달 중순 수도권 소재 교도소와 구치소 등을 찾아 현직 교도관들을 면담한 자리에서, 교도관들은 “발소리 시끄러우니 순찰 오지 말라” “밥 양이 적으니 저울로 달아 보자” 등 대놓고 시비 거는 수용자들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출소하면 두고 보자” 협박 시달려…

주요 국가 교정공무원 1인당 수용자 수=그래픽 신동준 기자

민원폭탄에 물리적 위협은 일상사

교도소에서 일하는 B 교도관은 “밥이 적다, 진료가 늦다는 이유로 최근 3개월간 5건의 고소를 당했다”라며 “수용자가 옷을 벗겨버리겠다고 협박하면 잘못이 없어도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용자의 권리 요구는 기본권에 해당하고 수용자의 모든 요구가 다 악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민원에 약할 수밖에 없는 공무원의 사정을 잘 아는 일부 수용자가 민원ㆍ진정ㆍ청구를 악용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교정시설 수용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은 건수는 지난해 4,528건으로 2016년(3,716건)보다 21.8% 증가했고, 교정공무원에 대한 고소ㆍ고발 건수도 지난해 783건으로 2016년(698건)보다 12.2% 늘었다. 교정시설 인권 환경이 나름 개선되는 상황에서 민원ㆍ고소가 되레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인 것이다.


‘민원폭탄’ 말고도 직접 신체적 위협을 받기도 한다. 한 교도관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보균자가 얼굴에 뱉은 침이 입에 들어가는 경험을 한 뒤, 한동안 공황 상태에 빠진 적이 있다. 운동선수 출신 등 덩치가 큰 수용자의 몸싸움을 말리다 피멍이 드는 일도 예사다. 지난해 수원구치소 한 곳에서만 교도관을 폭행해 입건된 수용자가 4명에 이른다.


이처럼 수용자가 교도관을 위협하는 일이 끊이지 않지만, ‘관심 수용자’를 제어할 현실적 방법은 마땅치 않다. 교도관을 폭행하는 등 규율을 위반한 수용자는 ‘조사징벌동’에 따로 수용해 물건 반입, 접견, 서신 등을 제한하고 있지만, 일부 수용자는 “비좁은 일반수용동에 있느니 조사징벌동에서 혼자 방을 쓰겠다”는 식으로 징벌방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한 교도관은 “수용자들은 인권위에라도 기댈 수 있지만, 교도관에겐 인권이 없다”라며 교도관과 수용자의 갑을 관계는 역전됐다”고 말했다.

“출소하면 두고 보자” 협박 시달려…

11일 경기 안양교도소 내부 수용실 모습. 신상순 선임기자

스트레스ㆍ극한상황 대비할 전문인력 절실

▦갇힌 공간을 벗어날 수 없는 특유의 근무환경 ▦여전히 폐쇄적인 조직문화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우 등도 교정공무원에게 스트레스를 더하고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지적된다. 그러다 보니 매년 국가공무원 공채시험에서 교정직의 합격선은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경쟁률은 직렬 중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미국은 교도소마다 심리학자 수십 명이 배치돼 수용자의 상담 및 치료뿐 아니라 교도관들의 스트레스 관리를 담당한다”라며 “교도관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장 근무자 확충은 물론, 교도관과 관심 수용자 간 중재 역할을 할 전문인력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2018.09.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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