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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고추장보다 진한 1만그루 애기단풍, 빛의 터널 걸어볼까

by한국일보

순창 강천산 단풍 산책로

2시간30분 왕복 5km 구간

유모차 끌고도 불편하지 않아

고추장보다 진한 1만그루 애기단풍,

순창 강천산 군립공원은 가장 편하게 가장 화려한 단풍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평탄한 왕복 5km 계곡 산책로에 1만 그루의 애기단풍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순창=최흥수 기자

예년보다 이른 추위로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도 1주일은 당겨진 듯하다. 남부지방 명산도 지난주 온통 울긋불긋 가을 색으로 물들었다. 순창 강천산은 장성 백양사와 정읍 내장사 등 주변의 이름난 단풍 여행지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규모와 빛깔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왕복 5km에 이르는 단풍 산책로는 유모차를 끌고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여서, 넉넉잡아 2시간30분이면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화려한 단풍놀이를 즐길 수 있다.

전국 최초 군립공원, 가을의 전설은 지금부터

강천산(584m)은 순창과 담양을 구분 짓는 아담한 산으로, 1981년 전국 최초로 군립공원에 지정됐다. 군립공원은 시ㆍ군ㆍ구의 자연생태나 경관을 대표할 만한 지역으로 현재 전국 27개소가 지정돼 있다. 산성산 연대봉(603m), 광덕산 선녀봉(578m) 등 고만고만한 봉우리로 둘러싸인 강천산 계곡은 깊고도 아늑하다.

고추장보다 진한 1만그루 애기단풍,

여행객들이 울긋불긋 색깔 고운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고추장보다 진한 1만그루 애기단풍,

산책로 주변 애기단풍이 가을 햇살에 별빛처럼 반짝인다.

고추장보다 진한 1만그루 애기단풍,

일부 구간은 메타세쿼이어가 색다른 매력을 풍긴다.

시간은 사람의 손길도 자연으로 되돌린다. 강천산 애기단풍은 1988년부터 수년에 걸쳐 심은 것이다. 30년 세월에 약 1만그루에 달하는 단풍나무가 2.5km 산책로를 형형색색의 터널로 변화시켰다. 걷는 내내 폭 3m의 흙길과 계곡이 색의 향연이다. 그러나 한날한시에 태어나도 생김새는 제 각각이다. 물과 토양에 따라 나무의 높낮이가 다르고, 햇볕이 드는 정도에 따라 불타는 듯 붉은 단풍이 있는가 하면, 샛노랗거나 아직 초록이 그대로 남는 가지도 있다. 한 잎 두 잎 단풍이 떨어진 계곡에는 물고기(주로 갈겨니가 많다)가 유유히 헤엄친다. 산책로 중간쯤 일부 구간에는 단풍대신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가 색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자연을 닮아 가기는 단풍뿐만이 아니다. 공원 초입에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높이 40m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눈길을 잡는다. 가늘게 떨어지던 물줄기는 바닥에 닿을 즈음이면 물보라로 부서지고, 햇살이 비치면 무지개로 피어난다. 2003년 인공으로 조성한 병풍폭포다. 항상 일정량의 물을 흘려보내기 때문에 초록 이끼가 끼어 웅장함에 자연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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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상류 구장군폭포가 제법 웅장하다.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사실은 인공폭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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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너머로 떨어지는 구장군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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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건너는 다리 난간은 고추, 메주, 항아리 등을 형상화했다.

산책로가 끝나는 계곡 상류에는 2005년 조성한 구장군폭포가 높이 120m 바위 절벽에서 두 물줄기로 흘러 내린다. 웅장한 산세와 어우러진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다. 폭포에 항상 일정량의 물을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은 구장군폭포 바로 위의 저수지 덕분이다. 이 폭포수로 인해 계곡도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 폭포에서 목재 계단으로 연결된 길을 조금만 오르면 저수지 제방까지 갈 수 있다. ‘구장군’은 마한시대의 아홉 장수로, 죽기를 결의하고 전장에 나가 승리했다는 그럴듯한 전설도 입혔다. 이외에도 단풍 계곡을 따라가며 수도승이 도통했다는 수좌굴,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 인근 팔덕천의 가뭄을 해결했다는 아랫용소 등 아기자기한 이야깃거리를 전하고 있다.

 

폭포 아래 강천사는 고창 선운사의 말사(末寺)로 다섯 채의 전각만 남아 있지만 한때 열두 암자를 거느린 큰 사찰이었다.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에 도선국사가 창건해 고려시대에 번창했지만 임진왜란 때 석탑만 남고 모두 소실됐다. 조선 선조 37년(1604)에 재건하지만 한국전쟁으로 다시 불타고, 1959년 복원해 현재는 천년고찰의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다. 계곡 맞은편의 삼인대(三印臺) 비각도 쓸쓸하다. 순창군수, 담양부사, 무안현감 세 사람이 직인을 걸고 중종반정(1506년) 직후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건의하는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한 곳에 그 뜻을 기려 비를 세웠다. 그들의 뜻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셋은 귀양에 처하게 된다. 수령 300년, 전국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모과나무가 처연히 비각을 지키고 섰는데, 이 구간 단풍은 유난히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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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m 상공에 매달린 구름다리 아래 계곡에 단풍이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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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산은 실제 규모에 비해 웅장하다. 구장군폭포 위 저수지 제방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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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고 빨갛게 물든 단풍에 눈이 어질어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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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사 전각 뒤편 감나무에 잘 익은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평탄한 산책로가 너무 싱겁다고 여겨지면, 강천사와 구장군폭포 사이에서 잠시 현수교(구름다리)로 빠지는 등산로를 걸어도 좋다. 역시 잘 다듬은 목재 계단으로 전망대까지 오르면 들이는 힘에 비해 넓고 장쾌한 풍광이 펼쳐진다. 1980년에 계곡 사이를 연결한 구름다리는 높이 50m 공중에 떠 있다. 흔들림이 크지 않지만 아찔함이 만만치 않아 간혹 발길을 되돌리는 이들도 보인다.

 

눈길 닿는 곳마다 황홀한 애기단풍에 홀려 주변을 살피기 어려운데, 입구부터 구장군폭포까지 걷다 보면 작은 교량으로 네댓 차례 계곡을 건넌다. 다리 난간 장식이 고추, 메주, 장독 등 한결같이 순창 고추장과 관련이 있다. 억지로 끌어다 붙인 옛 이야기보다 주민들의 지역 사랑이 듬뿍 느껴진다. 자연을 닮고 싶은 최초의 군립공원, 강천산의 전설은 그렇게 다시 쓰여지고 있다.

단풍보다 검붉은 순창 고추장민속마을

순창 하면 고추장을 빼놓을 수 없다. 강천산에서 순창읍내로 나오는 길목에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이 있다. 순창군이 전통 장류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1997년 지역에 흩어져 있던 고추장 장인들을 모아 조성한 마을이다. 현재 34개 업체가 직접 담근 고추장, 된장, 간장을 비롯해 갖가지 장아찌를 판매하고 있다. 일부는 민박도 겸하고 있는데, 마당마다 항아리가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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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고추장민속마을의 한옥 마당마다 장을 숙성시키는 항아리가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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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고추장민속마을에는 34개 장류 업체가 입주해 있다.

순창 고추장은 메주부터 다르다. 삶은 콩만 사용해 직육면체로 만드는 다른 지역과 달리 멥쌀과 콩을 섞어 도넛 모양으로 만든다. 기온과 습도, 안개일수 등 순창의 기후조건이 발효에 최적이라는 자랑도 빠지지 않는다. 다른 지역으로 시집 간 순창의 새댁이 똑같은 방법으로 고추장을 만들어도 친정에서 담근 장맛을 내지 못한다는 얘기가 순창에서는 정설처럼 회자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묵어야 장맛’이다. 순창고추장을 특징짓는 가장 큰 요소는 오래 숙성하는 것이다. 민속마을에 입주한 모든 업체는 기본적으로 1년 이상 묵은 장만 판매한다. 장독마다 붙은 제조연도를 보면 5년 이상 숙성한 것도 수두룩하다. 이렇게 묵은 고추장은 빛깔 고운 빨간색이 아니라 검붉은 색에 가깝고, 맛은 한결 깊어진다. 민속마을 입구의 ‘장류박물관’에 가면 순창고추장의 특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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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소스토굴의 고추장을 주제로 한 트릭아트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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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발효소스토굴엔 대형 업체의 고추장 항아리도 저장돼 있다.

요리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인근의 ‘발효소스토굴’도 흥미롭다. 134m 인공 토굴에 세계 50여개국 600여 발효 소스를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전시하고 있다. 냉난방 시설 없이 항상 12~15도를 유지해 각 업체에서 위탁한 대형 항아리와 여행객들이 체험으로 만든 고추장도 보관하고 있다. 입장료 2,000원이면 트릭아트와 흥미진진한 가상현실(VR) 체험까지 즐길 수 있어 아이들도 좋아한다.

순창 여행 정보

순창읍내는 광주대구고속도로 순창IC에서 가깝다. 수도권에서 내려가면 호남고속도로 서전주IC에서 약 60km 거리다. 순창읍내에서 고추장민속마을은 약 3km, 강천산 군립공원은 10km 떨어져 있다.

고추장보다 진한 1만그루 애기단풍,

오래된 것은 편안함, 책을 읽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금산 여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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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여관 마당의 흑백텔레비전 장식.

순창읍내 금산여관(게스트하우스)은 현대식 숙소에 비해 불편하지만 집처럼 편안함을 느끼고 싶은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다. 80년 된 낡은 한옥이 네모난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낮에는 툇마루에서 가을볕을 쫴도 좋고, 밤에는 주인장과 여행객들이 차 한 잔으로 수다를 떨기도 한다. ▦금산여관 옆에 있던 ‘방랑싸롱’은 최근 읍내 외곽 교성리의 창고를 개조해 ‘시즌2’로 문을 열었다. 문화기획사를 표방하며 소박한 공연장과 전시공간까지 갖췄다. 여행자에게는 ‘강천달빛’ ‘메타서클’ 등 독특한 이름의 커피와 음료를 맛볼 수 있는 카페다.

고추장보다 진한 1만그루 애기단풍,

장재영 ‘방랑싸롱’ 대표가 팝아트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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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를 듬뿍 넣은 피순대로 끓인 ‘봉깨순대’의 순대국밥.

순창시장에는 5~6개 식당이 순대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당면이 아니라 선지를 주재료로 넣은 피순대로 끓인 순대국밥 내장국밥 머리국밥이 주요 메뉴로 가격은 7,000원 선이다.

 

순창=글ㆍ사진 최흥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