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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제집 찾은 백두산 호랑이 쩌렁쩌렁 포효 한번 들어보실래요

by한국일보

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숲 보고, 축서사 노을에 쉬고…봉화 문수산

제집 찾은 백두산 호랑이 쩌렁쩌렁 포

수컷 ‘우리’(오른쪽)과 암컷 ‘한청’ 두 마리 백두산 호랑이가 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숲을 거닐고 있다. 봉화=최흥수기자

봉화 춘양면에서 영월 김삿갓면으로 넘어가는 88번 지방도 주변 서벽리는 도로 양편으로 1,000m급 봉우리가 진을 친 산중인데도 제법 터가 넓고 아늑하다. 고봉에서 비스듬히 흘러내린 산자락은 온통 사과밭이어서 산과 들은 이미 겨울 색이지만, 가로수로 심은 꽃사과와 산수유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심심하지 않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산줄기가 갈라지는 ‘양백지간’ 서벽리에 백두대간수목원이 들어서면서 평소 차량 통행이 뜸하던 이 길에도 외지인의 발길이 제법 늘었다. 사실 겨울 수목원은 풀과 나무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사람이 아니면 흥미를 갖기 어렵다. 백두대간수목원은 27개 전시원에 2,137종, 302만본의 식물이 자라는 아시아 최대규모(5,179㏊)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그것도 빛깔 고운 봄 여름 가을 이야기다. 겨울에는 머릿속까지 알싸한 산바람과 설경을 그리는 이들이나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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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 자락 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숲까지는 전기트램을 타고 이동해 중간에서 걸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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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수목원 암석원. 바위틈에서 겨울을 나는 식물을 위해 조성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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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석원에서 본 시루봉.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지만 해발 1,000m가 넘는다.

그럼에도 이 계절에 백두대간수목원을 추천하는 건 백두산 호랑이 때문이다. 수목원의 ‘호랑이숲’은 축구장 7개 면적인 4.8㏊에 이른다. 이 넓은 숲을 수컷 ‘우리(7세)’와 암컷 ‘한청(13세)’이 차지하고 있다. 두 마리 모두 서울대공원 태생이다. 하루 20km에 이르는 호랑이의 행동 반경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일반 동물원에 비하면 넉넉한 공간이다.


백두대간수목원은 약 2시간이 걸리는 호랑이숲 탐방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수목원 입구에서 전기로 운행하는 트램을 타고 단풍식물원까지 이동한 후 호랑이숲까지 걷는 코스다. 그 사이 사계원, 야생화언덕, 전망대, 암석원, 자작나무원 등을 거쳐간다. 눈 밝은 관람자라면 나뭇가지에 앙상하게 남은 열매와 바위틈에서 겨울을 나는 식물, 몽실몽실한 야생화 열매를 관찰할 수 있다. 식물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낙엽송 숲과 자작나무 숲을 걸을 땐 기분이 상쾌하다. 전망대와 암석원에서 계곡 맞은편 시루봉과 각화산으로 이어지는 태백준령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벅차다.


호랑이숲에 도착하면 높은 안전 펜스를 사이에 두고 코앞에서 쉬고 있는 ‘우리’와 ‘한청’을 마주한다. 호랑이는 야행성이어서 낮에는 많은 시간 누워서 잠을 잔다. 그러나 짝짓기 시기인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활발하고 암수 서로 스킨십도 잦다. 각자 떨어져 있던 둘이 펜스 주변을 함께 산책하고 가끔씩 연못에서 물을 마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겨울에 호랑이숲에 가야 할 이유다. 쩌렁쩌렁한 포효는 들을 수 없었지만, 백두산 호랑이의 자태를 바로 앞에서 보는 것만도 감동이다.


백두대간수목원은 오전 9시부터 입장객을 받고, 호랑이는 10시부터 방사한다. 입장료는 5,000원이며, 3,000원의 해설료를 내면 해설사가 동행해 숲과 생태에 대해 흥미로운 설명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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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 수컷 ‘우리’(뒤)가 덩치도 크고 무늬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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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보호망을 사이에 두고 코앞에서 암컷 호랑이 ‘한청’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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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숲 인근의 호식총 모형. 호랑이에게 변을 당한 이들을 위한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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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까지 알싸한 바람과 모든 걸 털어낸 앙상한 나뭇가지 등도 겨울 수목원의 매력이다.

수목원 관람을 마치고, 해질녘에는 문수산 동편 축서사로 갈 것을 추천한다. 해발 700m에 자리 잡은 사찰 앞마당에 서면 아득하게 펼쳐지는 들판 사이로 소백산맥 산줄기가 겹겹이 이어진다. 특히 해질 무렵이면 소백의 우람하고도 부드러운 능선 위로 노을이 붉게 번진다. 축서사의 일몰은 해가 떨어진 후부터가 진짜다. 하늘에는 붉은 기운이 가득한데, 골짜기에는 푸르스름하게 어둠이 내린다. 불빛이 거의 없어 사위어가는 저녁 놀에 산도 절도 윤곽만이 어스름하다. 대웅전 앞에 서면 5층 사리보탑 꼭대기에 하늘이 걸리고, 희미한 빛에 전각의 휘어진 용마루가 부드럽다. 특히 보광전 석등 뒤에 서면 네모난 창으로 하늘빛이 발갛다. 해가 지고도 오래도록 석등을 밝히는 노을이 자못 감동적이다. 파르스름하던 어둠은 점점 짙어지고, 사방이 고요 속에 묻히면 여행자도 숨가쁘게 달려온 하루를 내려놓고 깊고 편안한 휴식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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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서사 노을은 해가 지고부터 진짜다. 대웅전 앞에 서면 사리보탑 꼭대기에 노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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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포개지는 능선 사이로 어둠과 고요가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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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진 지붕마루 뒤로 노을과 어둠이 함께 휴식의 시간을 알린다.

축서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의상이 창건한 영주 부석사보다 3년 빨라 부석사의 큰집이라 자랑한다. 17개 전각이 가파른 산기슭에 3단으로 자리 잡아 계단이 많은 편이지만, 앞마당까지 차로 갈 수 있어서 접근이 쉬운 편이다. 백두대간수목원에서 약 23km, 차로 40분이 걸린다. 해발 780m 주실령을 넘는 도로는 좁고 굴곡이 심해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봉화=글ㆍ사진 최흥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