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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4,500년을 뛰어넘어
한 방에서 만난 ‘쿠푸왕과 나’

by한국일보

<35> 이집트 쿠푸피라미드

4,500년을 뛰어넘어 한 방에서 만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쿠푸피라미드 앞에서 경찰관들이 순찰 도중 얘기를 나누고 있다.

폭탄은 같은 자리에 두 번 떨어지지 않는다.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먼 길 떠날 때는 어디선가 들은 이 풍월을 읊조리며 그렇게 믿기로 했다.


2003년 초 해외 첫 나들이로 인도네시아 발리를 갔을 때도 그랬고, 지난해 7월 프랑스 파리를 갔을 때도 그랬다. 발리에서는 2002년 10월 폭탄테러로 202명이 숨지고 209명이 부상했고, 파리에서는 2015년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동시다발 연쇄테러 후 크고 작은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약간의 불안감을 극복하면 여행지가 혼잡하지도 않고, 비용도 많이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12월 초 이집트 답사도 그랬다. 출발 10여 일 전인 11월24일 이집트 북부 시나이반도의 수피파 모스크에서 테러가 발생해 최소 235명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지구촌을 강타했을 때도 이 믿음에 따르기로 했다. 여행을 취소하거나 강행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는 늘 이 허황된 믿음이 이겼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시나이반도는 이집트 현지인들도 잘 가지 않는 위험지역이었다. 흡사 우리네 비무장지역과 같다고 했다. 남북이 감시초소(GP)를 파괴하는 현실을 대입하면 오히려 시나이반도가 더 위험지역일 수도 있겠다.

4,500년을 뛰어넘어 한 방에서 만

이집트 수도 카이로 기자지구의 피라미드 전경. 왼쪽부터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 피라미드.

당시 테러의 대상이 된 수피즘은 춤과 노래로 신과 하나되는 의식을 치르는 이슬람 신비주의를 말한다.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다. 이슬람 지역에서 흰 옷과 길다란 흰 모자를 쓰고 끊임없이 제 자리를 돌며 춤을 추는 남성들을 봤다면 수피파라고 보면 된다. 코끼리 코를 해서 열 바퀴만 돌아도 어지러운데 수피파는 1시간 도는 것은 기본이란다. 교리나 율법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기 때문에 이슬람 사회에서도 테러의 타깃이 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를 거쳐서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도착한 것은 지난해 12월7일 오후 4시15분이다. 우리나라보다 7시간 늦다. 공항경비대원이 총 들고 근무하다 갑자기 바닥에 엎드려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이집트도 이슬람 세계라는 사실이 피부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집트를 이슬람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내 빈곤한 상상력으로도 용납이 되지 않았다. 5,000년이 넘는 역사 속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미라, 상형문자, 람세스 2세, 투탕카문, 나일강, 왕가의 계곡, 클레오파트라, 사자의 서, 아부심벨, 알렉산드리아 등 떠오르는 단어의 무게만으로도 깔려 죽을 판이었다.

4,500년을 뛰어넘어 한 방에서 만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쿠푸피라미드 앞에서 낙타를 탄 상인이 관광객을 찾아 어슬렁거리고 있다.

4,500년을 뛰어넘어 한 방에서 만

이집트 수도 카이로를 찾은 관광객들이 스핑크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를 꼽을 때 톱 랭크에 오르는 쿠푸왕 피라미드는 카이로 도착 다음날인 8일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느닷없이 다가왔다. 숙소를 빠져나와 느긋하게 버스로 이동하던 중 도심의 건물 틈으로 뾰족한 삼각뿔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한 눈에도 피라미드였다.


카이로 남서쪽 13㎞ 지점의 기자(Giza) 지구로 접어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는 보안검색대를 거쳐 몇 발자국 옮기기도 전에 TV와 신문 잡지에서나 봤던 피라미드 3인방이 눈앞에 펼쳐졌다. 카푸왕 카프레왕 멘카우레왕 3기의 피라미드였다. 길가에는 낙타를 탄 이집트 경찰들이 어슬렁거렸고 역광을 받은 피라미드의 아우라에 눈이 부셨다.


피라미드의 그늘에 들어서고야 이등변삼각형 금자탑이 낱개의 돌덩이로 다가왔다. 마음이 급했다. 먼저 다가온 것은 역대 피라미드 중 최고 높이의 쿠푸왕 피라미드였다. 1889년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이 세워지기 전까지 4,000여 년간 이 피라미드는 지구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높이 146.5m 높이로 지어졌지만 꼭대기 부분이 10m 정도 파손돼 현재는 136.5m였다. 바로 옆 카프레 피라미드가 비탈길 고지대에 세워진 탓에 오히려 낮게 보이긴 했지만 쿠푸는 밑변 230m, 평균 2.5톤 무게의 돌덩이 230만개, 부피 260만㎥를 뽐내는 피라미드의 최고봉이었다.

4,500년을 뛰어넘어 한 방에서 만

쿠푸왕 피라미드에는 쐐기 모양의 정식 입구 아래 도굴꾼들이 파놓은 통로가 출입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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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푸왕 피라미드 왕의 방을 찾은 여행객들이 석관을 살펴보고 있다.

도굴꾼 통로가 출입문이 된 ‘아이러니’

쿠푸왕 피라미드 아래에서 목이 꺽어져라 꼭지점을 찾고 있는데, 누군가 “들어가고 싶은 사람만 입장료 내고 다녀와라”는 소리가 들렸다. 피라미드에 들어갈 수 있다고? 얼마가 되더라도 일단 들어가야 했다.


자세히 보니 정면 돌덩이 6단 정도에 사람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17m 높이에 있는 정식 입구는 수직 바위에 가로막힌 반면 그 아래 도굴꾼이 뚫어놓은 통로가 출입문이 된 것은 아이러니했다. 카메라, 고프로는 모두 맡겨야 했다. 성인 키높이를 조금 넘는 입구를 통해 빨리듯 들어갔다. 좁아터진 통로를 통해 꺾어진 곳에는 끝도 없이 가파른 대회랑이 나타났다.


평행사변형 모양의 대회랑은 경사각 26.16도, 길이 46m, 높이 8.5m, 아래쪽 폭은 2.28m지만 위로 갈수록 1.04m까지 폭이 좁아지는 이상한 구조다. 인공 보조 계단을 타고 낑낑대며 올라갔더니 유물관리인처럼 보이는 이집트인이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떠밀려 작은 통로로 구부려 들어가보니 텅빈 공간이 나타났다.

4,500년을 뛰어넘어 한 방에서 만

1890년대 쿠푸왕 피라미드 입구의 전경. 블로그 캡처

바로 왕의 방이었다. 길이 10.5m, 폭 5.25m, 높이 5.8m, 화강암으로 둘러싸인 이 방은 피라미드의 3분의 1 지점인 50m 정도 높이에 있었다. 장식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이 석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곳이 바로 쿠푸왕 미라가 안치된 곳으로 추정되는 현실이었다.


그 시각 피라미드 왕의 방에는 쿠푸와 나 둘 뿐이었다. 쿠푸왕의 재위기간이 BC 2589~2566년으로 알려져 있으니 이 피라미드는 최소 4,500년이 넘은 건축물이고, 나는 단군왕검보다 더 옛날 현존 인물의 무덤에 있는 것이었다.


허리 높이의 석관 안에 쿠푸왕이 누워있었다고 상상하니 기분이 야릇해졌다. 석관이 시간을 뛰어넘는 타임머신 같이 느껴졌다. 그 오랜 옛날 이런 말도 안 되는 건축물을 지은 인간들의 믿음 체계는 어떤 것인지 도무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피라미드에 대한 인간의 연구가 깊어질수록 쿠푸의 수수께끼는 커지고 있었다.


글ᆞ사진=전준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