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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식탐만 남은 좀비, 굶주린 백성ㆍ탐욕스런 위정자 닮아”

by한국일보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김은희 작가

“식탐만 남은 좀비, 굶주린 백성ㆍ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극본가 김은희 작가.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1회당 원고료가 5,000만원 가량. 방송국을 고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타 작가다. 현실에 안주해도 갈채를 받을 수 있는 위치인데, 도전에 나섰다. 시험대는 지상파방송도 케이블채널도 아닌 넷플릭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업체(OTT)다.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공개된 드라마 ‘킹덤’의 김은희 작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킹덤’은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전액 투자한 첫 한국 드라마다. 시즌1의 전회(6회)가 한꺼번에 공개됐다. 충무로에서 한창 각광 받는 김성훈(‘영화 ‘끝까지 간다’ ‘터널’) 감독이 메가폰을 쥐었다. 스타 방송 작가와 흥행 감독의 매우 흔치 않은 협업이다. ‘킹덤’이 품고 있는 내용도 보기 드물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좀비를 등장시킨다.


반응은 호평이 우세하다. 첫 회만 보려 했다가 5시간 내내 숨 죽이며 ‘정주행’했다는 후기가 온라인에 속속 올라온다. 주지훈 류승룡 배두나 등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빼어나고 김 감독의 연출력이 두드러지지만 일등공신은 김 작가라는 평이 나온다. ‘킹덤’은 8년간 자신의 노트북에서 숙성시킨 드라마라고 말하는 김 작가를 28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상처받을까 작품 후기를 직접 보진 못했고, 가족에게 대신 물어봐요.” 김 작가는 흥행을 체감하느냐는 질문에 다소 수줍어했다. 신드롬으로 불릴 정도로 흥행했던 tvN 드라마 ‘시그널’(2016)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었기에, 유명 작가의 반열에 든 그도 어쩔 수 없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김 작가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킹덤’을 봤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넷플릭스도 회사 지침이라면서 드라마 흥행(조회수)이 얼마나 됐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며 “직원의 태도와 연락 빈도를 보고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식탐만 남은 좀비, 굶주린 백성ㆍ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시즌1 제작진 및 출연자. 왼쪽부터 김성훈 감독, 배우 류승룡, 김은희 작가, 배우 주지훈. 넷플릭스 제공

‘킹덤’ 시즌1은 1회당 50분씩 6회로 이뤄져 있다. 이전까지 회당 70~90분씩 16부작으로 만드는 TV 드라마의 문법에 익숙해져 있던 그에게 ‘킹덤’은 도전이었다. 그런 김 작가가 넷플릭스와 손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유였다. 그는 “2016년 ‘시그널’을 마치고 넷플릭스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킹덤’을 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했다”며 “넷플릭스라면 식인을 하거나 목이 잘린 장면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가를 전적으로 믿고 극본에 손 대지 않는 넷플릭스의 작업 환경도 김 작가의 말마따나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을 현실화”해서 “소원성취”를 하는 데 한몫 했다.


‘장르물의 대가’ 김 작가가 좀비를 소재로 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었을까. 그는 “좀비는 보통 공포의 대상으로 그려지지만, 제겐 식탐만 남고 모든 것이 거세된 것으로 보여 슬프게 느껴졌다”며 “통제가 불가능한 생명체를 피폐하고 처참한 조선시대로 가져오면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굶주린 백성들과 탐욕스런 세도정치가 모두를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먹기만 하는’ 좀비였던 것이었다.


자신 안위 지키기에 급급한 위정자와 이들에게 버림받은 필부필부. 시청자들은 사극 ‘킹덤’에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김 작가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역사는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임진왜란도 왕이 백성을 버리고 양반과 함께 피난을 갔고, 한국전쟁 때도 위정자가 다리를 끊고 도망갔으니깐요.” 다만 그는 꿈도 희망도 없는 ‘헬조선’만을 그리지는 않는다. 주인공인 세자 이창(주지훈)의 존재가 그렇다. 김 작가는 “백성을 지키려 한 이창처럼 위기 때마다 자리를 지킨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며 “다양한 시대상을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다만 시청자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일까 봐 ‘킹덤’의 배경 연도를 밝히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킹덤’ 시즌2 제작은 이미 확정됐다. 설 명절 이후 촬영을 시작해 6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1회 연출은 김성훈 감독이 맡지만, 이후는 박인제 감독과 함께 일한다. 드라마가 채 완료되기도 전에 연출가(PD)가 바뀌는 것도 한국 방송계에서는 이례적이다. 유명 연출가가 시즌1의 틀을 잡고선 연출을 다른 이에게 넘기는 경우는 미국 드라마에선 흔하다. 넷플릭스의 대표 콘텐츠인 ‘하우스 오브 카드’도 유명 영화감독 데이비드 핀처가 초기에만 연출한 후 다른 감독이 메가폰을 이어 받았다. 김 작가는 “박 감독과 연출 및 기획 의도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다음 시즌에서는 등장인물의 정체 등 시즌1때 차곡차곡 쌓아 올린 ‘떡밥’을 많이 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킹덤’ 이후 행보는 ‘시그널’ 시즌2가 될 가능성이 크다. 김 작가는 “극본 작업에 들어갔다”며 “당분간은 노트북 앞에 항상 앉아있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시그널’ 시즌2까지 넷플릭스에서 방영하게 되는 것일까. 김 작가는 “국내 방송국에서 작업하는 것에도 장점이 있다”며 “앞으로도 너무 잘 지내고 싶고 열심히 하겠다”고 웃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