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삶을 바꾼다

[컬처]by 한국일보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삶을 바꾼다

점괘가 적힌 종이 쪽지가 나오는 포춘쿠키(Fortune Cookie)의 Fortune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행운의 여신 또는 운명의 여신으로 알려진 포르투나(Fortuna)에서 유래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와삭, 한입 깨물면 “당신은 오늘 소중한 인연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같은 점괘가 적힌 종이 쪽지가 나오는 포춘쿠키(Fortune Cookie). 이때 포춘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행운의 여신 또는 운명의 여신으로 알려진 포르투나(Fortuna)에서 유래한다. ‘티케(Tyche)’로도 불리는 이 행운의 여신이 관장하는 운명이란 포춘쿠키가 깜짝하고 알려주는 점괘처럼 ‘우연히’ 찾아오는 행복이나 불행을 뜻한다.


손보미 작가의 새 소설 ‘우연의 신’은, 제목에 등장하는 여신이 의미하는 바처럼 우리 삶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고정불변하는 운명이 아니라 우연찮게 찾아 드는 어떤 사건, 찰나에 불과한 어떤 순간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여기 남자가 있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경찰청에서 3년을 근무한 뒤 민간 조사원(다시 말해 ‘탐정’)이 된 그는 정해 둔 인생 계획표를 어겨 본적 없는 것 같은 사람이다. 갖가지 규칙으로 짜인 생활 중에서도 그가 꼭 지키는 것은 1년에 한번씩 외국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계획은 전 세계에 단 하나 남은 위스키 브랜드 ‘조니 워커’의 화이트 라벨을 수거해달라는 의뢰로 인해 7년 만에 처음으로 어그러지고 만다.


여기 또 다른 여자가 있다. 부모의 이혼과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프랑스에 살고 있는 아빠에게 보내져 자란 그는,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이 그녀에게 남긴 유품(조니워커의 화이트라벨)을 가지러 와 달라는 편지를 받는다. 친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은근히 자신을 괴롭히기까지 했던 동창이 남긴 유품이라니, 무시해도 될법하다. 하지만 그는 폭발 사건을 겪은 뒤 편지를 구겨 던져버렸던 처음의 마음을 되돌려 동창의 유품을 받으러 프랑스 리옹으로 향한다.


조니 워커의 화이트 라벨을 매개로 두 남녀가 만나게 되지만, 그 만남은 미리 정해져 있는 운명이 아닌 수많은 우연이 겹쳐진 끝에 탄생한 것이다. 심지어 만남의 계기가 되는 ‘화이트 라벨’조차 실은 치명적인 착오로 인해 둘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잃어버린 걸 찾겠다고? 삶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아. 그냥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못했을 뿐이야. 주어지지 않은 거지.” 후반부 남자의 말처럼 결국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우연의 중첩만이 삶의 진실이라는 것을 독자는 깨닫게 된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삶을 바꾼다

(좌)우연의 신/손보미 지음/현대문학ㆍ180쪽ㆍ1만1,200원, (우)'우연의 신'을 쓴 손보미 작가.

소설엔 손 작가 특유의 ‘사실과 허구의 뒤섞임’이라는 장기가 십분 발휘돼 있다. 금세 생산이 중단되긴 했지만 실존했던 조니 워커 화이트 라벨 이외의, 소설 속 많은 것들은 허구다.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2017)에서 미국 디자이너 랄프로렌에 무수한 소설적 디테일을 가미해 이야기를 창조해냈던 것과 비슷하다.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인지 가늠하며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깜짝’하는 감동과 마주치게 된다.


‘우연의 신’은 현대문학이 내는 ‘핀’ 시리즈의 10번째 소설이다.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이 문예지 ‘현대문학’ 특집 지면에 발표한 소설을 묶어 낸다. 편혜영 작가의 ‘죽은 자로 하여금’, 박형서 작가의 ‘당신의 노후’, 김금희 작가의 ‘나의 사랑, 매기’ 등이 나왔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2019.02.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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