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문서보다 부정확한 증언이 때로는 진실에 더 가깝다

[컬처]by 한국일보
공식 문서보다 부정확한 증언이 때로는

바르샤바 게토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컸던 폴란드의 리츠만슈타트 게토에 도열한 101예비 경찰대대. 평범한 노동자 출신이었던 이들은 학살 임무를 충분히 거부할 수 있었음에도 유대인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휴머니스트 제공

“증거가 없다고요? 내가 증거예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이캔스피크’에 나온 대사는 고(故) 김복동(93) 할머니의 실제 외침이었다. 2012년 8월 망언을 일삼아온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을 항의 방문한 김 할머니는 온 몸으로 절규했다. “증인이 왔는데, 왜 회피하고 안 만나 주느냐! 증거가 없다는 말을 갖다가 함부로 하지 말라!” ‘살아 있는 증거’를 자처한 김 할머니는 끝내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김 할머니의 마지막 말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위해 나를 대신해 끝까지 싸워달라”였다. 그의 유언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쓴 ‘기억전쟁’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홀로코스트 가해자가 전쟁 영웅이 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부정되거나 왜곡되는 현실. 저자는 각종 자료와 기록, 숫자에만 치우친 실증주의 연구가 어떻게 역사를 기만해왔는지 낱낱이 꼬집는다. 저자가 제시한 대안은 ‘기억 연구(Memory Studies)’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역사가 기록을 근거로 한 과거와 현재의 공식적 대화라면, 기억 연구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친밀한 대화다.” 책은 어떻게 과거를 기억하고,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를 묻는다.

공식 문서보다 부정확한 증언이 때로는

1980년 5월 광주. 공수부대 군복을 입은 한 군인이 젊은 청년에게 곤봉을 휘두르고 있다. 신군부의 명령이었다고 해서, 시민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한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다. 휴머니스트 제공

저자는 먼저 기억을 회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살아 남은 개개인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출발이다. 그간 역사에서 증언은 고의적으로 무시돼 왔다. 생존자들이 용기를 내 세상에 피해 사실을 알려도 힘 있는 가해자들은 “과장됐다” “부정확하다”고 깎아 내리거나, 거짓말이라고 몰아세웠다. 불완전한 증언의 허점을 파고들어 기억의 진정성을 흠집 내려는 의도였다.


저자는 사건을 기록한 공식 문서보다 부정확한 증언이 때로는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고 말한다. 홀로코스트 실증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미국의 역사학자 라울 힐베르크의 인식도 비슷하다. 평생 문헌 자료에만 의지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재현해온 그는 노년에 ‘나는 거기 없었다’는 제목의 에세이를 발표하며 자신의 평생 연구 성과에 근본적 의문을 던진다. 그는 당시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은 사람의 증언을 이길 수 없다고 반성했다.


‘누가 희생자인가’라는 질문은 잘못된 역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이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해 희생 국가라는 점을 앞세우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 범죄의 잘못을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민족과 국가 뒤에 숨어 개인의 잘못이 면죄부를 받는 일 또한 경계해야 한다. 홀로코스트에 가담한 오스트리아는 전쟁이 끝나자 ‘히틀러의 첫 번째 희생양’을 자처하며 가해자들의 잘못에 눈감았다. 조선인 병사들이 일본군보다 더 잔인하게 만행을 저질렀다는 아시아 이웃 국가들의 날 선 증언에 우리가 눈 감는 건 온당한 일일까. 저자는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부조리는 국가나 민족, 개인 단위에서 모두 경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억은 전 세계적으로도 연대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기억의 지구화’라고 명명했다. 지난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 글렌데일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은 희망의 증거다. 소녀상이 한국 이외의 지역에 설치된 것은 처음이었다. 글렌데일 주민들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에 주목한 건 ‘공감할 수 있는 기억’ 덕분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글렌데일 도시 주민의 40%는 아르메니아인으로, 이들 역시 20세기 초반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집단학살을 당한 아픔을 지니고 산다. 소녀상 제막식 당시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생존자 후손은 이렇게 말했다. “갈등을 해소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최선의 방법은 (가해 사실을) 인정하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가해자들은) 사과가 없고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지도 않기 때문에 상처는 깊고 또 곪아가고 있습니다.”


진정한 반성은 어떻게 가능할까. 1990년 제1차 걸프전쟁이 발발하자 서독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 전화가 빗발쳤다. 이스라엘 아이들을 맡아 주겠다는 평범한 서독인들의 전화였다. 이들의 행동에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녹아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적어도 도덕적인 사람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행보였을 수 있다고 저자는 의심한다.


가해자 입장에선 ‘도대체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겠다. 저자는 용서는 피해자의 몫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나머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끊임 없이 반성하고 성찰하는 것이다. 김복동 할머니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끝까지 기억해달라.”

공식 문서보다 부정확한 증언이 때로는



책정보

기억전쟁

임지현 지음

휴머니스트ㆍ300쪽ㆍ1만 8,000원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2019.02.15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