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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지하실 청년들 ‘억대 작곡가’로… “우리 음악 스타일은 츤데레”

by한국일보

K팝 새 ‘히트제조기’ 그루비룸

지하실 청년들 ‘억대 작곡가’로… “

작곡 듀오 그루비룸의 박규정(왼쪽)과 이휘민. 두 청년의 꿈은 “영감을 주는 작곡가”다. 배우한 기자

헤이즈의 ‘널 너무 모르고’와 ‘먹구름’, 효린ㆍ창모의 ‘블루문’, 청하가 부른 ‘파라다이스’. 이 히트곡들은 공통분모를 지녔다. 프로듀싱 듀오 그루비룸(GroovyRoom)이 작곡했다. 그루비룸은 스물다섯 동갑내기 박규정, 이휘민이 의기투합해 꾸린 팀이다. 두 청년의 음악은 ‘츤데레’(겉으로 보기엔 쌀쌀맞아 보이지만 속은 다정한) 스타일이다. 차가운 전자음악을 따뜻하게 변주해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끌린다. 세련된 비트와 멜로디엔 아련함이 깃들어 있다. 다양한 세대가 그루비룸의 음악을 즐기니 이들의 컴퓨터는 쉴 틈이 없다. 곡 의뢰를 부탁하는 가수들이 많아서다. 한 달 저작권료 등 수입이 “적게는 여덟 자리, 많을 땐 아홉 자리 숫자”라고 한다. 많게는 억대의 돈을 번다는 얘기다.


“언젠가 곡을 보냈는데 (박)재범이 형이 ‘너희가 우리 팀이라서 다행이다’고 했을 때가 가장 뿌듯하더라고요.” 서울 중구 한국일보를 최근 찾은 그루비룸의 이휘민이 웃으며 말했다. 옆에 있던 박규정도 같은 생각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박재범이 이끄는 힙합 음악 레이블 하이어뮤직 소속이다.

헤이즈ㆍ효린 사로 잡은 청년들

‘밀레니얼 세대’가 만든 음악엔 아날로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휘민의 입에선 “뿌리” 얘기가 나왔다. 그는 어려서 올드팝의 팬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룹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들었고 영화 ‘중경삼림’에 나오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에 빠졌으며 1990년대 가요를 즐겨” 들었다. 박규정은 1980~90년대를 풍미한 미국 록밴드 메탈리카의 ‘덕후’다. 이 밴드의 티셔츠도 갖고 있을 정도로 열혈 팬이다. 박규정은 “서로 다른 취향을 지녀 다양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루브의 방’(그루비룸 팀명 뜻)에서 나오는 음악은 힙합과 전자음악, 록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2년 전 록밴드 넬과 함께 ‘오늘은’을 만들었다. 넬이 먼저 제안해 이뤄진 합작이었다. 박규정은 “도전이라 성취감이 컸다”고 말했다.

지하실 청년들 ‘억대 작곡가’로… “

가수 헤이즈(왼쪽부터), 효린, 청하. 모두 작곡 듀오 그루비룸과 합작해 히트곡을 냈다.

습기 가득 지하서… 2년 동안 작업실 9번 옮긴 이유

경북 포항에서 자란 박규정과 인천 출신인 이휘민은 2013년에 처음 만났다. 기획사에서 두 사람을 가수로 키우려 했지만, 이들은 독립해서 창작팀을 꾸렸다.


시작은 초라했다. 월세 30만원을 주고 서울 내방역 인근에 잡은 지하작업실엔 습기가 많아 옷이 축축해지기 일쑤였다. 바퀴벌레도 득실거렸다. 이휘민은 “처음엔 여러 기획사를 찾아가 데모(미완성)곡을 엄청 뿌렸는데 다 거절 당했다”고 말했다. YG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에 이메일로 곡을 보내보기도 했지만, 당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볕이 들기 시작한 건 2015년부터다. 힙합 듀오 리쌍 출신 개리의 솔로곡 ‘바람이나 좀 쐐’를 만들어 주목 받기 시작해 이듬해엔 이들의 이름이 한 래퍼의 노래에 깜짝 언급돼 입소문을 탔다. 오왼 오바도즈의 ‘시티’에서 “이거 누구 비트야?” “그루비룸”이란 대목이 화제가 되면서였다.


입지를 넓힌 그루비룸은 2년 동안 9번이나 작업실을 옮겼다. 이휘민은 “수입이 꾸준히 는 덕”이라며 웃었다. 서로 취향은 다르지만 긍정적이고 열린 사고 방식은 둘이 똑 닮았다. 그루비룸은 컴퓨터 한 대로 곡 작업을 한다. 박규정이 쓰다 만 곡을 같은 컴퓨터에서 이휘민이 이어 받아 살을 붙인다. 둘이 ‘한 몸’이 돼 곡을 완성하는 셈이다. 박규정은 “서로 ‘이렇게 만든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해 작업할 때 한 번도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다”고 했다.

지하실 청년들 ‘억대 작곡가’로… “

작곡 듀오 그루비룸. 하이머뮤직 제공

“JYP”처럼 “그루비 에브리웨어”

그루비룸의 곡엔 “그루비 에브리웨어(Groovy Everywhere)”란 소리가 빠지지 않는다. 가수 박진영이 자신이 만든 곡 도입부에 “JYP”를 넣는 것과 같은 시그니처 사운드다. 자신들의 음악이 장르와 국경을 초월해 세상 어디에든 울려 퍼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그니처 사운드를 만들었다.


“그루비 에브리웨어”로 가요계를 휩쓸고 있는 그루비룸은 지난달 29일 두 개의 신곡 ‘행성’과 ‘러브 라이크 디스’를 발표했다. ‘행성’은 몽환적인 목소리가 인상적인 신인 가수 블루 디와 합작해 반응이 좋다. 그루비룸은 음원사이트에 두 곡에 대한 소개로 ‘애피타이저. 룸 서비스 순’이란 문구를 실었다.


“늦어도 올 상반기엔 앨범을 낼 예정이에요. 앞서 낸 두 곡은 맛보기란 뜻에서 ‘애피타이저’라 소개했죠.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곡을 계속 쓰고 싶어요. 22일부터 Mnet에서 방송될 래퍼 오디션 프로그램 ‘고등래퍼’에 멘토로 참여하는 데 방송 끝나면 다시 작업실에서 앨범 준비 제대로 하려고요.”(이휘민)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