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라이프 ] 뷰엔

복잡, 다양해진 신호등...
초보, 고령 운전자는 ‘혼란’

by한국일보

한국일보

교통 신호등의 형태와 용도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그 숫자 또한 늘고 있다. 복잡한 도시의 교통 흐름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같은 신호등의 진화가 초행길 운전자나 초보, 고령 운전자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신호등 설치가 운전자의 판단을 방해할 수도 있으므로 특정 신호를 특정 위치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서울시내에 설치된 신호등의 다양한 모양.

한국일보

14일 오전 서울 강북구 미아사거리 종암동 방향에 설치된 신호등 3대 모두 우회전을 표시하고 있다.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 곧바로 우회전하는 버스에만 해당하는 신호인데도 버스와 일반 차량 구분 없이 동일하게 지시하면서 혼란을 준다. 만약 일반 차량이 버스와 함께 우회전을 시도할 경우 사고 발생 가능성이 크므로 버스 우회전 시 일반 차량에겐 정지 신호를 제시하는 게 맞다. 일반 차량은 교차로 진입 전 우회전 램프를 이용할 수 있다.

한국일보

위 신호등은 일반 차량과 버스 진행 방식이 다르지만 모두 같은 표시를 한다. 이곳을 자주 다니지 않으면 신호를 혼동할 수밖에 없다.

빨간불에 서고 초록불이 켜지면 진행한다. 색깔을 인지하는 감각에 기초한 신호등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다. 그러나 이 간단한 약속만으로 점점 더 복잡해지고 세분화하는 교통 체계를 제어하기엔 역부족이다. 때문에 이미 오래전 방향을 지시하는 화살표가 삼색 등에 추가됐고 최근엔 자전거와 버스 신호등, 바닥 신호등까지 등장했다.


지금 우리 주변에 교통 신호등이 얼마나 많은지, 그 형태와 용도는 또 얼마나 다양한지는 거리에 나가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서울역 버스환승센터 주변만 해도 설치된 신호등이 총 100여 기, 각각의 색깔과 모양 정보를 표시하는 렌즈는 300개가 넘는다. 여러 갈래로 나뉜 도로에 버스전용차로까지 구분된 탓에 운전자들은 진행 방향과 차로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는 신호등을 알아서 찾아내고 그 지시에 따라야 한다.


웬만한 교차로에서 이 같은 풍경은 흔하다. 서울 서대문 신촌로터리의 경우 홍대 방향과 서강대교 방향용 신호등이 각각 다르게 작동하는 데다 버스 전용 신호등까지 더해져 혼란스럽다.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 곧바로 우회전이 가능한 강북구 미아사거리는 버스 전용과 일반 차로용 구분 없이 모든 신호등이 동일하게 작동하면서 오히려 혼란을 키우는 경우다. 우회전 신호가 따로 없는 교차로마다 차량등과 보행등의 색깔 외에도 보행자의 유무나 횡단보도 위치 등에 따라 우회전 가능 여부가 결정되고 사고 시 책임 소재 또한 복잡하다.

한국일보

서울역 버스환승센터 주변에 설치된 신호등. 후암동과 시청, 통일로 방면 신호가 각각 따로 설치돼 있는 데다 중앙버스전용 신호등까지 있어 운전 경험이 적거나 초행길인 운전자의 경우 혼동되기 쉽다.

한국일보

서울역 버스환승센터에서 시청 및 통일로 방향에 설치된 원형 버스전용 신호등. 각각의 램프가 켜질 때 촬영한 사진을 하나로 합쳤다.

한국일보

같은 장소인데도 용산 방면의 경우 버스모양의 ‘버스신호등’이 설치돼 있다. 각각의 램프가 켜질 때 촬영한 사진을 하나로 합쳤다.

한국일보

서울역 버스환승센터에 설치된 또 다른 버스전용차로 신호등.

아무리 복잡한 신호체계라도 익숙해지면 별문제 없지만 운전 경력이 짧은 초보나 초행길 운전자는 진땀을 빼기 일쑤다. 실제 운전 경험이 10회가 채 안 되는 황채윤(23)씨는 “내 차 주변의 다른 차들도 신경 쓰면서 머리 위에 있는 신호, 보행자 신호 등 너무 많은 신호를 한 번에 확인해야 하는 게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최근 운전을 시작한 김모(30)씨는 “면허시험 준비할 때 전혀 접하지 못한 상황이 많아 당황스럽다”면서 “특히,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있는 교차로는 신호등이 너무 헷갈린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복잡한 신호 체계를 면허 취득과 함께 학습할 수는 없는 걸까.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면허시험 문제은행에 수록된 1,000개 문항을 살펴보니 교통 신호등에 관련된 문제는 총 61개, 이 중 신호등 이미지를 함께 제시한 경우는 29개에 불과했다. 그조차 차량용 원형 신호등과 보행등 위주의 문제가 대부분이었고 초보운전자들이 어려워하는 버스 전용 신호등이나 가변차로 신호 등에 관련된 문제는 없었다. 실기 위주 교육이 이루어지는 운전학원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면허를 딴 조성진(23)씨는 “주행 시험은 아예 코스를 외워서 보기 때문에 특정 신호만 알면 되고 학원 강사님들도 그 외의 다양한 신호체계는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청 교통안전과 관계자는 14일 “중앙버스전용차로 같은 특수한 교통상황이 현행 학과시험에 반영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학과시험문제 국민 공모(7월 31일까지)를 통해 여론을 수렴한 후 면허시험 개선 시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처럼 ‘헷갈리는’ 신호등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은 운전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사고 원인이 신호 오작동으로 밝혀질 경우 지자체나 경찰에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운전자가 신호 체계를 혼동해 발생한 사고는 보통 운전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운전 경력과 상관없이 인지 반응 속도나 순간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 운전자들 역시 새로 바뀐 신호체계나 신호등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서 49년째 택시를 운행해 온 손복환(74)씨는 “도로 형태상 분명히 왼쪽으로 꺾여 있는데도 직진 신호를 봐야 하는 교차로가 여럿 있는데, 차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가다 보면 전방 주시가 소홀해져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장일준 가천대학교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도로에 신호등이 과도하게 설치될 경우 운전자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해 빠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만든다”며 “필요 없는 신호등은 제거하고 특정 위치에서만 신호를 확인할 수 있도록 신호 인식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또 “교차로에 진입할 때 속도를 줄이는 운전 습관을 들이면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정예진 인턴기자

한국일보

자전거 이용 인구가 많아지고 사고도 잦아지면서 자전거신호등도 등장했다. 사진은 서울 잠수교 남단 자전거 도로에 설치된 자전거 신호등. 각각의 램프가 켜질 때 촬영한 사진을 하나로 합쳤다.

한국일보

서울 잠수교 남단 로터리 부근 횡단보도에 설치된 보행 빛 자전거 신호등. 도로에선 차에 속하는 자전거가 이곳 횡단보도에선 보행자 기준을 따르게 돼 있다. 각각의 램프가 켜질 때 촬영한 사진을 하나로 합쳤다.

한국일보

서울시내에서 촬영한 각종 교통 신호등의 램프 모양을 모았다.